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창진 기자] '폐예그리니의 복수혈전 시작되나.'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 11일(한국시간) 오후 11시부터 영국 맨체스터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201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전(38라운드)에서 웨스트햄을 2-0으로 완파, 승점 86점을 기록하면서 같은 시간 뉴캐슬에 2-1 역전승을 거둔 리버풀(승점 84)을 따돌리고 2년 만에 우승컵을 다시 들어올렸다.
맨시티에는 통산 두 번째인 이날 EPL 우승이 마누엘 페예그리니(61) 감독에게는 유럽 리그 최초의 우승이다.
세계적인 갑부구단 맨체스터 시티가 이번 시즌을 앞둔 지난해 6월 페예그리니 감독을 차기 사령탑에 선임하자 일각에서는 "유럽 리그 우승 경험이 전무하고, 빅 팀 지도 경력도 일천하다"는 이유로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페예그리니 감독은 칠레·에콰도르·아르헨티나 등 남미 구단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04~2005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중소 구단 비야 레알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난생 처음 유럽 리그에 도전했다. 그는 선수 생활도 조국 칠레 리그 (1973~1986년 CF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만 했다.
그러나 페예그리니 감독은 명성이나 경력 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취임 첫 시즌부터 입증했다.
비야 레알에 '남미식 공격축구'를 접목한 그는 직전 2003~2004시즌 라리가 8위에 머물렀던 팀을 첫 시즌에 일약 3위로 끌어올렸다. 1위 FC바르셀로나, 2위 레알 마드리드 다음 순위였다.
이어 2005~2006시즌에는 팀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시켰다.
2006~2007시즌에는 리그와 챔스를 동시에 수행하느라 다시 라리가 7위로 떨어졌지만, 2007~2008시즌에는 2위로 다시 순위를 높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1위, FC바르셀로나가 3위였다. 2008~2009시즌 챔스에서는 8강에 올랐다.
그의 뛰어난 지도력에 반한 레알 마드리드는 이적료 400만 유로(약 70억원)를 선뜻 지불하면서 그를 감독으로 모셨다. 2008~2009시즌에 호셉 과르디올라(43)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은 라이벌 FC바르셀로나에 빼앗긴 리그 1위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페예그리니 감독의 첫 빅 팀과의 인연은 끝이 안 좋았다.
페예그리니 감독이 지휘한 2009~2010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역대 최고 승점인 96점을 쌓았다. 하지만 FC바르셀로나가 승점 99점을 기록하면서 1위 탈환에 실패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 시즌 만에 '팽'을 당한 페예그리니 감독은 2010~2011시즌 라리가의 중소 구단 말라가 CF의 지휘봉을 잡고 다시 출발했다.
첫 시즌에는 라리가 11위에 그쳤으나 2011~2012시즌에는 4위로 순위를 대폭 끌어올렸고, 2012~2013시즌에는 챔스 8강으로 이끌었다.
중소 구단으로 이 같은 기적을 일궈낸 그를 빅리그의 빅 팀들은 새로운 사령탑 물망에 올렸다. 알렉스 퍼거슨(72) 감독의 후임 감독을 물색 중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고 끝에 결국 그 자리는 퍼거슨 감독의 고향(스코틀랜드) 후배인 데이비드 모예스(52) 에버턴(잉글랜드) 감독이 차지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맨유의 지역 라이벌 맨시티가 나섰다.
맨시티는 2011~2012시즌 골득실차로 힘겹게 차지한 EPL 우승컵을 2012~2013시즌에 승점 11점 차라는 굴욕 속에 맨유에 바로 반환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 시즌에는 시즌 전 열린 커뮤니티 실드 우승 외에는 챔스 우승컵도, FA컵도, 리그컵(캐피털원컵)도 건지지 못했다. 챔스에서는 2011~2012시즌에 이어 2시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을 정도다.
분노한 아랍에미리트(UAE) 왕자 셰이크 만수르(44) 구단주는 맨시티를 창단 44년 만에 EPL 최정상으로 인도한 로베르토 만치니(50·현 갈라타사라이)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빼앗아 내심 맨유에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을 페예그리니 감독에게 맡겼다.
