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국가정보원 해킹 의혹'이 국정원 직원 임모(45)씨의 사망으로 점차 정치 쟁점화하는 모양새다. 경찰이 19일 공개한 임씨의 유서에 따르면 그가 숨을 거두기 전 해킹프로그램을 통해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을 벌인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혀 관련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임씨가 삭제한 자료는 100% 복구가 가능하고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며 확전을 경계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임씨의 사망으로 관련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고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與 “삭제 자료, 100% 복구 가능”
여당은 이날 임씨의 유서가 공개되자 당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임씨가 삭제했다고 밝힌 자료는 100% 복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과 정보위원인 박민식 의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분석한 내용은 국내 민간인(해킹)은 절대 없다. 선거에 관련된 내용도 없다는 것"이라며 "국정원에서 디지털포렌식을 통하면 100% 복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임씨가 관련 자료를 삭제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정원은) 대테러, 대북공작용 내용이 밝혀지면 큰 물의를 일으키진 않을까 싶어 삭제하지 않았겠냐고 한다"며 "이 직원은 자기가 (해킹)대상을 선정하고 하는 게 아니라 대상이 선정돼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는다든지 작업을 하는 기술자다. 그런데 이 문제가 불거지니 이런 사람들이 노출되면 안 되는데 정보위가 국정원에 와서 내용을 본다고 할까 그런 걱정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당은 또 임씨가 '국정원 해킹 의혹'이 불거지자 심한 압박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 같이 정열을 바쳐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직원들이 정치적으로 압박을 받아 세상을 달리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 놓고 국가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야가 국정원 현장검증을 하기로 합의했는데 야당이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자꾸 끌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며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하루 빨리 (이 같은 우려를) 종식시켜 주도록 야당도 협조해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건이 최근 정치권의 해킹프로그램과 관련해 국정원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며 "정치권은 국정원과 관련된 이슈만 불거지면 무조건 의혹을 제기하고 압박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분히 기다리며 사실관계를 확인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며 "정치권은 진중함과 인내심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여당은 임씨가 삭제한 자료에 대한 복구결과를 지켜보는 한편 야당에 여야가 합의한 대로 국정원에 대한 현장 방문을 조속히 진행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압박할 방침이다.
◆野, 임씨 사망으로 의혹 증폭…“선 의혹검증, 후 현장조사”
새정치민주연합은 임씨의 사망으로 국민적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고 주장하며 국회 차원의 청문회, 더 나아가 국정조사와 검찰수사 의뢰 등을 거론하며 여당 압박에 나섰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이날 "국정원의 사찰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관련 직원의 돌연한 죽음은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운영이 보도된 이후 국정원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들은 궁금해 한다. 고인이 죽음에까지 이른 배경에 대한 규명 없이 유야무야된다면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의혹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도 이날 "이번 정치적 자살은 다른 자살과 달라 납득하고 이해하기가 대단히 힘들다"라며 "임씨가 내국인을 사찰하지 않았다면 소명을 하면 될 것인데 그렇게 안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같은 당 유은혜 대변인은 이날 임씨의 유서가 공개된 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안타깝게도 임씨의 죽음과 오늘 공개된 유서로 국정원의 불법 국민사찰 의혹은 더 커졌다"며 "이는 증거인멸이다. 국정원은 삭제된 자료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삭제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따라 야당은 '선(先) 의혹검증, 후(後) 현장조사' 원칙을 내세우며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열고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국정조사나 검찰수사 의뢰를 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제2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비화 가능성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정국을 강타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이어 제2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지난 17일 이례적으로 해킹프로그램 구입·운용 의혹을 반박하는 내용의 입장을 내놓자 사태가 더욱 확산될 것을 우려해 일찌감치 입장을 표명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또 국정원이 이를 최초로 구입해 사용한 시기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임 시기와 겹쳐 당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등을 통해 선거에 개입하고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킹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했다는 임씨가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검찰 수사에 돌입해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검찰은 지난해 사상 초유의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국정원 직원의 자살 기도 후 수사의 동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수뇌부를 처벌하지 않고 간부급 직원만 최종 사법처리하는 데 그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