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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념의 안경을 벗으면 경제가 보인다”

  • 등록 2005.11.03 1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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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오는11월7일 창간17돌을 맞아 서울대 국제대학원 좌승희(59)박사와의 특별대담을 요청했다. 재벌가의 회장이 국회 증인신청 대상이 되고,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가 목전인 현실. 유류세 인하를 촉구하는 화물연대의 일촉즉발 파업위기와 주체할 수 없는 개인파산 속에서 그에게 던진 화두는‘한국경제 어디로 가나’에 모아졌다.

이념과 경제발전
10월21일 서울대 캠퍼스는 때아닌 폭우로 가을이 무색한 듯 보였다. 바로 얼마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직을 마쳤으니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좌 교수는 국제대학원내 마련된 자신의 아담한 연구실에서 곧 있을 비교학회 심포지움이며, 대학원생 원서 시험문안 작성, 빗발치는 강연요청 전화로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유명 경제석학과의 창간 기념 특별대담은 주제부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좌 교수는 아주 쉽고도 명쾌하게 ‘이념과 경제발전’을 주제로 자신이 발표할 학회 심포 얘기로 딱딱한 긴장감을 덜어내 주었다.

“경제학은 그동안 이념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죠. 이념은 왜, 어떻게 경제성과와 체계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는가. 이념은 어떠한 경우에 특히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게 되는가를 말입니다.”

참여정부 들어 끊이지 않았던 화두. 최근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서도 야당의 끈질긴 색깔론 공세가 만만치 않았는데 좌 교수는 오늘 한국경제 진단 모두부터 ‘이념과 경제발전’의 상관성을 끌고 나왔다.

“자유와 평등 얘기를 해보죠. 인간의 진화과정을 보면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본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인간은 유전자의 이기성 때문에 한편 이타적이면서 또 도덕적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은 사람의 본성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인간의 본성속에 함께 존재하는 자유와 평등. 좌 교수는 이 둘이 지난 2세기간 인류의 역사발전과정에서 어떤 비율로 존재했을 때 그 사회가 발전 혹은 더딘 변화를 체험했는지를 주목시켰다.

평등은 소금역할만, 지나치면 국가정체
“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변화할때는 대게 자유이념이 강한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었습니다. 단 평등의 이상이 강한 이들은 그 사회의 소금역할을 했지요. 하지만 사회분위기가 평등에 치우치면 거의 모든 경우 국가정체를 경험했습니다. 결국 자유와 평등의 적절한 배합 포인트는 사회가 발전을 원한다면 자유가 많아야 하고, 평등은 소금의 역할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내내 언론은 야당의 감세안과 여당의 증세안 사이에서 국민을 혼란케 했다. 한쪽은 유류세 등 서민들의 고충을 가중시키는 세금을 가능한 덜자 했고, 다른 한쪽은 세금이 부족하니 감세는 고사하고 증세가 불가피하다 역설했다. 좌 교수는 잘라 말했다.

“감세는 대게 인센티브가 강한 사람들이 주장하지요. 그에 반해 증세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데올로기가 강합니다.”
인센티브라고 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감세 대 증세 논쟁에 그는 ‘인센티브’를 적용했다. 무슨 얘기일까.

“경제학은 인센티브의 학문이죠. 그런데 우리 경제는 바로 이게 빠져 있어요. 도덕의 안경을 끼면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센티브의 안경을 끼면 세상은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국의 괴짜경제학 얘기 하나 해볼까요. 1990년대 들어 미국사회는 급격한 범죄율 저하를 맞게 됐죠. 70,80년대 이래 줄곧 증가하던 범죄율이 줄어들자 너도나도 그럴듯한 이유를 들었지요.”

좌 박사는 미국범죄율 저하현상 뒤엔 바로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여성들의 ‘인센티브’가 숨어 있었다고 했다. 즉 17년전 미국 법원이 낙태를 허가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로인해 10만명의 여성들이 낙태했으며 그 이면엔 아이를 원치 않았던 여성들이 무조건 출산이후 방치시킨 아이들이 부모의 무관심속에 범죄자로 성장하는 걸 막았다는 것이다.

왜 ‘N분의 1’은 아닌가
“우리나라가 중소기업에 투여한 돈은 OECD국가 중 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살아났습니까?. 대학육성 한다고 했지요?. 서울대학이 그래서 과연 세계 100등안에 들었나요?. 서울집중을 막기위해 부산이 서울만큼 컸습니까….”

흔히 말하는 좌 교수의 신랄한 ‘악담’이 시작됐다. 유인이론, 인센티브이론이라 할 경제원리에 따라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1등부터 100등까지 등수를 매겼어야 했다. 지원방법도 1천억원을 100개기업에 똑같이 나눠주기 보다 절반은 95개 기업에 골고루 나눠주되 1등기업엔 100억, 그다음 2,3등 기업엔 선별지원을 통해 적어도 500억원은 제대로 썼어야 했다는 얘기다.

“그러면 그중 몇 개는 중견기업이 됐겠지요. 그 중견기업 중 또 몇 개가 성장해 삼성 같은 재벌을 압박하는 다이나믹성을 보였지 않겠습니까.”

우수한 중소기업은 지난 30여년간 지속적인 역차별에 놓여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평등주의 메시지가 자칫 잘하는 중소기업은 사라지는게 좋다, 열심히 잘하는 기업엔 자꾸 패널티를 주고, 잘못하는 기업은 칭찬함으로써 극단적으로 잘못하는 기업만 양산하고 만 셈인가.