동시에 이적료 1억 파운드(약 1735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자금를 투입, 미드필더 페르난지뉴(29)·헤수스 나바스(29)·공격수 알바로 네그레도(29)·스테판 요베티치(25)·수비수 마틴 데미첼리스(34)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싹쓸이하며 EPL 우승컵 탈환 채비를 하게 했다.
페예그리니 감독은 지난해 6월 감독 취임 일성으로 "맨시티 같은 팀에 왔다면 타이틀 획득을 원한다는 점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말해 우승 포부를 밝혔다, 이어 "서포터들은 시즌을 즐기게 될 것이다. 매력적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겠다"고도 말해 '공격 축구'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불과 한 시즌 만에 그 모든 약속을 지켰다.
시즌 초반 맨시티는 EPL에서 연패는 없었지만 '강호' 첼시(1-2 패)는 물론 상대적으로 약체인 카디프시티(2-3 패)·아스톤 빌라(2-3 패)·선더랜드(0-1 패) 등에도 패해 순위가 8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페예그리니 감독은 바로 팀을 재정비해 반전을 꾀했다. 자부심 강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한 손에 움켜쥐고 오직 우승을 향해 달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 간 EPL 12경기 무패(11승1무)를 기록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특히 시즌 초 뼈아픈 패배를 안긴 팀들과 다시 만난 맨시티는 첼시(0-1 패)와 선더랜드(2-2 무)를 제외한 다른 모든 팀들에게 '보복'했다. 올 시즌 EPL에서 두 차례 패배를 안긴 첼시에게는 2월16일 FA컵 16강전(2-0 승) 완승이라는 방식으로 복수했고, 선더랜드에 대해선 3월2일 리그컵 결승(3-1 승)에서 맞붙어 '이자'까지 얹어 빚을 갚았다.
맨시티는 올 시즌 EPL 2위 리버풀(+51)·3위 첼시(+44)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압도적인 득실차(+65)를 기록했다. 득점은 102골로 리버풀(101골)을 앞섰다. 반면 실점은 37골로 EPL 최고 수비를 자랑한 첼시(27실점) 다음이었다. 리버풀은 무려 50골을 잃었다. 한 마디로 맨시티는 공수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진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페예그리니 감독은 운도 따랐다. 맨시티는 기성용(25)의 선더랜드에 3-1로 역전승, 올 시즌 리그컵 우승을 챙겼다. 이를 통해 우승컵에 목마른 만수르 구단주가 뒤이은 10일 FA컵 8강(對 위건 1-2 패) 탈락, 13일 챔스 16강(對 FC바르셀로나 득점합계 1-4 패) 탈락 등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EPL 우승을 기다릴 수 있게 했다. 페예그리니 감독이 계속 자신의 방향대로 팀을 몰아갈 수 있게 하는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페예그리니 감독은 12일 EPL 우승 확정 후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점수를 낸 뒤 걸어 잠그는 경기가 아니라 계속 공격을 추구하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며 "선수들이 나를 믿어줬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했다. 우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우승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올 시즌 마지막까지 (리그, 챔스, FA컵, 리그컵 등) 4개 대회에 참가한 팀은 우리가 유일하다. 그만큼 힘들었다"며 "그러나 선수들은 경기에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항상 자신했다. 덕분에 올 시즌이 정말 대단할 수 있었다"고 선수들을 칭찬했다 .
페예그리니 감독은 끝으로 올 시즌 리그컵 우승, EPL 우승의 '더블'에 만족하지 않고 2014~2015시즌에 그 이상을 이룰 뜻을 밝혔다.
"빅 팀이라면 우승 타이틀 하나로 만족할 수 없다. 한 시즌에 여러 개의 타이틀을 따야 한다. 오늘과 내일은 우승을 자축하겠지만, 모레부터는 다음 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유럽 진출 10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뒷받침 해줄 '화수분' 같은 구단, 마음대로 움직여 줄 초특급 선수까지 모든 것을 다 갖게 된 페예그리니 감독. 그가 자신을 한 시즌 만에 내친 레알 마드리드, 거기에 일조한 것이나 다름없는 FC바르셀로나의 전 사령탑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하는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을 상대로 2014~2015시즌 챔스에서 펼칠 복수혈전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부터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