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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3천번의 손길로 살아나는 우리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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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번의 손길로 살아나는 우리 활


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김박영



40여년간
국궁 만들기에 전념해온 김박영 선생(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을 찾았다. 주택들이 즐비한
성주산의 가파른 골목 끝에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고, 숲을 병풍처럼 두른 ‘부천공방’ 건물이 자연처럼 버티고 있었다. 공방의 위치는 험한
고난을 이겨내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오른 장인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김박영 선생(73)의 풍모 또한 자연을 연상시켰다. 마른 체구에 개량한복을 입은 백발의 선생은 오랜 세월 단련된 듯한 단단하고도 섬세한
손을 갖고 있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우리 활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유독 환한 미소를 띠며 달변이 되는 선생은 천상 활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활 만들기 40년, 후회한 적 없다”

선생은 활의 고장으로 알려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예천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활을 만들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활 제작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선생의 선친 또한 활의 장인으로 고장에서 유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활 만드는 광경을 보고 자란 선생은 어깨너머로 활 제작법을
배웠다. 활 만들기를 좋아했던 선생이지만 부친이 돌아가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른 일에 뛰어들어야 했다. 가내수공업과 막노동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활 만들기 만큼 매력적인 일은 없었다.

결국 귀향해 활을 만들던 고종사촌을 도왔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부천 공방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선생은 가족과 함께
부천으로 갔고, 그곳에서 경기궁의 명장 김장환 선생을 만났다.

스승은 신통한 비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세세한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까다롭고 호된 나무람만 반복되었다. 공식은 없지만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뒤틀려 버리는 활과 선생은 고독한 씨름을 해야했다. 부천에 온 지 2년째 되던 해 스승은 비로소 선생을 제자로 인정했다.
감각과 재능에 자만하지 않은 꾸준한 노력의 결과였다. 선생의 본격적인 ‘활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40여년 동안 활을 만들면서 단 한번도 후회하거나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좋아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꼬박 앉아 집중해야 하고, 끊임없이 신경을 놓지 못하는 일이지만 선생은 활 만들기를 천직으로 알고 감사하며 살았다.
활 만들기의 매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던 선생은, 우리 활에 대해서는 막힘 없는 예찬론을 펼쳤다.



국궁의 생명력

“우리 활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멀리 나가고, 가장 탄력성이 높은 활입니다. 활 하나에는 8가지 동식물 재료가 들어가요. 소가
3마리나 들어가는데 힘이 안 좋을 수가 있겠어요”

국궁은 고구려 때 만들어진 전통 활의 제작기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활로 유명한 나라였다. “일본이 검, 중국이 창이라면 한국은 활이었어요. 주 무기였으니 궁시는 당연히 국가 장려 사업이었죠” 총이 등장하기
전까지 활은 무기이자 예술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따라서 우리 활의 제작기법이나 기능은 거의 완벽한 경지다. 또한, 그만큼 고도의 기술을
요하고 만들기가 까다롭다.

활의 재료는 100% 동식물성이다. 몸체는 유연한 대나무이다. 양끝에는 뽕나무가 붙어 탄력을 증가시킨다. 활의 중앙 손잡이에는 참나무 손잡이가
달린다. 대나무 몸체 바깥부분은 물소뿔을 한겹 덧댄다. 안쪽에는 소심줄을 두들겨서 얇게 겹겹이 붙이고, 방수제 역할을 하는 화피(벗나무
껍데기)를 덧붙인다. 민어부레를 녹인 풀은 모든 과정에서 접착제로 쓰인다. 소뿔 두 개에 소등힘줄이 두 개는 들어가기 때문에 최소한 소가
3마리는 있어야 하는 셈이다.

화학 재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어떤 화학재료도 자연재료의 유연함과 탄력을 따라갈 수 없다. 자연재료이기 때문에 계절에도 민감하고 재료의
상태에 따라 다루는 정도도 달라야 한다. “우리 활은 생명이 있다”고 선생이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활의 두께와 휘어짐은 부분마다 다른데 손끝의 감각만으로 조절해야 한다. 민어부레풀의 농도도 눈대중으로 파악한다. 오로지 오랜 경험과 집중력,
타고난 감각만이 통하는 것이 활 제작이다. 여기에 3-4천번의 손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활 만들기는 말 그대로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작업이다. 또한 재료의 성질 때문에 10월 중순에서 다음해 3월 초순까지만 본격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작업 과정도 단계마다 시간의 경과를
요하기 때문에 활 하나를 만드는데는 꼬박 1년이 걸린다.


후계자 양성 어려워

우리 활은 시위를 걸기 전에는 동그랗게 말려있다. 시위를 얹어 190도 뒤집으면 제 모습을 찾게 된다. 국궁의 엄청난 탄력은 여기서 나온다.
외국인들은 활의 앞뒤가 완전히 바뀌며 말리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안타까운 것은 정작 한국인들은 우리 활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

선생은 “차츰 잊혀진다는 것이 아쉽다”며 후계자 양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정성을 다해 가르칠 생각이에요. 하지만
온종일 앉아서 세세히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다 보니 대부분 며칠을 못 버텨요. 요즘 누가 돈벌이도 안돼는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궁시장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은 걸린다. “10년 해도 겨우 10개 만든다”는 것이 선생의 말이다. 10년도 그냥 10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자세여야 한다. 후계자 찾기가 쉽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행히 막내 아들이 전수 장학생을 자처해 아버지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활을 손에서 놓지 않던 선생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활이 있었기에 행복했다”며 밝게 웃는다. 오로지 좋은 활을
만들기 위해, 3천번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 고된 작업을 ‘행복하게’ 해왔던 김박영 선생. 빠른 것, 인공적인 것, 손쉬운 것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상실한 ‘가치’를 선생의 활은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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