“이 평등의 이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역차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평등주의 이론은 인센티브의 안경을 끼고보면 볼 수 있지요. 영국의 한 유명한 철학자 샤무엘 존스가 이런말을 했습니다. 지옥의 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남탓, 사회탓, 나라탓 하는 건 ‘잘못’
폭우가 캠퍼스를 온통 뒤덮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연구실은 마치 세상과 떨어진 고도처럼 여겨졌다. 좌 교수는 간혹 걸려오는 강의요청 전화에 짬을 허락했을 뿐 열정을 다해 평등의 이념과 시장경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 쉬 끝나지 않을 열변을 토해놓았다.

분배와 성장의 문제라기 보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건 동기부여라고 했다. “지리멸렬 연명토록 하는건 돕는게 아니지요. 중견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되도록 모토를 갖고 도와야죠. 가난한 이들을 돕는게 아니라 내가 열심히 하면 뭔가 나온다는 자긍심을 갖고 뛰는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음식점. 한 집은 경기침체에도 불구, 맛난 쌀 찾아 밥짓고 찬 개발해 손님 발잡기 바쁜데 다른 음식점은 경제탓,나라탓만 하며 불평만 털어놓는다. 중소기업, 대기업, 농민조차 불만이 가득한데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우리가 잘살게 해준다’는 장담일색이다. “발전의 기운을 만드는게 국가의 역할 아닙니까.”그가 마침내 쐐기를 박았다.

“대한민국 민주정치가 ‘탓’을 조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평등의 이상을 앞세운 포퓰리즘, 경제정책에까지 그 포퓰리즘이 들어와 있어요. 경제라는 건 다른 걸 다르다고 하는 겁니다. 차등과 차별을 없애자는 이상이 80년대 중반 민주주의란 이름하에 사회,경제,정치분야에 스며들어 지난 20여년간 이나라에 흘러 왔지요.”

20년전 미국의 낙태허가 얘기를 왜 꺼냈는지 알 듯 싶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 당시 과거 패러다임 바꾸기를 꾀하며 국민경제구조조정자문회의를 결성했지요. 앞으로 한국경제가 어떻게 되나와 관련해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거기에 평등의 이상을 내걸고 국가를 경영한다는 주요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참여정부까지 20여년 한국경제에서 평등은 자유보다 앞섰다는 얘기인가.

박정희와 인센티브의 정치
왜, 대한민국의 경제를 논할 때마다 ‘대통령 박정희’를 빼놓을 수 없는 걸까. 좌 교수는 굳이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기 보다 과거 그가 이끌어낸 경제성장이 바로 인센티브, 차등에 바탕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새마을운동, 중소기업 수출 뒤엔 인센티브가 있었고 그걸 강조한 정치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2차종전후 발전기금은 전폭적으로 아프리카의 다수 신생독립국가에 지원됐지요. 한국은 아주 조금의 지원을 받았지만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반면 아프리카는 어떻습니까.”

그냥 돕는다고 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어떤 유인구조 속에 있는 국가인가를 보라. 지도자가 국민을 살리려는 인센티브를 갖고 있는가는 그래서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80년대 이후 N분의 1정책에 가까웠던 우리 경제 현주소 얘기는 들을수록 씁쓸함을 더해 놓았다.

이념과 경제정책에서 시작한 석학의 열변은 한 발 더 나아가 “남탓, 사회탓, 국가탓에 치우친 국민의 세계관이 다소 잘못된 방향으로 가 있더라도 국가와 정치권이 절대 이를 악용해선 안된다”는데 맞춰진다.

평등의 이념은 왜 그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인가. 좌 교수는 평등이 발전의 원리와 상충되기 때문이라고 못 박는다.

다시 말해 평등의 이념은 발전의 정신을 약화시키는 유인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회구성원 모두를 실패의 길로 유인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평등의 이념이 모든 정치,사회,경제 부문의 기본원리로 채택된다면 그 사회는 불가피하게 정체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이념논쟁은 경제 부담으로 이어져
정치권이 주목해야 할 화두였다. 또다시 불거진 색깔론, 국회 대정부질문장을 온통 도배하다시피한 부끄러운 이념논쟁. 좌 교수는 “이념은 자유이든 평등의 이념이든 간에 기존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유효성을 끝없이 흔들어 대는 성향을 가진다”며 “ 때문에 사회의 거래비용을 높이고 결국 전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될 경우 자유냐 평등이냐의 차이에 관계없이 이념에 대한 논쟁이 심화될수록 경제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폭우는 어느 새 그쳐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며 좌 교수는 활짝 웃었다. 왜 그를 ‘재계의 입’이라 하는지 의아할 뿐이다며 웃었고,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한두번쯤 입에 담았단 생각에 기자도 함께 머쓱한 웃음이 나왔다.
“이념의 안경을 벗으면 경제가 보입니다.”

한국은행, KDI, 한국경제연구원…, 숨가쁜 한국경제의 한가운데를 지나 이제 강단에 선 경제학자가 꼬집듯 던진 화두가 머리속을 울려놓는다.

약 력
제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UCLA대학원 경제학박사
KDI 거시경제팀장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현 한국비교경제학회 회장
현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강사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주요저서/국제화시대의 한국경제운영, 내생적 금융제도론,
진화론적 재벌론, 명령으로 안되는 경제 등

저작권자 Ⓒ시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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