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영화를 어떤 시선으로 찍을 것인가라는 걸 생각했을 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15년 전에 집을 나가 15년 후에 죽은 아버지가 네 딸이 살아가는 모습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딸을 축복하는 시선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연출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53) 감독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의 결론이 낙관적인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영화제 상영작 예매가 시작된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2분30초 만에 매진되며 한국 영화팬의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앞서 이날 오전 '영화의 전당' 소극장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한국 관객이 왜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에 그토록 열광했는지를 증명하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견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아야세 하루카·나가사와 마사미·카호·히로세 스즈 등이 출연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감독이 데뷔 이후 꾸준히 천착해온 가족에 관한 또 다른 작품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자매의 존재를 알게 된 세 자매에 관한 이야기로 세 자매가 13세 여동생과 동거하며 새 삶을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다.
고레에다 감독이 가족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사건 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져 삶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아무도 모른다'), 장남이 죽은 뒤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걸어도 걸어도'), 부모의 이혼으로 따로 살게 된 형제('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를 감독은 묵묵히 뒤따라 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그렇다.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떠났고, 15년이 흐른 뒤 병들어 죽은 아버지의 남겨진 세 딸.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겨진 또 다른 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상처받아야 했던 네 딸의 동거를 응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관찰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원작 만화가 나의 이런 연출 방식과 맞닿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는 가장 극적인 순간, 이를테면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도 집을 나간 그 기억을 단 한 번도 회상 장면으로 넣지 않는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작가 요시다 아키미의 '4월이 오면 그녀는'이다.
가족을 다뤄왔지만, 고레에다 감독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항상 달랐다. '아무도 모른다'(2005) '걸어도 걸어도'(2008)의 고레에다가 상처를 파고드는 잔인함을 보여줬다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의 고레에다는 상처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서늘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의 고레에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따뜻함을 드러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한 천착, 그러나 작품마다 달라지고 있는 감정선에 대해 고레에다 감독은 "어떤 것을 의식하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내 감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 10년 동안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아버지가 됐다. 그런 사적인 관심이 영화에 녹아든 것 같다"는 설명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가족이라는 주제에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 영화는 네 자매가 사는 집에 관한 이야기, 바닷마을에 관한 이야기, 궁극적으로 그 마을에서 쌓인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라며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기보다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던졌다. "그런 부분은 분명히 의식하고 연출한 것"이라는 고백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