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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김동길칼럼]거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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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죽음




지난
3월21일 세상을 떠난 현대의 정주영씨는 어느 모로 보나 결코 보통사람은 아니었다.


외모가 출중하지는 않았다. 박흥식씨는 자수성가한 뛰어난 기업인으로서 반세기 이상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훤칠한 용모에 귀공자의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정회장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한평생을 전부야인(田夫野人)의 모습으로 살았고 언제나 논에서 김매다 새참을 먹으러 올라온 농사꾼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소탈하고 검소하고 부지런한 이 나라의 전형적 농부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은 휴전선 북쪽에 위치한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소년 정주영의 가슴에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이 무엇이었던 그는 그 꿈을 실현코자 가출하여 고무신 한 켤레를 끌고 서울에 왔는데 밥을 벌어먹기 위해 막노동도 할 수 밖에 없었다. “고려대학의 중앙도서관을 내가 지었지요” 라고 그가 말하니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 건물은 일제시대에 완공되었는데 현대건설이 생긴 것은 60년대가 아닙니까?” 정 회장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아니 내가 설계하고 시공했다는 말이 아니고 그 공사장에서 내가 돌을 지고 날랐다는 말입니다.”그는 노동으로 단련된 강한 몸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의 꿈이었고 그 꿈을 290일만에 이루어준 것은 정주영회장의 힘이었다. 공사 구간은 몇몇 건설회사가 끊어서 맡아 동시에 착공했지만 전 공사의 지휘는 정 회장이 하였고 그는 단군이래 최대의 공사라고 할 수 있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원동력이었다. 서둘러 끝맺은 공사라 여기저기 부실이 들어나기는 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그 공사는 아직도 마무리를 짓지 못했을 지 모른다. ‘하면 된다’라는 인생철학은 박정희의 좌우명이 아니라 정주영의 좌우명이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낱말은 없다’고 장담한 나폴레옹을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10년 가까운 옛날, 한국정치를 한번 바로잡아 보자는 허망한 꿈을 안고 그는 나와 더불어 새로운 정당을 하나 출범시킨 일이 있었다. 우리는 의형제가 되었고 그 사실을 정 대표는 문서화하기도 하였다. 그 문서는 지금도 내가 간직하고 있다.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로는 김 교수가 나가야 합니다. “정대표의 부탁이었다.


그리고나서 92년 총선에서 창당 100일도 되지 않는 작은 정당이 엄청난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지역구에서 32석, 전국구 5석, 다른 당에서 넘어온 의원들을 합치니 40석도 더 되는 엄청난 정당이 된 것이었다. 그해 5월 대통령 후보를 뽑아야 할 때가 되었다. 정 대표는 이른 새벽에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 이번 대통령 후보는 내가 나가야겠어요, 나는 나이가 많아서 이번밖에 기회가 없지 않아요.” 그렇게 한마디 하고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나는 그를 대통령을 만들어 보려고 전국을 누비며 유세를 했건만 정 후보는 참패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민정계의 적극적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꿈이었으니까)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이었다.


만일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씨가 정주영대표와 통일국민당을 껴안는 아량만 지녔더라면, 그리고 정 대표를 향해 김 대통령이 “나는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니 이 나라의 경제는 정대표가 맡아 주시오”라고 부탁했더라면 한국의 경제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14대 대통령 당선자는 이렇게 말했다. “통일국민당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정당이 태어난 것이다.” 이 한마디 때문에 정 회장은 쓰러지고 그의 정당은 무너졌다.


그 일이 없었던들 정 회장의 현대가 “국민의 정부”와 밀착하였겠는가. 현대를 살리기 위해 그는 대북사업에 앞장섰고 그는 현정권에 의해 여지없이 혹사당한 것이다. 울산모래밭에 조선소를 세우고 사우디 주배링에 산업항구를 만들고 서울에 올림픽을 유치하고, 서산에다 여의도의 33배나 되는 간척지를 만들고 500마리 소때를 두차례나 몰고 북에 다녀온 거인 정주영은 너무 피곤해 마침내 쓰러진 것이다. 큰 기둥이 쓰러진 허전함을 어느 한국인인들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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