[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북한이 지난 6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4차 핵실험 징후를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이 핵실험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해 대북 정보망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당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핵실험으로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청와대와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은 북한 핵실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험 직후 ‘지진파가 감지됐다’는 외신 보도를 통해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북한의 수소탄 실험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의 대북 정보망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비록 수소폭탄의 경우 일반적인 핵에 비해 실험과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할지라도 정보당국이 사전에 전혀 낌새조차 못채고 있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북 정보망 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획기적 개선조치가 시급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北 지진' 외신 보도로 알려지자 그제야 경위 파악
정부는 이날 오전 외신을 인용한 국내 언론의 '북한 지진' 속보에 초비상이 걸렸다. 청와대와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관계자 등은 분(分) 단위로 올라오는 실시간 속보를 접하고 나서야 상황 파악에 나섰다.
북한의 지진 소식이 전해진 건 이날 오전 10시45분~50분께. 청와대는 오전 11시 기자들에게 "낮 12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인공지진일 가능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같은 시각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등의 당국자들에게는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의 당국자들은 "속보를 보고 알았다"며 "아직 파악 중"이라고 했다. 오히려 "인공지진파가 맞느냐", "국정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등 기자들에게 되묻는 당국자들도 있었다.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대비한 회의가 열리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회의 소집 여부는 공지되지 않았다"며 "뉴스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후 국방부는 오전 11시10분 위기조치반을 소집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외교부와 통일부도 긴박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오전 11시20분께 기자들과 만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핵실험 여부 등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등 국제기구와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과의 대화채널을 가동해 공동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경위를 파악 중인데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사전 예고 없어 더 큰 충격…대북 정보망 '부실' 드러나
앞서 북한은 지난 3차례의 핵실험 당시 핵실험 계획을 관련 국가들에 통보했고, 이에 우리 정부도 이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다.
실제 북한은 1차 핵실험(2006년 10월9일)을 6일 앞둔 2006년 10월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안전성 담보된 핵시험 예정' 및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제재 책동상 핵실험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9년 5월25일 2차 핵실험을 26일 앞두고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안보리가 즉시 사죄하지 않을 시 핵실험 등 자위적 조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으며, 3차 핵실험(2013년 2월12일)을 19일 앞둔 2013년 1월24일엔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핵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수소탄 실험의 경우 사전 예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단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해 12월10일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자주권과 존엄을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우리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이날 북한의 수소탄 실험 가능성에 대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높은 수준의 경계·대비태세를 유지했는데도 뒤통수를 맞았다"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특히 북한은 중국 정부에도 이날 수소탄 실험에 대해 사전 예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중국 관영 환추스바오(環球時報) 포털은 "북한은 1~3차 핵실험 당시 미국과 중국에 '사전통보'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고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비록 사전에 어떠한 예고도 하지않았지만 김정은 제1비서가 수소탄 실험을 언급하는 등 '낌새'를 어느정도 드러내왔다는 점에서 당국의 무기력한 자세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 양국의 군사동맹에도 허점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 지역을 판독하더라도 어딘가에는 늘 '구멍'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 정보 당국이 치밀하게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의 '수소탄' 발언에도 좀 더 주목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연합사령관도 北핵 실험 사실 몰랐다”
국방정보본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한미연합사령관도 북핵 실험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할 정도로 기습적으로 실험이 진행됐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김황록 합동참모본부 국방정보본부장은 이날 오후 국회 정보위 긴급현안보고에 출석, 이같이 보고했다고 정보위 관계자가 전했다.
이순진 합참의장은 이날 낮 북핵 실험 사실이 알려진 직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관련 정보를 교환한 바 있다.
국정원도 이날 정보위 긴급현안보고에서 북핵 실험에 대한 사전 징후 파악에 실패한 점을 적극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다른나라 정보기관들도 사전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것으로 보여진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작년부터 서쪽과 남쪽 갱도를 단기간 준비로 핵실험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관리해 왔기 때문에 최근 핵실험이 임박한 징후로 볼 수 있는 특이동향은 전혀 포착할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또 "이전에 핵실험을 하면서 이미 다음 핵실험 준비를 해 둔 듯하다"며 "노출이 안되도록 거의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미리 준비해 둔 듯하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어 "통상 북한이 1, 2, 3차 핵 실험을 하면서 관계국에 사전 통보를 했다"며 "1, 2차는 핵실험 30분전에 주변국에 통보했고, 3차 실험때는 하루전에 통보했다. 그리고 1차때는 중국에게만, 2, 3차때는 중국, 러시아, 미국에게 똑같이 통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 등 어느 국가에도 통보하지 안한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간사를 맡고있는 이철우 의원은 "통보가 없었으니 주변국들도 가만히 있었던 것으로 북한에서 그걸 노린 것"이라며 "세번이나 통보 해 주었으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터뜨려버렸으니 김정은의 노림수"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 3차 북핵실험과 비교해 봤을 때 위력이나 지진파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수소탄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인도가 지난 98년 5월에 수소탄 실험을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며 "그때도 43킬로톤(kt·1킬로톤은 TNT폭약 1000t 위력)이었는데 지금 현재 위력으로 봤을때 이것이 수소탄일 가능성이 적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주호영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번 실험이 수소폭탄이냐 아니냐에 관해 북한이 첫 수소탄 실험성공 이라고 주장을 하면서도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이라고 발표했다"며 "통상적인 수소폭탄이 아닐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