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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법관의 ‘묻지 마,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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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부장판사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법조비리로 사법부의 권위가 크게 실추됐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법조비리에 국민들은 실망감을 떠나 “법조계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사법부는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근절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유명무실한 여론 잠재우기 식 대책이었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사법부의 의지는 ‘쇼’에 불과한 것인가. 법의 잣대를 쥐고 있는 법조인의 비리가 반복되는 이유, 수많은 대책들에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법조비리의 뿌리는 ‘제 식구 감싸기’에 있다.

소리만 요란한 사법개혁… “끝은 없었다”
조관행 전 부장판사를 비롯한 3명의 핵심인물의 구속에 이어, 나머지 6~7명의 비리 연루자들의 수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여 이번 사건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이번 법조비리로 법원과 검찰 등 법조계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유례없는 대국민 성명 발표는 물론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부끄럽고 참담하다”는 말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번 법조비리의 파장이 어느 때보다 큰 이유는 최고위직의 고법부장판사의 구속이라는 데 있다. 일개 변호사나 신참내기 지방의 판사도 아닌 최고위직 고법부장판사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했을까 라는 것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이다. 법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법관이 비리혐의로 구속되는 것을 보는 국민들은 “어떻게 이런 법원과 검찰에 재판과 수사를 맡길 수 있겠느냐”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법조비리는 법원과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장 큰 문제다. 과거 법조비리가 터졌을 때도 개혁을 외치는 소리만 요란했지 정작 결말은 흐지부지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법개혁을 위한 노력과 시도에 대한 평가에 대해 응답자의 63.9%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사법부가 법조비리를 막기 위한 노력이 이번 사건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방침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사태로 신뢰를 잃었다.
지난 법조비리를 들여다보면 정화되기는커녕 그 내용과 질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국민적 불신은 더 할 수밖에 없다. 의정부 사건 때는 변호사로부터 떡값을 받은 정도였고 2004년 춘천 법조비리 때는 변호사로부터 판사가 성 접대를 받았다. 윤상림 사건에서는 법조 브로커가 등장하더니, 최근 터진 김홍수 사건에서는 브로커로부터 청탁과 뇌물을 받은 것이다.

잇단 비리에도 부패관행 여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법조인들의 일상적 부패관행을 지적해 왔다. 참여연대는 “판사와 검사들이 브로커나 지역유지와 특정사건 청탁에 국한하지 않고 평상시에도 금품과 향응을 매개로 묶여있었다”면서 법원과 검찰의 부패관행을 꼬집었다.
각종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체 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대책들이 수없이 쏟아졌지만 법조비리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법조비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강력한 제재 없이 선언적인 대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과거 법조비리 때도 법조계는 발본색원을 다짐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는 형식적이고 일시적인 여론 잠재우기에만 급급했다. 문제가 터지면 “옷 벗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관행이 자행돼 왔다. 사표만 내면 봐주는 온정주의 관행은 여전히 법조계에 존재하고, 이런 법조계의 독특한 방식은 국민적 불신을 더 키웠다. 법조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당사자들은 서둘러 사표를 내고 그러면 법원과 검찰은 사건을 마무리한다. 옷을 벗어도 퇴직금을 챙겨 변호사 개업을 하면 그만이다.
미국의 경우 사소한 규정위반에 대해서도 엄격한 징계를 내린 뒤 이를 공개하고 있다. 배금자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징계를 받은 법관이 사임한 뒤에도 징계과정과 결과 등을 인터넷 등을 통해 알린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모든 주는 법관의 비리, 무능력, 법률위반, 윤리규정 위반 등에 대한 진정사건을 접수받고 이를 조사한 뒤 징계하는 법관윤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윤리위는 비리 법관의 직무정지나 해임을 대법원에 권고한다. 이후 해당 판사는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비리법관 징계, ‘짜고 치는 고스톱’
법조인에 대한 처벌이 지극히 관대하다는 것은 법조비리의 뿌리를 뽑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지난 6월 군산지원의 소장판사 3명이 동시에 사직했다. 이들은 지역유지로부터 수차례 골프접대와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의 대부분은 사실로 확인됐지만 법원은 사표를 제출받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결국 사표를 낸 3명중 2명은 버젓이 변호사 등록을 하고 활동하고 있다.
현행 변호사법에 따르면 판.검사 출신 법조인이 변호사 개업을 위해서는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하기 전에 심사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때 재조출신 법조인이 재직 중 징계를 받았거나 직무상 위법행위, 비리 등으로 퇴직한 사실을 확인할 경우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원이나 검찰이 통보해주지 않는 한 변협이 이들 비리사실을 알 방법은 없다. 더구나 변호사 개업 후 드러나도 이미 등록한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할 수도 없다.
법조인의 범죄는 ‘묻지마, 징계’가 적용된다. 위의 사건도 언론에 알려지기 전까지 법원은 이들의 사직사실이나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번 조 전 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도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버티던 조관행 전 판사가 검찰의 마지막 소환조사 직후(지난 8월4일) 갑자기 사표를 내고 대법원이 단 15분 만에 수리했다. 1998~2004년 10월 검찰에서 자체 징계를 받은 검사는 모두 19명. 그러나 이들 중 중징계 이상을 받은 6명의 징계조치 결과만 관보에 게재해 누구 무슨 이유로 징계를 받았는지 일반 국민이 알 방법은 없다.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사법부가 이번에는 무슨 카드로 “더 이상 못 믿겠다”는 국민적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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