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이후 정부의 오락가락한 대북정책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늑장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 남쪽 DMZ에서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로 우리 군 장병들이 중상을 입은 폭발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나흘 후인 8일에야 NSC가 '뒷북 회의'를 가짐으로써 적절한 대응시기를 놓치고 부처간 엇박자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당시 지뢰 폭발이 북한의 소행 때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군의 조사 결과를 기다렸고 북한이 매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 4일부터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했고 이를 청와대에도 보고한 상황에서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NSC는 국가안전과 관련된 외교·안보 정책을 다루는 회의체다. 국가안보실장을 위원장으로 대통령비서실장, 외교부·통일부·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국가안보실 제1차장,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상임위원으로 참여해 외교·안보 분야의 국내정책을 총괄 조정한다.
NSC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각종 도발이 있을 때마다 긴급 회의를 열어 안보태세를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지뢰도발과 관련한 NSC 상임위원회 회의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나흘이 지난 8일에야 열렸다. 실제 NSC가 뒤늦게 열리고 지뢰도발 사태에 대한 총체적 대응 방안이 정리되지 않은 사이 우리 정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기공식에 참석해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에 북한의 참여를 기대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같은 날 통일부는 북측에 남북고위급 대화를 제의했다. 지뢰 폭발로 우리 군 장병 2명의 다리가 절단된 다음날 있었던 일이다. 지뢰 폭발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도 북한에 손을 내미는 '어처구니'없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닷새 후인 10일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고 “혹독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할 것”이라며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NSC가 제때 열리지 못한 탓에 정부가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NSC가 소집됐지만 별다른 대응카드가 마련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청와대는 당시 회의 결과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북한의 도발에는 엄중 대응하되 대화는 대화대로'라는 애매한 입장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기조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뢰 도발에 대한 언급 없이 북한의 일방적 표준시 변경에 대한 유감만 표명했다. 청와대가 “북한이 이번 도발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면서 지뢰도발에 대한 첫 공식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이로부터 하루가 지난 후였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11일 필립 하몬드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지뢰 도발과 관련해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도 지속해 나가는 한편,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국방부와 통일부 간 엇박자 지적을 의식한 '면피성' 발언이란 해석도 내놓는다.
한 안보전문가는 “이번 사태는 국가위기상황을 진두지휘해야 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사실상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위기상황 대응시스템과 컨트롤타워 기능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1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NSC가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집중됐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청와대 NSC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하는 사람들이기에 도발 사실을 알았으면 그 즉시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해 논의를 해야지, NSC는 사건 발생 나흘만인 8월8일 열렸다. 보복 시점도 다 놓쳤다”며 NSC의 늑장대처를 문제 삼았다.
장군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도 “NSC가 8일에야 열린 것은 비통한 일이다. NSC는 4일 밤 중에라도 열어야 했다”면서 “청와대와 NSC가 너무 안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