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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무용지물 변해버린 신춘문예 虛와 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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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변해버린 신춘문예 虛와 實


획일화, 이벤트화 되어 가는 문인선발제도의 문제점




90년대들어 문학판은 끊임없는 추문과 비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학의 위기와 문단의 병폐에 대한 논쟁들은 해결되기보다는,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문예지 운영의 상업성, 문학상 시상 및 비평의 불공정성, 신인등단제도의 무분별함 등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들은, 문학제도의 존립마저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해는 뜨고, 올해도 문단과 언론의 ‘이벤트’인 신춘문예는 어김없이 열렸다.
신춘문예에 대한 열기는 ‘한국문학의 위기설’을 엄살로 느끼게 할 정도로 뜨겁다.

올해 신춘문예는 중앙지의 경우, 1만여 편에서 5천여 편으로 작년보다 응모작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대다수의 문학 지망생들이
새해 벽두 전국에 배포될 일간지에 자신의 작품과 얼굴이 장식되는 ‘화려한 등단’과 ‘짭짤한 상금’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화된 언론, 제도화된 신춘문예

문예지의 추천과 신인상 등의 문인선발제도는 돈과 인맥이 오가는 제도운용의 혼탁상과 잡다한 잡지들에 의해 함량 미달인 신인의 대량 배출이라는
문제가 자주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신춘문예는 제도의 운용방식이 아닌 제도 자체의 무용론이 거론되고 있다.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를 통해 처음 시작, 한국문학의 주춧돌로서 성장해왔다. 근대 이후 언론과 문학은 긴밀한 공생관계였다. 문화적
매체나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때, 신문연재 소설은 신문의 판매부수를 결정지을 정도로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문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발표지면이
딱히 없었으므로 신문은 문인에게 절대적인 매체였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언론은 필연적으로 작가 선발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신춘문예의
발전에는 언론과 문단의 시대적 환경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이 변한 현재에도 신춘문예는 필요한가? 이것이 신춘문예 폐지론이 제기된 배경이다.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정문제 편집위원은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단순히 매체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언론은 이미 하나의 권력으로 제도화되었다. 신춘문예 또한 언론이 주관하는 만큼
불가피하게 제도화되었다는 것이 신춘문예 무용론자들의 생각이다.

정씨는 “미등단 작가라도, 언론이라는 제도권에 의해 승인되어야만 떳떳한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신춘문예 제도의 이 기묘한 형태는 근대
사회의 산물인 저널이 가장 전근대적으로 악용되는 방식일 따름이다.”고 꼬집었다.


신춘문예용
작법 나돌아


현재 신춘문예 제도가 규격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타 문인선발제도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신춘문예는 언론이 주관한다는 면에서
‘문인자격시험’의 형식을 벗어나기가 본질적으로 어렵다.

대학에 ‘신춘문예 특별부’나 사설 문화센터에 ‘신춘문예 고시반’이 존재하는 것은 신춘문예가 학습되어질 수 있고, 요령이 전수되어질 수 있을
만큼 정형화되었다는 증거이다.

문학지망생들 사이에 신춘문예용 글쓰기 기법이 나돈 지는 이미 오래다. 대체로 파격적인 실험이나 지나치게 비관적인 내용은 응모작으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사이의 법칙이다. 새해 벽두에 실릴 글이기 때문에 미디어의 품격에 어울리면서, 밝고 건강하며 따스한 내용이 환영받는다는
것이다. 그 법칙은 실제로 적용되는 편이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안정적이고 고전적인 기법의 작품들로 치중되고 있다는 평론가의 비평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각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는 심사위원 명단이 중요한 정보로 교환되기도 한다. 교수들이 직접 심사위원의 성향을 세세히 짚어주는 경우도 있다.
문학지망생들이 심사위원의 성향에 따라 작품을 맞춰 쓰는 웃지 못할 일이 해마다 벌어지는 것이다.



