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일명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인 유우성(34)씨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상 초유의 증거조작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간첩 증거조작' 사건 피고인들이 모두 유죄를 선고받은 만큼 향후 큰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김우수)는 28일 모해증거위조 등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모(48) 과장과 대공수사국 이모(54) 처장에게 각각 징역 2년6월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대공수사팀 권모(50) 과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주선양총영사관 이인철(48) 영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국정원 협조자' 조선족 김모(61)씨에게 징역 1년2월, '제2협조자' 김모(60)씨에게는 징역 8월을 선고했다. 다만 불구속 재판을 받다 이날 실형이 선고된 이 처장은 범죄사실에 관해 치열하기 다투고 있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구속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권 과장의 일부 범행을 제외하고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판단했다. 또 이들의 범행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행위로 그 죄책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안전보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정원 직원은 더욱 엄격한 준법의식으로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 및 증거수집 업무를 행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국정원에게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훼손시켰다”고 판시했다.
이어 “영사확인서 등은 그 필요성이 큰 재외공관의 공문서에 대해 그 내용의 진실성에 관한 공공의 신용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며 “이들의 범행으로 국정원의 임무 수행에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됐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국정원 직원들이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고 국가 안보를 위해 20년 이상 헌신한 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또 협조자 김씨에 대해 “피고인의 범행은 대한민국 형사사법 기능을 방해하는 행위로 죄질이 불량하다”면서도“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수사에 적극 협조해 실체적 진실발견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제2협조자에 대해서는 우선 대한민국 법원이 김씨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한 후“위조 범행에 주되게 관여했으나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김 과장에 부탁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던 유씨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항소심 재판부에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등 증거자료를 위조 또는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유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이들의 증거 조작 정황이 드러나면서 큰 논란이 일었고, 유씨는 2심에서도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처장은 권 과장, 김 과장과 공모해 지난해 11월 중국 국적의 협조자를 통해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에서 유씨에 대한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취지의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 발급확인서를 위조했다.
또 인터넷팩스 발신번호를 조작해 마치 허룽시 공화국에서 주선양총영사관으로 출입경기록 확인서를 전송한 것처럼 가장해 법원에 제출했다.
이 처장 등 4명은 지난해 12월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에 문의하고 변호인 측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정황설명 일사적답복)를 전달받았다'는 내용의 허위 확인서를 이 영사 명의로 작성하고, 이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처장과 권 과장은 지난해 9월 말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에 대해서도 '유가강(유우성) 등 출입경사실을 확인하고, 그 내용이 사실과 틀림없다'는 내용의 허위 확인서를 이 영사로부터 전달받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김 과장은 국정원 협조자 김씨와 공모해 지난해 12월 싼허(三合)변방검사참 명의 답변서를 위조하고 이를 진본인 것처럼 속여 허위 범죄신고서와 함께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올해 2월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 1부와 장춘시 공증처 명의 공증서 2부를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같은 수사결과를 토대로 우선 김 과장과 이 처장, 이 영사와 협조자 김씨 등 4명 재판에 넘긴 후 검찰 수사 도중 자살을 기도했던 권 과장과 제2협조자 김씨를 이후에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