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생 32년, 남자인생 60년의 소설가 박범신이 우리시대 남자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 즉 구시대의 ‘화려한 권력자’에서 이 시대의 ‘쓸쓸한 인간’으로 자리바꿈한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는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만을 날릴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권력을 잃고 생의 한 귀퉁이에서
산문집 ‘남자들, 쓸쓸하다’는 전체 2개의 장 15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남자의 탄생에서부터 사회적인 죽음을 눈앞에 둔 현재의 모습까지, 이 땅의 중년 남자들은 어떻게 태어나고 교육받고 생활의 무게에 짐 지워져왔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오로지 아들 하나를 욕망하던 어머니의 늦둥이 외아들로,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한 울타리를 지켜온 남편으로, 수십 년간 밥벌이를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다.
이미 그 모든 과정을 지나와 이제는 늙어가는 중년 남자의 현실을 받아 안을 수밖에 없는 작가는 ‘가부장제’라는 허울 좋은 사회구조 속에서 젊은 날의 기상과 이상을 담보로 ‘남자답다’라는 허명을 붙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시대 남자들의 쓸쓸한 생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여성들의 이중적 태도
작가는 남자들의 현주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빼놓지 않는다. ‘권력자로 길러진 나이 든 남자들의 신세는 그의 내부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때문에 더욱 더 비극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 그래서 남자들은 ‘오늘도 무서운 자식들과 똑똑한 아내와 자본주의 경쟁이 주는 잔인한 세계 구조에 가위 눌리면서 저기, 어둑한 베란다나 냄새나는 쓸쓸한 뒷골목에 피신한다.
두 번째 장에 포함된 7편의 글은 그러한 중년 남자와 함께 남은 생을 꾸려가야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여자들에게 ‘그 남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점차 변해가는 사회구조 안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과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어가는 여성들의 주장과 영역을 지켜보며 작가는 단순히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보상심리만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들에 대해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다. 여성 본연의 창조적인 가치를 뒤로 하고 무조건 ‘센 역할’만을 고집할 때, 물질적인 가치만을 최고로 삼아 헛된 이름만을 쫓을 때, 우리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인가를 하나씩 짚어나가며 진정 아름다운 여성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그려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