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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2주년> 민주화 넘어 선진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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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 대한 여망, 3당 합당…평화적 정권교체,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시사뉴스가 창립 22주년을 맞았다. 시사뉴스는 1989년 태어난 이래 우리 정치사를 옆에서 바라보며 수많은 격동기를 함께 했다. 1988년 9월 17일 우리나라는 86아시안게임에 이어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서울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뤘고 시사뉴스는 당시 이를 지켜보며 창간을 준비했다. 1989년 6월 30일 임수경의 방북사건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때 시사뉴스는 이를 지켜보며 한 시대를 맞았다.

본지는 1990년 1월 22일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결성해 정치사를 다시 쓰는 사건을 지켜보면서 본격적으로 보도를 시작했다.

그동안 간선제로 치러지던 체육관선거(대통령선거)는 87년 개헌 이후 직선제로 바뀌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최초의 직선제, 국민의 손으로 뽑힌 첫번째 대통령이 됐다. 이후 들어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국민들이 86년 6월 민주화항쟁이후 이뤄낸 최대 쾌거이자 통쾌감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것은 1993년 2월 25일이었고, 그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민주화를 쟁취하는 열기도 잠시,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핵 확산 금지 조약 탈퇴를 선언했고, 다시 한반도는 핵위협이라는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다음해 7월 북한의 주석이었던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정권을 세습해 집권하게 되면서 한반도는 전쟁의 불안감으로 물들어 갔다.

유독 김영삼 정부에서는 큰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 됐고,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같은해 6월 29일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붕괴사고로는 사상최대의 인명사고가 났다.

1997년 2월 12일 황장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서기의 대한민국으로의 망명, 그해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서 추락, 11월 21일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요청까지 국민들은 끔찍한 사고로 연일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들은 서서히 어깨를 폈다. 1998년 2월 25일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해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2000년 6월 15일 6·15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역사적인 남북 공동 선언문이 발표됐다. 또한 2002년 5월 31일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돼 대한민국 최초로 16강 진출을 이루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에 시사뉴스는 지난 22년간의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일어난 사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봤다.

◆민주화에 대한 여망, 3당 합당

1987년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의 여망을 져버리고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김대중은 11월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어부지리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고, 양김은 이때부터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이후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은 민주정의당 노태우,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 속칭 민자당을 만든 후(3당합당)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 새로 창당한 민주당의 김대중과 겨뤄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때 DJ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 YS의 정치보복을 피하려는 하나의 전략으로 보인다.

이때 탄생한 것이 보수당인 지금의 한나라당이다. 그 전신은 민주자유당이었다.

그러나 정통성이 없는 당 창립은 헌법기관의 자체가 유린되고 국민들의 주권이 다시 일당일족독재의 쇠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에 대해 본지 강신한 창간 발행인은 당시 3월호에서 ‘제13대 국회 해산하고 14대 총선 다시 해야’라는 제하의 칼럼를 통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기사가 나간 후 서울 강남의 R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발행인이 괴한 3명에게 전치 3주에 해당하는 폭행을 당했고, 이는 사상 초유의 언론인 테러사건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범인들은 끝내 검거되지 않아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의문을 남긴 채 세월 속에 묻혀 갔다.

◆김대중 정부의 출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성사와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으로 기리 기억될 만한 사건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북 길을 지켜보던 국민들의 통일 열기는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순안공항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뜨거운 포옹을 하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호방한 몸짓을 지켜본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시각 교정을 했고, 남쪽에서는 ‘김정일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치밀하게 준비한 김정일 정권의 통일 정책과 본질적으로는 이전 정권과 차이가 없으면서도 상대적인 일관성과 유연성을 가진 김대중 정권의 합작물이다.

김정일 정권은 98년 2월의 정당사회단체 연합회의에서 남북대화를 시사한 바 있으며, 4월의 민족대단결 5대 방침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강력히 제출했다. 99년 2월 3일의 정부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는 3대 선결 조건을 내걸기는 했지만 회의의 형태가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정부정당사회단체로 바뀐 점, 이산가족 문제를 회의 의제로 포함시킨 점 등 김대중 정권과의 대화를 내적으로 예비하고 있었다.

한편 김대중 정권은 자본주의적 흡수통일을 기본 통일정책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과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특히 김대중 정권의 경제 정책은 한국 경제를 완전한 식민지 경제로 재편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북 정책에 있어 김대중 정권은 이전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관되고 유연한 모습을 보임으로 해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능케 했다.

역사적인 6.15선언은 조미 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해서 김정일 정권의 주도하에 김대중 정권이 호응하면서 이루어졌다.

6.15선언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지만 1, 2항에 포함된 자주와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우선 양측은 이 선언을 통해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천명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창출되던 70년대 초반은 비동맹 운동이 성장하고 미국의 세계적 패권 구도가 흔들리는 등 국제 정세가 조국통일에 유리했다. 또한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던 90년대 초반은 냉전 체제의 붕괴에 따라 탈냉전 이후의 미국 유일 패권이 미처 안착화되기 이전의 불투명성과 여러 갈래의 정세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국제 정세가 상대적으로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7.4 남북공동성명과 기본합의서는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2000년의 국제정세는 조국통일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여전히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무차별한 자본 자유화가 세계 경제를 유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15공동선언 이후 조성된 정세는 조국통일의 전망을 훨씬 낙관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민족의 단합된 자주 역량의 장성이다. 6.15 공동선언 제1항은 이러한 민족 자주역량의 위력과 그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담아 놓고 있다.

6.15선언 제2항에서 남과 북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기억속에 남아있는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자살했을까? 여러가지 추측은 있지만 망자만이 그 사실을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대통령직이나 의원직을 맡았을 때 청렴을 강조한 대통령이었다.

도덕성은 그가 내세우는 정권의 제 1과제였다. 그러나 잇따라 터지는 비리와 뇌물 의혹은 그를 괴롭혔기에 충분했다. 국민들 앞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이제까지 쌓아온 명예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러한 심리적 상황과 자기 지지 세력을 위한 일이 자살 밖에 없다는 생각이 맞물려서 최종선택을 한 것으로 후세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는 1년여전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 자신의 고향인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자살했다. 1946년 8월 6일(경상남도 김해) 태어난 그는 2009년 5월 23일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고, 노 전 대통령은 생전 대한민국을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아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했으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 남북간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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