심사위원 ‘그 나물에 그 밥’

무수히 많은 작품 중 단 한편을 뽑는 신춘문예의 특성상 응모자들은 심사위원의 성향을 고려해서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심사위원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다. 특정 심사위원의 중복 독점은 신춘문예가 획일화된 신인을 양산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다. 담합과 독점이라는
문단의 병폐가 신춘문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소설가 정도상씨는 “최근 10년간 특정의 일부 소수 문인이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다른 신인문학상 심사를 독점함으로써, 문학의 출발에서부터
제한된 자기세계를 가져야 하는 문제점 이 있다.”고 우려했다.

인지도와 지명도를 중요시하는 언론사들은 엇비슷한 성향을 지닌 원로급 작가에게 심사를 의뢰하였고, 이들이 중복해서 신춘문예 심사를 맡음으로써
신춘문예용 작품의 규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단 전체가 거대한 획일화, 몰개성화에 빠지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씨는 심사위원의 독점은 만성화, 획일화 외에도 파벌과 섹트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신인은 자연히 상을 탄 사람과
얽히며 권력의 울타리에 소속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어떤 중심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이 방씨의 의견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진씨는 “인위적으로라도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세워야하지 않는가. 특히 중복심사의 경우 중앙의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지방의
신춘문예까지 독점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제도화하지 않으면 해결은 요원한 것 같다.”며 제도적인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언론사의 제도 진행방식도 문제

신세대 문인들은 신춘문예의 연령대를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설가 장정일씨는 문예지 ‘상상’을 통해 신인의 등단 통로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춘문예를 비롯한 문인선발제도는 “보수적이고 무성의하며 편협한 평론가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장씨의 생각이다.
신춘문예가 실험적 작품을 양산하지 못하는 것도, 심사위원이 원로문인들로만 구성되어있다는 점과 연관이 깊다.

이같은 심사위원 성향의 독점과 일률성도 문제지만, 언론사의 제도 진행 방식도 계속 지적되어왔다. ‘단편소설 1편, 시 5편’이라는 응모편수는
심사하기에 수월한 양을 기준으로 정한 듯한 혐의가 짙다. 1편의 단편소설이나 5편의 시로 작가적 역량을 가늠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특히,
단편 소설 1편으로 ‘문인’의 공식직함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에 요행과 우연이 끼어들 가능성이 많다.

심사 기한의 촉박함도 작품 선정의 신중함에 의문을 품게 한다. 신춘문예 예심의 경우, 통상 세 사람의 심사위원이 여관을 잡아서 하루만에
‘해치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춘문예 제도의 허점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박범신의 경우다.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박범신의 당선작은 예심에서 떨어졌던 작품을 다시 스크린하다 건져올린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수의 작품 중에서 한 작품만 선정하는 제도상 불합리한 요소가 끼어들 여지는 많다. 우수한 작가를
색출하기보다는 이벤트라는 인상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잡지의 문학상이 2-3명을 선정하거나 당선작 없음으로 처리하는 등 때때로 탄력성을
발휘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당선자에
대한 지속적 배려 부족


신춘문예가 연중 이벤트로 인식되는 데에는 신춘문예 당선 작가들을 해당 언론사가 꾸준히 육성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론이 문학 작품에
많은 부분 할애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신춘문예는 언론사의 일회성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춘문예는 가장 공식적이고 대표적인 문인 등단 제도다. 따라서 문학지망생들은 신춘문예에 등단하면 작가로서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순간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청탁을 받고 여기저기 매체에 나오는 시기는 봄이 채 가기 전이다. 언론사들은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한 두 번 청탁을 할 뿐, 그 후로는 끝이다. 그것도 소설 당선자의 경우는 지면상 꽁트 정도가 실린다. 이것이 90년대 이후 신춘문예의
현실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이 문예지로 등단한 신인보다 생명력이 짧아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력있는 문인을 발굴해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문인등단제도의 존립이유다. 오늘날 신춘문예는 한국문학에 기여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는가? 당선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없으므로
신춘문예는 이 질문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매체의 다양화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등단 경로는 점차 확대되고 있고, 외국처럼 출판위주로 등단의 형태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춘문예란 관습적 이벤트는 계속되어야 하는지. 변화된 시대에 이름값 못하는 신춘문예에 대한 비판이 ‘문학판
논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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