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침체에서 벗어난 일본 경제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생산과 투자는 물론이고 소비마저 줄어들어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 경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9일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확정치는 전분기 대비 1.0%를 기록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3.9%에 달하는 수치다. 1990년 이후 최고치다.
이에 비해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8%로 2013년 1분기 이후 2년 만에 일본에 뒤졌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한일간 성장률이 역전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1분기 1%대였던 GDP는 소비세 인상의 충격을 받았던 2, 3분기에 각각 -1.8%, -0.5%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4분기 0.3%로 플러스 전환 이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이번 성장률 확정치는 지난달 20일 내놓은 잠정치 0.6%도 훌쩍 뛰어넘었다. 실제 성장률이 잠정치와 이처럼 크게 차이가 난 이유는 기업 설비투자가 대폭 상향 조정(0.4%→2.7%)됐기 때문이다. 특히 소매업과 유통 등 서비스업의 투자가 증가했다.
엔저라는 실탄을 장착한 일본 기업들이 수출 실적을 회복하면서 설비 투자를 늘릴 여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투자 증가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일본 경제는 한국에 비해 내수 규모가 월등히 크기 때문에 기업의 설비투자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수익이 좋다 보니 비품을 확충하는 등의 투자가 있을 수 있다"며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호텔들도 투자를 늘리는 등 도매업과 서비스업 등 내수형 서비스업의 성장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엔저로 인한 수출 호조와 외국 관광객 급증, 기업 투자에 따른 소비 회복 등으로 일본 경제가 본격 회복세에 들어선 모양새다.
반면 우리 수출 경기는 수출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 하락과 저유가로 인한 수출 제품 단가 하락으로 부진한 상태다.
게다가 살아날 기미를 보였던 내수마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로 얼어붙으면서 탈출구 찾기가 어려워졌다.
당장 썰렁한 백화점과 면세점이 유통 업계 타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가활동과 외식 등을 자제하는 등 실물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서비스 및 자영업 위축이 우려된다.
게다가 한국 여행을 계획했던 관광객들이 우르르 일정을 취소하면서 가뜩이나 엔저로 관광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일본으로 손님을 다 빼앗기는 판이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 수는 240만 명으로 전년 대비 84% 급증했다. 이들이 메르스에 대한 공포로 한국행 대신 일본행 비행기를 탈 가능성을 고려하면 올해 이 수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스 발생 당시 홍콩을 방문하는 외국인 수(중국 제외)는 평소의 절반 이하인 20만명 내외로 급감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직후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급격히 악화됐음에도 금리 인하는 8월에 이뤄지는 등 적극적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경제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메르스 사태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있는 관련 업종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속하게 산업 및 금융 측면의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