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시한폭탄'처럼 남아있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25일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됐다.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올 것이 분명함에도 박 대통령이 이 같은 카드를 내던진 것은 앞으로 절반가량 남은 임기 동안 능동적으로 국정의 키를 쥐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이번 정국의 향배에 따라 박 대통령으로서도 향후 여당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국정동력을 살려나갈 수 있을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함과 동시에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에 비난의 화살을 겨냥했다. '구태정치', '배신의 정치', '패권주의' 등 원색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했다.
특히 그동안 청와대를 향해 날을 세워왔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거론하면서 이번 사안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 것은 일단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시각이다.
그동안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등의 처리를 놓고 국회에 대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왔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세금과 복지문제, 사드(THAAD) 논란 등에 이어 국회법 개정안 문제로 엇박자를 내온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이번 사안과 결부시키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임기를 절반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이번에 전환점을 모색하지 못할 경우 남은 박근혜정부 임기동안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끌려다니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박 대통령도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염두에 두고 이번 거부권 행사를 검토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현직 여당 원내대표를 겨냥하면서 직접적으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이번 선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거부권 행사를 통해 강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그간 당·청 협의 과정 등에서 엿보인 청와대와 여당의 불협화음을 불식시키고 청와대 위주로 권력구도를 재편하거나 그게 불가능할 경우 아예 남은 임기 선을 긋고 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과는 각을 세우면서 국민을 강조한 점은 이 같은 뜻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정치권을 자신의 뜻대로 끌고가지 못할 경우 오히려 자신을 국민의 편으로 대입시키고 대신에 '정치권 대 국민'이라는 구도를 형성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른바 '마이웨이'를 통해 남은 임기의 동력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메시지를 통해 당·청 간 주도권을 되찾거나 아니면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는 찾아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향후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비롯한 여권의 상황에 따라 박 대통령과 정치권의 관계도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이날 거부권 행사가 최근 추락하고 있는 지지율에도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마지노선인 30%가 무너졌다는 일부 여론조사가 나온 가운데 강한 리더십으로 반전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 때문에 이미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정치권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민심을 어느 정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정국에 파장을 몰고 온 국회법 개정안 재의요구안 의결 이후에도 외부 일정을 비롯해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 등 평상 업무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이후 외부에서 열린 해외건설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오후에는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자이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 접견 및 제1차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 등의 일정을 가졌다.
이 역시 정치권의 상황을 괘념치 않고 외교 및 경제, 개혁과제 등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소화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