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최근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잇따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가계 부채와 부실기업이 급증하고 '제 2의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평가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냐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전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3(긍정적)에서 Aa2(안정적)로 1단계 상향조정했다. 앞서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지난 9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단계 올린 바 있다.
우리나라는 신용등급 상승은 최근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의 신용등급이 잇따라 강등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돈 풀기'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재정 건전성과 대외 건전성을 양호하게 유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된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 상승이 급격한 자본 유출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용등급 상승으로) 한국은 여러가지 여건이 신흥국들과 많이 다르다는 점들을 확실하게 투자가들에게 알렸다"며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대규모 자본이 한국으로부터 유출되는 것에 대해 방어벽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신용등급이 객관적인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국제신용평가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올렸다가 위기가 터지자 급격히 낮춘 적이 있다.
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등 위험상품에 우량등급을 매겨 신용 거품을 키운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국가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적용하는 신용도를 뜻한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주로 한 국가의 재정 건전성과 대외 건전성을 중심으로 신용등급을 평가한다.
하지만 국가신용등급은 과거 통계 자료를 위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어 최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급증세와 기업 부실 등 잠재적 위험 요인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는 최근 1년새 100조원 넘게 급증해 올해 말 12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조선·해운·철강·정유·화학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부실도 심화되고 있다. 올해 1~10월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모두 45개사에 달해 외환위기 때(61개사) 이후 가장 많았다.
무디스는 이번 평가에서 "가계부채 구조개선 등 한국이 재정부문의 우발채무와 리스크요인 등을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고 짧게 언급했을 뿐, 기업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경제의 기초체력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 상승이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국가신용등급 상승은) 위기 원인을 키우고 대응을 안이하게 해 더 큰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며 "지금은 1997년 위기 때와 너무도 같은 양상"이라고 우려했다.
오 교수는 "1997년 위기 발발 한달 전까지 한국의 신용등급은 'AA-'까지 올라갔고, 그 결과 외국인 자본유입으로 원화가 고평가돼 수출이 감소했다"며 "결국 위기가 발발하자 신용등급이 연이어 급락하면서 외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