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의 '일당 5억원 황제노역' 논란을 계기로 대법원이 ‘환형유치’(換刑留置)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5일 “환형유치 제도와 관련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환형유치는 벌금 또는 과료를 내지 못하는 범죄자에게 교도소에서 노역을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다.
형법 제69~71조에선 법원이 벌금·과료를 선고할 때 노역장 유치기간을 정해 동시에 선고하되 벌금은 3년 이하, 과료는 30일 미만 노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벌금·과료 액수가 높아지면 노역 일당도 올라갈 수밖에 없고 금액은 법원이 재량으로 정하도록 돼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다. 실제 통상 일반인의 노역 일당은 5만원인 반면 이번에 논란이 된 허 회장의 경우 일당이 5억원이어서 1만배 차이를 보였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노역 일당 뿐만 아니라 유치 기간의 적정성 등 전반적인 내용을 검토하기로 했다. 28일로 예정된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도 환형유치 제도 개선안을 안건으로 올려 논의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 양형연구회는 지난 21~22일 열린 형사부 법관 워크숍에서 물가상승 등을 고려해 환형유치 금액을 1일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등의 세부 기준을 마련해 내달 초 발표하기로 했다.
현재 양형연구회에서는 고액 벌금형이 병과되는 조세범 등에겐 유치일수의 하한기준을 두거나 노역장 유치기간만 선고하는 방안, 독일식 일수벌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환형유치금액과 관련해선 ▲벌금 1억원 이하는 1일 10만원으로 통일하고 벌금 1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3년으로 나눠 금액을 정하는 방안 ▲1일 10만~100만원으로 정하고 남은 금액의 검사의 집행에 맡기는 방안 ▲벌금 5억원 이하는 1일 10만~50만원으로 정하고 벌금 5억원 초과는 상한을 정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대법원은 수석부장판사회의 및 서울중앙지법 양형연구회 논의 내용 등을 검토한 뒤 법 개정 등을 포함한 개선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허 회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노역 일당은 2·3심에서 1일 5억원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벌금과 세금, 채무 등 634억원을 내지 않고 도피했다 22일 귀국한 뒤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된 허 회장은 50여일만 노역하면 벌금 254억원을 모두 탕감받을 수 있게 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또 1일 5억원은 삼성 이건희 회장 1억1000만원, SK텔레콤 손길승 명예회장 1억원, 부영 이중근 회장 1500만원,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 1000만원과 비교해도 전례가 없어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난도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