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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벌총수에 관대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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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구속 없는 1심 실형→2심 집행유예’
재판부의 판결로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사실 이번 판결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동안의 관행을 봤을 때 재벌의 경우, 1심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하지 않으면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컸다. 이것을 두고 ‘법정구속 없는 1심 실형→2심 집행유예’라는 방법은 화이트 칼라 범죄에 나타난 판결 공식처럼 돼 왔다. 대신 ‘기부’나 ‘사회봉사 명령’을 처벌로 삼는다. 유죄는 인정하되, 처벌을 가볍게 하고 명분을 세우는 식이다.
정몽구 회장은 무려 1,034억원의 회삿돈을 비자금으로 조성하고 계열사에 2,1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치는 등 배임 횡령 혐의가 인정된다. 정 회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최저 5년형이 선고된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는 징역 3년형을 선고했고 2심 재판부는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일반인과 달리 불구속 상태에서 받았다.
참여연대는 “‘역시나’규모가 큰 재벌일수록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그동안의 관행에서 사법부가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한탄했다. 일반인도 같은 방식의 판결을 받았을까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결론은 ‘재벌총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재판부도 우회적으로 재벌총수로서의 명분을 들어 판결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이는 법원이 재벌 총수의 지분 유지나 부실 계열사 지원, 정치자금 및 뇌물 제공 등을 위한 비자금 조성을 개인적 이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재산상의 이익을 본인이나 제3자가 취득하는 것이 배임죄”라며 “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으로 얻은 이득이 없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 회장 선고를 맡았던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감옥에 넣어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사회봉사 명령 확대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판결 후 비난이 빗발치자, 이 수석부장판사는 “비판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비난을)달게 받겠다”는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구속하는 것보다 사재를 환원하는 게 국가적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총수와 같은 사라들은 얼마든지 돈으로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을 법원이 보장해 준 셈이다.
양형기분 적용 ‘관행화’
경실련은 재벌그룹의 비리가 발생하면 재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선처할 것을 호소하고 법원은 양형기준을 임의로 적용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사면복권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 정착됐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재벌총수의 판결특권은 경제범죄와 관련 없는 ‘형사범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지난 9월11일 폭행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이 사건이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는 “피해자(종업원)들의 거짓말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순폭행 사건으로 볼 수 없다”던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정면 배치된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전국 형사항소심 재판장 회의를 열고 사실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1심의 양형 판단을 존중하기로 한 의견을 뒤집은 것이다. 법원이 스스로 온정주의 관행을 없애겠다고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경실련은 논평을 통해 “재벌 총수 앞에 서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상실해 버리는 법원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일반인처럼 감옥에 가느니, 경제활동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며 내린 ‘기부’나 ‘사회봉사’ 명령은 처벌의 정의를 혼동할 정도다. 재판부는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과 8천억대의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전제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집해유예를 선고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죄를 지은 자가 누가 누구에게 강연을 하느냐, 돈으로 해결하면 다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폭행혐의를 진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 조건으로 사회봉사 명령 2,090시간을 선고 받았다.
기업범죄인들의 ‘변제 피해액’이 범죄로 얻은 실제 ‘이득액’보다 훨씬 적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범죄를 통해 직접적으로 얻은 이익뿐 아니라 경영권 유지나 확장·승계 등 간접적 이익까지 박탈해야 피해액을 변제했다고 봐야 하는데, 법원이 이에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 쇼’를 하는 재벌총수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검찰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불법 경영세습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소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과 법원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서는 나라를 들썩이며 싸우지만 재벌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은 똑같다”며 “검찰과 법원은 우리나라에 유전무죄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환상의 복식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의 재벌은 재판 중에 ‘건강악화’를 명분으로 선처를 바라는 행위도 일반화 됐다. 재벌이 처벌 받을 상황에 놓이면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뒤 잇달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행태가 빈번하다. 실제로 구속기소된 재벌총수 중엔 대부분이 건강을 이유로 병원행을 택하거나, 형이 정지된 경우가 많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5월 구속된 뒤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등 구속기간의 3분의 1(40여일)을 구치소 밖에서 보냈다. 김승연 회장도 우울증과 충동증세가 심해졌다며 재판부가 지난 8월 구속집행을 정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9월12일자 신문에서 한국 재벌들이 처벌 받을 상황만 되면 병을 핑계로 위기를 모면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그 행태를 보면 지난해 2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출국 5개월 만에 휠체어를 타고 귀국했다. 이 회장은 ‘안기부 X파일’ 논란이 일던 2005년 미국으로 떠난 바 있다. 귀국 당시 이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편법 증여 사건과 관련 검찰에 고발된 상태였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횡령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재판을 받았을 때 휠체어를 타고 출석했다. 정 회장은 8월 6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보복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김승연 회장은 한술 더 떠 휠체어에 환자복까지 입고 재판에 나타났다.
FT는 “한국 법원은 기업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회사를 계속 경영하도록 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믿는 것 같다”며 “점잖게 행동하는 기업인,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다루는 사법제도가 국익에 더 부합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경제인 처벌은 ‘집행유예’?
법원이 횡령이나 배임죄를 저지른 재벌총수나 경영자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이유로 주로 빼돌린 돈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거나 나중에 갚았다는 이유를 든다.
경제개혁연대가 2000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또는 배임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인 239명의 양형사유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106명 가운데 65명(61.3%)이 ‘개인적 이득 없음’을 이유로 실형을 면했다. 또 ‘전과없음’(56명 52.8%)과 ‘피해액 변제’(55명 51.9%)가 뒤를 이었다.
재벌 총수 일가의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29명 가운데 28명이 “빼돌린 돈을 갚았다”는 이유로 실형을 피했다. 이에 대해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은 “피해액 변제가 집행유예로 이어지면 총수 일가나 전문 경영진들에게, 범죄를 저질러도 재력을 이용해 실형을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문경영인들의 경우 70.1%(54명)가 ‘총수 지시에 따랐을 뿐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서도 “범죄를 주도하거나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고위직을 유지하는 개인적 이득을 얻고 있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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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칼럼】 선택은 본인 책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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