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은행에 주택담보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은행 창구 직원의 얘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당초 그는 앞으로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어 고정금리 대출을 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상품을 각각 보여주며 당장 금리가 더 저렴한 변동금리 상품 가입을 권하는 창구 직원의 말에 솔깃해졌다.
그는 "은행 직원이 권하는 대로 변동금리 상품에 가입했다가 3년쯤 뒤에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 최근 고정금리 대출 대비 낮은 금리 수준을 앞세워 변동금리 대출을 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미래의 금리추이를 알 수 없는 게 현실이어서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기에 고정금리 대출 상품의 금리가 잇따라 상향 조정되면서 은행 창구에서 변동금리 대출이 유리하다는 인식을 고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변동금리 대출 증가가 향후 기준 금리 인상 이후 가계부채의 추가 부실을 불러올 또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에서 판매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가 한 달 새 0.53%포인트 가량 올랐다.
국민은행의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상품 '포유(FOR YOU) 장기대출'의 최저 금리는 4월 3.15%였다가 지난달 20일 3.38%로 0.23%포인트(p) 상승했다.
또 우리은행의 '우리아파트론' 금리 구간도 4월에 2.74~4.13%(혼합형 기준)까지 내렸다가 지난달 20일 3.22~4.81%로 조정됐다.
이는 최근 국고채 금리가 상승한 결과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는 주로 국고채 금리 수준에 맞춰 산정되는데, 미국과 유럽의 경기회복세에 안심전환대출 이후 MBS 물량이 풀리면서 최근 국고채 금리가 큰 폭으로 뛰었다.
반면 변동금리 대출의 경우 시중은행들의 예금 금리 수준이 반영된 코픽스(COPIX)에 연동하는 상품이 많아 이자율이 하향세다. 우리은행의 우리아파트론의 신규기준 변동금리 상품은 최저금리가 지난달 말 2.71%에서 최근 2.58%까지 내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받기 위해 찾아온 고객에게 고정금리 상품과 변동금리 상품의 장단점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만 최근 상황만 놓고 보자면 변동금리가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실 최근처럼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은 순이익 감소에 고심하는 은행권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변동금리가 낮아진 최근의 분위기에 편승, 고객에게 변동금리 대출을 권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은행권이 급증하는 가계부채 현실에는 눈감은 채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에 고객에게 위험부담을 전가하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 1분기 가계부채는 1099조3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11조6000억원 증가했다. 금리가 1% 오를 경우 가계의 이자 부담은 11조원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변동금리 대출 고객은 부담이 더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 금리가 오른다면 고객들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미 가계부채 상황은 금융당국이 고정금리형 대출을 늘려 금리인상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미온적인 정책 만으로는 컨트롤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형 대출의 비중을 2017년 말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30조가 넘는 재원을 풀어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한 것도 고정금리 가계 대출의 비중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금융당국에서 원하는 대로 풀려가지는 않고 있다. 가계 부채 문제에 대한 정책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강 연구원은 "가계부채 구조 개선과 부채규모 증가 억제와 더불어 가계소득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존의 기업편향적 경제운영 기조에서 벗어나 가계부문에 대한 배려를 늘리는 방향으로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계부채 정책의 핵심은 소득에 있다"며 "저소득층은 질 나쁜 일자리에 집중되어 있는데, 일자리 안정성을 보장하거나 자영업자의 경영환경을 개선하는 등 소득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