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연말 정계개편을 앞두고 정치권이 새판짜기를 위한 저마다의 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이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창당설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2007년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중원'의 장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새로운 충청권 신당의 창당은 새판짜기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게다가 이 의원은 언제까지나 잠재 대권후보라는 점에서 그에게 정치권의 시각이 쏠리고 있는 것. 실제로 이 의원을 '족쇄'처럼 따라다녔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시대의 소명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며 대권도전을 시사하는 등 화려한 재기를 엿보고 있다.
◆이인제 신당 수면위 급부상
국민중심당이 5.31지방선거 참패 이후 심대평 공동대표가 사퇴를 겪는 등 당 해체위기를 맞으면서 7월부터 이 의원 중심의 신당창당이 이뤄져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더욱이 이 의원이 정치자금수수 무죄 판결을 전환점으로 공개모임석상에서 대권도전을 시사하는 등 '재기'에 나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국중당의 해체와 동시에 '이인제신당'이 출현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이같은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박원경 최고위원과 황장수 당무위원, 정권창출추진위원회(정추위), 서울·경기·인천·강원·경남 시도당 대표들은 이미 지방선거 패배 이후 "이런 상황이면 차라리 당을 해산해야 한다"며 사실상 당 해체를 인정해 왔다. 또한 이들은 당시 "지도부의 무책임으로 당이 혼돈상태에 빠졌는데도, 당 지도체제를 정비하지 않는 것은 공당으로써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임시전당대회를 소집을 주장하는 등 분당위기에 부채질을 했다. 결국 당의 주축인 이들이 분당을 사실상 주도함으로써 '이인제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또한 국중당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에 소멸되는 것이 아닌 제3세력으로 재탄생 할 것이라는 판단이기도 하다.
정추위측 핵심 관계자도 "국민중심당은 정치적으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우리가 요구한 임시전대도 현실적으로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분당에서 신당 창당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중당이 해체 후 정계개편에 휘둘리지 않고, 당장 제3의 세력으로 신당 창당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당원들은 그 중심에는 이 의원이 설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이인제 신당' 창당에 힘을 실었다.
이 의원 측도 "당이 없어진다면 신당 창당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겠느냐"면서 "이 의원도 구체적으로 향후 문제에 대해 구상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당원들의 요구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결국 서울시당의 자진해산으로 이어졌고 9월 경기·인천·강원·경남 도당도 해체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반쪽 정당'으로 전락할 위기로 이어졌다.
서울시당 대표인 이신범 전 의원은 지난 14일 "그동안 서울시당은 중앙당 지도부의 총사퇴와 임시 전대를 요구해왔지만 독선적 당 운영으로 당이 표류해왔다"면서 "오늘 선관위에 자진 해산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이어 "국민중심당 수도권 시도당과 경남도당도 조만간 당원들의 의사를 결집해 해산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경기·인천·강원·경남 등 5개 시도당이 해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인제 최고위원도 이 전 의원과 함께 당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최고위원은 조기 임시전당대회를 요구하며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어 온데 이어 시도당 해체에 따른 당 분열로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최고위원은 이 전 의원과 함께 제3 세력결집을 통한 신당창당을 구상, 10월께 탈당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의원은 "지역패권에 반대해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힘을 모으기 위한 국민통합정당추진연대(약칭 통합연대)를 발족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인제 의원이 10월에 탈당한 후 연말쯤에 노선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의 모태가 될 '통합연대'는 '해산한' 도당위원장 5명이 공동대표를 맡고, 이 최고위원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한다. 이에 당내 '해산세력'들은 정계개편에 휘둘리지 않고, 제3의 세력으로 신당 창당이 이뤄지길 바라는 입장이다. 더욱이 이들은 '신당의 중심'에 이 최고위원이 설 것을 희망하고 있어 '이인제 신당' 창당에 힘을 싣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최고위원측은 "(이 최고위원이)지역패권에 반대해온 만큼 전 지역을 아우르는 행보를 구상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당원과 국민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조순형 지원사격, 이유 있었다
지난 7월 26일 재보선. 이 의원은 서울 성북을에 출마한 민주당 조순형 후보 지원유세에 적극 나섰다.
