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당국자회담 개최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북측이 실무접촉을 역으로 제안하면서 양측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측은 20일 오전 판문점 채널을 통해 오는 26일 당국회담 실무접촉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그간 남측의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북측이 전향적으로 대화를 요청한 것이다. 대체로 긍정적 전망이다. 핵과 인권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코너에 몰린 북측으로서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려 들 거라는 분석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쯤에는 남측에 대화 제안을 해야 코너에 몰리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최근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등 불리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후 '공포정치'를 통해 내부 권력 구도를 어느 정도 정리한 만큼 제7차 당 대회를 전후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대외적 성과 달성을 목표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측은 회담을 하고 싶어 했으나 그동안 남북 간 당국자회담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라며 "지금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북측으로서는 대화의 계기를 이어가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북측은 내년 5월에 있을 당 대회를 앞두고 불안정한 남북 관계가 결코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김정은 정권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추진하는 등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새로 설정된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나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앞으로 협의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최소한의 대화 기조만 유지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며 "실무접촉에서부터 양측 간 기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당장 양측은 회담의 형식과 개최 시기 및 장소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회담장에 누가 나설 것인가 하는 '격'의 문제까지 실무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남측 정부는 이번 당국자회담에 김양건 대남 비서와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마주 앉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과거부터 대남 비서가 장관보다 높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격'을 놓고 진통을 겪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측이 8·25 합의 이후 남측의 제안에 호응하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대화를 제의한 배경에는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북측이 당 대회를 앞두고 남북 간 대화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갑작스럽게 실무접촉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판을 짜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초 북측은 반 총장의 방북을 통해 자신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주도한다는 모습을 연출하려 했던 것"이라며 "'파리테러'라는 변수 등으로 인해 반 총장의 방북이 연기되자 대화 상대를 남측으로 바꾼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북측의 입장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8·25 합의 이행의 필요성을 느끼고 당국자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 나선 만큼 당국자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