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작용은 결국 업식을 말하는 것이다. 업식은 업의 안경으로 식별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진리의 본체인 본래의 마음하고 다르다는 것.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붉은 안경을 쓴 사람은 하늘을 붉다고 말하는 것처럼 업식의 안경을 벗지 않으면 사물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업식의 마음을 자기 마음이라 생각하며 업의 늪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 중생이고, 본래의 자기 마음에 안주하면서 업의 늪 속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성인이라는 것, 때문에 업식을 벗지 않고는 극락에 이를 수 없다.’ 소설 ‘청화 큰스님’의 한 대목이다.
일상의 언어로 그린 풍경화
현대인들은 대부분 ‘업식’을 벗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하기 짝이 없다. 2년 전 11월 일평생 치열한 구도자의 길을 걸었던 청화스님의 열반이 수많은 이들을 슬프게 한 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간절히 갈망한 정신세계의 희망, 정신적 지도자를 떠나보냈기 때문이었다.
청화 스님은 40여년간 상무주암, 백장암 등 20여곳의 토굴을 옮겨 다니며 하루 한끼와 장좌불와의 수행을 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자리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의 수행을 평생 지키며 ‘도의 실체’를 증명해 종교를 초월한 우리시대의 선승인 것이다.
남지심의 장편소설 ‘청화 큰스님’은 정좌불와, 하루 한 끼, 토굴 수행 등 칼날처럼 치열했던 청화스님의 40년 구도의 길을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던 도의 세계가 청화 큰스님의 생애를 투사해 친근한 일상의 언어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문장 한 줄 한 줄이 스님의 모습을 형형하게 그려낸 풍경화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우리시대 스승
‘우담바라’로 유명한 저자 남지심은 평생 숙제처럼 품었던 생각이 스승을 찾는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스승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저자는 불교신자가 됐다는 자각을 하고도 10여년간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청화스님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청화스님을 만나던 날 도법스님도 함께 만났다. 두 분 스님을 한날에 만났고 그 후부터 스승을 찾는 방황을 멈췄으니 스승의 인연 또한 이어져온 셈이다.
저자는 청화 큰스님의 생애를 통해 도인이 경험하게 되는 보편성을 그려보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때문에 책에 그려진 내용과 스님이 실제로 증득한 내용은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 밑바닥에 흐르는 공통분모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청아 큰스님을 만나고 스승을 찾아 헤매던 방황을 멈춘 것처럼, 이 책은 스님의 향기와 도의 경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며 정신적 스승을 만난 듯한 위안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