이 의원은 같은달 민주당 한화갑 대표를 만나 "조 후보를 돕고 싶다"고 자청했으며 선거동안 현장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펼치는 열의를 보였다.
이 의원은 당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북을 선거는 국회의원 한명을 충원하는 선거가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 주역이었던 조 후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평가받는 중대한 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돕고자 한다"며 지원 배경을 밝혔다.
이어 "조 후보는 청렴한 정치인의 표상이며, 인기 영합주의에 굴하지 않는 소신과 원칙의 정치지도자"라며 "그와 함께 우리 정치에 희망을 심고 나라를 바로 세울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비단 탄핵의 주역을 도운 것인가?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이 10월 국민중심당을 탈당, 신당창당을 가속화 할 경우 호남 끌어안기에 포석으로 미리 조 후보에게 환심을 사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흐르고 있다. 충청권에 기반을 둔 이 의원과 조순형 의원이 뭉칠 경우 호남, 충청권의 소(小)정계개편이 한결 쉽게 풀릴 수 있다.
게다가 노 대통령과의 새천년민주당 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이 의원으로서는 조 의원과 손을 잡으면서 그때의 판단이 잘못됐었다는 명분 또한 가져갈 수 있는 셈.
또한 조 의원을 매개로 이인제 신당에 민주당 인사들을 대거 흡수 할 수 있는 기반을 두는 셈이기도 하다. 실제 이인제 신당이 창당할 경우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거대 한나라당계와 여권의 통합시당, 충청권 이인제 신당간에 경쟁이 분명한 것이어서 그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선의 추억, 이인제 재기할까?
정치권에서는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번 실패는 병가지상사. 그의 화려한 재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의원은 법조인 출신으로, 초대 민선 경기도 도지사가 되어 '일등경기 일류한국'의 정책을 펼쳤다. 정치의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제15대 대권에 도전, 3위를 차지하였다. 제16대 대통령선거 후보를 뽑는 새천년민주당 내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였고, 이후 백의종군했다.
1988년 이 의원은 제13대 국회의원총선거 당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모습을 나타냈다. 같은해 이 의원은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서 날카로운 질문과 풍부한 자료준비로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고, 이듬해에는 통일민주당 대변인을 맡았다. 초속 승진했던 셈이다.
1992년 재선에 성공해 제14대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은 1993년 노동부장관을 지내면서 내각 경험을 쌓았다. 그런 이 의원이 대선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1995년부터, 초대 민선 경기도 도지사로 취임한 이 의원은 경기도의 정체성 확립,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의 삶의 질 향상, 행정규제 완화 등을 통한 '일등경기 일류한국'의 정책을 펼쳤다.
경기도지사 시절 그는 경기도정의 도정방침인 '경제제일' '환경우선' '문화근본'이란 목표에 따라 15대 정책 50대 중점사업을 추진, 잘사는 경기 건설에 앞장섰다. 당시 관선 도백에 의해 중앙의 정책을 따라가던 위주의 도정을 획기적으로 돌려놓은 이 의원은 도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대중적 인기까지 쌓아갔다. 작은 거인으로 불렸다. 1997년 이 의원은 대권도전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을 이끌기 위한 대장정을 밟는다. 제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 의원은 '젊다! 강하다! 희망이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치의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결과는 3위, 492만 5591표(득표율 19.2%)를 얻었다.
정치권에서는 이인제의 힘을 인정했고, 저력을 확인했던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서는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을 불복하고 나선 이 의원의 결정을 질타했었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휴식기를 맞으면서 조지워싱턴대학교 초청연구원을 지냈다.
2000년 복귀한 그는 제16대 국회의원총선거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같은 해 새천년민주당 충남 논산·금산지구당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지내며 새천년 민주당내 수뇌부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2002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제16대 대통령선거 후보를 뽑는 새천년민주당 내 국민경선제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다. 그 후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총재권한대행으로 활동한 이 의원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 국민중심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7년 대선 이후 10년 남짓 이인제 창당설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그가 '충청권' 기반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재기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흐르고 있다. 그가 일선에 나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계개편 속에서 일정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