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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극]극단 로뎀<김혜자의 셜리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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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셜리, 셜리 발렌타인”


부제 극단 로뎀의 <김혜자의 셜리 발렌타인>


여성은
‘아내’ 혹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특히 자녀들을 독립시킨 40대 중반의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에 적지 않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누구의 ‘아내’ 혹은 ‘어머니’ 로서의 역할에 익숙해져 정작 자신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연극 <김혜자의 셜리 발렌타인>의
주인공 ‘셜리’도 그런 중년여성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녀시절 이름 ‘셜리 발렌타인’을 찾으려고 그리스로 떠나게 된다.


뛰어난 배우ㆍ연출, 사실적인 무대배경



완벽함을 추구하는 배우 김혜자가 10년만에 무대에 섰다. 그녀는 6월22일부터 공연 마감일도 정해놓지 않은 채 ‘셜리 발렌타인’ 역에 몰두하고
있다.

배우 김혜자는 이 작품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전원일기’ 이외의 모든 텔레비젼 드라마 의 출연을 끊은 상태다. 공연 일정도 미정인 것을
보면 관객이 이어지는 한 계속 공연을 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김혜자의 셜리 발렌타인>의 연출은 하상길 씨가 맡았는데, 그는 ‘느영나영 풀멍살게’, ‘나, 여자예요’로 능력을 인정받은 중견
연출가이다. 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요나답’, ‘꽃마차는 달려간다’ 등 일련의 화제작으로 드러난다. 의상은 디자이너 박윤정 씨가, 사진은
작가 김중만 씨가 담당했다.

소극장이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재일화재 세실극장 안은 중년여성으로 가득 찼다.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임에도 통로까지
관객들로 꽉 차 빈 공간이 없었다. <김혜자의 셜리 발렌타인>을 찾는 중년 여성들의 계속되는 관심을 보면 이 연극의 호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무대장치가 눈길을 끈다. 관객들에게 장면 전환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설치된 중산층의 부엌과 그리스 해변은 리얼리즘
연극의 무대화에 충실하다.


40대 중반의 주부 ‘셜리 발렌타인’



중산층의 평범한 부엌이 보인다. 한 중년여성이 혼자말로 지껄인다. 그녀는 벽을 보고 아들 얘기며 남편 얘기를 거리낌없이 쏟아낸다.

그녀의 이름은 셜리 발렌타인. 마흔 다섯 나이의 중년 주부이며 내세우고 자랑할 것 없는 평범한 여자이다. 그녀는 매일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식탁 위에 찻잔을 놓는다. 그녀의 남편은 집에 들어왔을 때 항상 찻잔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목요일 저녁에는 늘 고기요리를 먹어야
하는 삶의 틀이 강한 사람이다.

그녀의 자녀들은 이미 성장하여 독립했다. 셜리는 아이들이 크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그녀의 존재는 이제 ‘어머니’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셜리는 항상 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때때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강한 욕망이 솟구치지만 자신의 현실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게 두렵다.
이 장면에서 수수한 의상을 입은 셜리 역의 김혜자는 ‘중년여성의 무기력함’을 미친 듯 얘기하다 웃고, 또 침울해지는 감정 변화를 충실하게
표현해 내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런
셜리에게 여성운동가인 친구 ‘제인’이 그리스행 비행기 티켓을 보낸다. 이를 계기로 셜리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지킬 수밖에
없는 그녀의 자리인 아내의 역할,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떨쳐 버릴 수 없어 괴로워한다.

셜리는 학창시절 굉장히 부러워한 친구가 있었다. 며칠 전 셜리는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했던 그 친구는 지금 콜걸이 되어 있었고 조용히 웃으며 “안녕 셜리, 셜리 발렌타인”하고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떠난다.

셜리는 그 때 가슴의 울렁거림을 느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친구의 작별인사를 떠올린다. ‘안녕 셜리, 셜리 발렌타인’ ‘안녕
셜리, 셜리발렌타인’…

김혜자는 모든 감정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대사로 표현한다. “눈물이 흘렀단다”라고 대사를 하면서 그 말 속에 ‘슬픔, 분노, 후회, 아쉬움,
탈출’과 같은 내면의 변화를 진실하게 담아낸다.

결국 셜리는 비행기를 타고 햇빛의 따사로움이 충만한 그리스 해변에 이른다. 집에서 그녀는 매일 와인을 마셨는데 그리스 해변가에서는 주문한
와인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붙박이 가구처럼 늘 거기에 있는 주부로서의 고독감을 이 곳에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따사로운 햇빛과
깨끗한 모래알만의 감촉만 있을 뿐이다.

그녀의 휴식에 갑자기 ‘크리스토퍼 콜롬부스’를 닮은 중년의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신대륙을 발견한 이력이 있듯 셜리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셜리와 그녀의 ‘콜롬부스’는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며 로맨스에 빠진다.

이번 공연은 김혜자 혼자 1시간40분 동안 모든 장면을 소화한다. 단지 중간에 쉬는 시간 10분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1991)
이후 꼭 10년만에 무대에 선 그녀는 중년 여성의 깊은 허무감을 눈빛으로 잘 표현해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


자신과의 로맨스에 빠진 ‘셜리 발렌타인’



이 작품의 원작자는 윌리 러셀(Willy Rusell, 1947∼ )이다. 그는 교육대학을 졸업했지만 미용사, 창고 노동자, 포크송 작곡가,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으며 ‘리타 길들이기’를 비롯하여 ‘의형제’라는 제목으로 번안된 ‘블러드 브라더스’를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가이다.

그는 런던비평가상(1974), 골든글러브상(1984), 이보르노벨르상(1985) 등을 수상한 뛰어난 극작가이며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인 <셜리 발렌타인>(Shirley Valentine)은 일상의 권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한 중년 여성을 등장시켜
의미없는 삶에 대한 각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한 인간의 심층을 강력하고 섬세하게 묘사해 놓은 작품이다.

관객 박은미 씨(46)는 연극을 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셜리의 나이가 저와 비슷해 쉽게 공감할 수 있었어요. 누구나 이 나이가 되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답니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어딘가
허전한 것 같은 느낌, 잘 알죠. 그리고 저는 ‘제인’ 같은 오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이번 연극을 보고 나니 그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고
싶군요.”

결국 셜리는 그녀의 처녀적 이름인 ‘셜리 발렌타인’을 되찾는다. 어떤 중년 남성과의 로맨스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통해 스스로를 되찾고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셜리는 이렇게 독백한다.

“내 자신에게 죄를 지은거야. 나는 내 삶을 그동안 팽개쳐 왔어. 여기에서 나는 나와 사랑을 나누었어. 살아있는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여성의 삶은 대부분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러한 삶은 한 사람이 입게 되는 여러 벌의 옷에 비유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살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혜자의 셜리 발렌타인>은 너무도 아름답게
주인공 ‘셜리’의 ‘정체성 찾기’를 그리고 있다.






공연일시: 마감미정, 월/ 쉼 일,화,수,목/ 오후3시 (1회)

금,토 / 오후 7시30분(1회)

공연장소: 제일화재 세실극장 문의: 02)736-7600







지은진 기자<http://www.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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