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상미 기자}“예수님께서는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근원적인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은총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프란치스코(78) 교황이 18일 오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반도에 던지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도록 기도하자”면서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청했다.
교황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집전하는 이 미사가 마지막 정점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미사에서 하느님께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한반도 안에서 하나의 특별한 공명(共鳴)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재난과 분열로 흩어졌던 백성을 일치와 번영 속에 다시 모아들이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제시합니다”라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것은 희망으로 가득 찬 하나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약속은 한반도의 한민족이 체험한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듣게 된다고 짚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60년 이상 지속돼 온 분열과 갈등의 체험”이라면서도 “회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긴박한 부르심은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을 제시한다”고 전했다.
베드로가 예수에게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가 대답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1-22)를 인용하며 “화해와 평화에 관한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냅니다.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이 나라에, 그리고 특별한 방식으로 한국 교회에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고 인사하며 미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미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시작 기도, 말씀 전례, 성찬 전례 순으로 진행됐다. 성경 내용을 낭독하는 '독서'는 배우 안성기(사도요한)가 맡았다.
신자들이 기도하는 '보편지향 기도' 이후 다문화가정 대표로 이봉선(사무엘)씨 등이 미사에 사용할 제병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예물봉헌'을 했다.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7명를 비롯해 새터민 5명, 납북자 가족 5명,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추진회 관계자 5명, 장애인과 보호자 20명, 북한출신 사제 및 수녀와 평신도 30여명, 밀양 주민·강정마을 주민·용산참사 피해자·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등에서 3명씩 총 12명을 포함해 10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대통령은 교황이 축복하는 장면을 경건하게 지켜 봤다.
전국 16개 교구 성당 사무장 및 사무원 등 교회에서 종사하는 700여명의 직원들은 명동성당 밖 성모동산 및 교구청신관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미사에 동참했다.
교황은 제대에 올라가기 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축복했다. 김복동(89) 할머니가 교황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나비 배지'를 건넸다.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교황 제의에 이를 직접 달아줬다.
미사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설렘에 며칠을 잠을 못잤고 이날 미사만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은 새터민 최모씨는 “교황님께서 오심으로서 북에 남은 가족들도 빨리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 교황님께서 남북의 통일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교황은 미사 전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 등 이웃종교 지도자 12명을 명동대성당 문화관 1층에서 만나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교황은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에 앞서 평화와 화해의 상징물을 제의실 입구에 설치하고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이를 교황에게 봉헌했다. 평양교구 주교좌성당을 기억하며 '파티마의 성모상'을 놓고, 성모상 아래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면류관'을 배치했다.
'파티마의 성모상'은 남북 평화와 일치를 기원하는 뜻이다. 6대 평양교구장인 홍용호 주교는 평양교구 주교좌성당을 평화의 모후인 성모에게 봉헌하며 평화와 화합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염 추기경은 미사에서 “오늘은 교황의 한국 방문 마지막 날이다. 이 미사를 마치시면 곧 교황의 자리(성좌)로 돌아가실 것”이라며“나는 지난 5일 동안 교황님과 함께해 매우 행복했다"고 밝혔다. 미사를 마친 교황은 성남 서울공항으로 가 출국인사를 하고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