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16 (월)

  • 구름많음동두천 -0.5℃
  • 맑음강릉 5.0℃
  • 연무서울 3.1℃
  • 박무대전 1.9℃
  • 박무대구 3.2℃
  • 연무울산 5.4℃
  • 박무광주 3.4℃
  • 연무부산 7.2℃
  • 흐림고창 0.7℃
  • 구름많음제주 7.4℃
  • 흐림강화 0.6℃
  • 흐림보은 -0.7℃
  • 흐림금산 -1.0℃
  • 맑음강진군 3.4℃
  • 흐림경주시 5.3℃
  • 맑음거제 7.1℃
기상청 제공

문화

[이재록 칼럼]믿음의 씨앗

URL복사

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다니는 교회는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마당은 흙탕물이 넘쳐 성도들의 양말과 구두가 젖기 일쑤였습니다. 이것을 본 소년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여 성도들을 평안케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벽돌로 포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벽돌공장에 나갔습니다. 그날그날 번 일당으로 벽돌을 사서,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교회 마당에 한 장 한 장 깔기 시작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몇 주째 벽돌을 까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여 일찍 교회로 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열세 살짜리 아이가 정성스레 벽돌을 깔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성도들은 감동을 받고, 하나로 똘똘 뭉쳐 교회 입구를 포장하였습니다.

나아가 낡은 성전을 헐고 새 성전을 건축하였지요. 소년의 작은 행함이 성전건축에 대한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 그가 놓은 벽돌 한 장 한 장은 믿음의 씨앗이었습니다.

소년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지만, 신실히 믿음의 씨앗을 심었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백화점의 창시자 ‘존 워너 메이커’로, 훗날 미국에서 거부가 되었고 체신부장관까지 역임하는 축복을 받았지요.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불변의 법칙입니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고 응답의 열매를 거두려면 먼저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어떤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그 열매도 달라지지요.

봉사로 심으면 몸의 강건함을 얻고, 사랑과 전도를 심으면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으며,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면 시편 37:4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창세기 27:4에 보면, 이삭이 아들에게 축복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축복의 씨를 심게 합니다. 즉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합니다. 이삭은 심고 거두는 영적인 법칙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씨를 어떻게 심어야 축복과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는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사랑과 믿음의 향을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천하 만물의 창조주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서 심으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의 씨를 뿌려서 축복을 거두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 명예나 재물 등을 구하는 것이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땅의 복을 구하지 말고 오직 천국에 소망을 두고 신앙생활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기 원치 않으시고 모든 분야에서 풍족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심지 말고, 믿음의 씨앗을 즐겨 심음으로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을 받아야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채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8절) 글: 이재록 목사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방송 이사장>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복귀, 16일 서울특별시장 후보자 추가 공천 접수 공고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지난 13일 사퇴를 선언했던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했다. 이정현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은 15일 입장문을 발표해 “지금 국민의힘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위기 속에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작은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다”라며 “의사가 심장이 멈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듯이 지금 우리 당에도 그 정도의 결단과 충격이 필요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국민의 힘에 의해 존망이 위태로울 수준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어제 저녁 당 대표께서 공천혁신을 완수해 달라며 공천관리위원장인 저에게 공천과 관련된 전권을 맡기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저는 그 말씀을 권한이나 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의 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책임지고 결단하라는 당과 국민의 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그 권한을 무거운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염치없지만 다시 공천관리위원장직을 수행하겠다.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 역시 제가 지겠다”고 밝혔다.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발표해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오는 월요일(3월 16일) 서울시장 후보 추가 공천 접

경제

더보기
대미투자특별법 국회 통과, 불가피한 사유 있으면 상업적 합리성 확보 안 된 투자 허용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12일 본회의를 개최해 대미투자특별법인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안)을 통과시켰다. 대미투자특별법 제2조(정의)는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전략적 산업 분야’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산업 분야를 말한다. 가. 조선. 나. 반도체. 다. 의약품. 라. 핵심광물. 마. 에너지. 2. ‘전략적투자’란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의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이하 ‘양해각서’라 한다)에서 대한민국이 전략적 산업 분야에 투자하기로 약정한 2,000억 미합중국 달러의 투자(이하 ‘대미투자’라 한다)와 조선 분야에 대한 민간투자, 보증, 선박금융 등을 포함하여 미합중국(이하 ‘미국’이라 한다)이 승인한 1,500억 미국 달러의 투자(이하 ‘조선협력투자’라 한다)를 말한다. 3. ‘한미 협의위원회’란 양해각서에서 규정한 산업통상부 장관이 위원장이면서 대한민국과 미국이 각각 지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협의위원회를 말한다. 4. ‘미국 투자위원회’란 양해각서에서 규정한 미국 상무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투자위원회


문화

더보기
사유와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좋은땅출판사가 ‘삶의 여백’을 펴냈다. 이 책은 백두대간 대미산 자락의 산촌에서 살아가는 저자가 인생 후반부에 마주한 사유와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다. 도시에서의 치열한 시간을 내려놓은 뒤 자연 속 느린 생활을 이어 가며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저자 박태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영전략본부장과 인천·경기지역본부장을 역임했으며, 대학에서 보건학을 연구하고 강의해 왔다. 현재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느림의 모놀로그’, ‘새벽의 고요’, ‘저물녘 오솔길’ 등 에세이와 여행 에세이 ‘旅路 - 나그네 길’ 등을 통해 꾸준히 글을 발표해 왔다. ‘삶의 여백’은 은퇴 이후의 시간을 새로운 성찰의 시기로 바라본다. 책에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 아내와 함께 걷는 산길,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자연 속 일상의 풍경 등 다양한 장면이 등장하며 인생 후반부의 의미를 탐색한다. 특히 이 책은 개인적 경험과 문학적 사유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멜빌의 ‘모비 딕’, 카뮈의 ‘시지프 신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카프카의 ‘변신’, 프롬의 ‘사랑의 기술’ 등 세계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집착과 부조리, 사랑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분노를 잠재운 적절한 리액션과 공감의 힘
갈등의 시대, 우리는 왜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지 못하는가.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오이도에서 진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안은 여느 때보다 고단한 공기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노인석 주변은 빈틈없이 붐볐고, 연로한 분들이 서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정류장에서인가 붐비는 노인석의 중간 한 자리가 나자마자 한 어르신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채 두 정류장을 가기도 전에 깨졌다. “아 XX, 좀 저리로 가라고!” 먼저 앉아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과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좁은 자리에 가방까지 메고 끼어 앉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앉은 이는 “나도 앉을 만하니 앉은 것 아니오”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폭언 앞에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어느 누구도 그 빈자리에 선뜻 앉지 못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라퍼 계열인 필자는 객기 부리듯 용기를 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화를 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