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4년간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로 쑥대밭이 된 시리아 국민의 '시리아 엑소더스'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대국 일본이 난민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24일 아사히(朝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 난민 신청을 한 신청자는 5000명에 달했으나,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그 중 11명에 불과, 인도적 배려 차원의 체류 허가도 110명에 그쳤다.
일본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0명 이상의 시리아인 중 약 60명이 난민 신청을 했지만, 일본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것은 현재까지 불과 3명이다. 38명은 인도적 배려로 임시 거주가 허가됐다.
허핑턴포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지난 2012년 홀로 시리아에서 건너왔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주디에 대해 소개했다.
시리아 부잣집에서 태어난 주디는 아이가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 이에 시리아 정부는 주디가 지방 유지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클 것이라 판단해 위협을 가했고, 그는 한시 바삐 시리아를 탈출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는 우연히 일본 비자를 얻게 돼 가족을 남겨두고 2012년 홀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난민지원협회(JAR)로 연결됐지만, 난민 신청은 일본 정부에 기각되고 말았다. 이유는 "반정부 시위자들은 모두 위험에 처할 것이다. 주디씨 혼자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였다. 시리아의 상황을 무시한 처사였다.
인도적 배려에 의한 일본 체류의 일시 허가는 부여됐지만 불안정한 입장이어서 취업하기 위한 공적 지원 등도 받을 수 없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을 일본으로 데려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임신 중이던 아내와 그의 딸은 주디의 출국 후 더욱 상황이 악화된 시리아를 떠나 이라크 난민 캠프 천막에서 생활했다.
"가족을 생각하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잔다"고 호소했던 주디가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약 2년 반 만인 올해 1월이다. 2012년 시리아를 떠날 때 아내 뱃속에 있던 아들은 2살이 되어 있었다.
주디의 경우는 특별한 예일 뿐이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요"라는 지극히 당한 소원조차 막아 버리는 일본의 난민 제도.
난민 협약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 후반부터 인도차이나 난민 약 1만1000여 명을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난민 인정 심사시 유럽 등에 비해 조약을 엄격히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아사히는 보도했다.
이달 일본 법무부는 분쟁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체류를 인정하는 임시 방안을 내놓았지만, 일본 정부는 "난민 협약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난민 인정을 증가시킬 방침을 내놓지 않았다.
오가타 사다코(緒方貞子)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24일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민 수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적극적 평화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난민 수용에 신중한 일본 정부의 자세를 고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유엔난민기구(UNHCR)의 수장으로서 세계 난민 문제에 대처한 오가타 씨는 "당시부터 일본이 난민을 수용하게 하는 것에 애를 먹었다.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한심한 이야기다"라고 지적했다.
그 동안 일본에서 난민 신청을 한 약 60명의 시리아인 가운데 일본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것이 3명에 그친 것에 대해서 "시리아 사태에 대해 일본이 무지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에 오기 위해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은 적다"면서도 일본에 도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난민 보호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