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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관심과 냉대 속 버려진 노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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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과 냉대 속 버려진 노숙자들



노숙자 수 IMF 시절에 육박…정부 대책 프로그램 못 내놔




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노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거의 IMF 당시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11월26일 현재 서울시 노숙자수는
2,936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거리노숙자는 541명이나 된다. 보통 7∼8월 여름 기간에 거리노숙자가 급증했다가 겨울이 다가오면서 줄어드는데
올해는 오히려 늘고 있다. IMF로 고통받았던 2000년 7월 한때 590명을 기록한 바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그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거리로 직접 나가 노숙자들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20∼30대 젊은 노숙자 급증

11월25일 저녁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역 광장에는 날씨가 풀린 탓인지 생각보다 많은 노숙자들이 나와 있었다. 50명은 넘을 듯
했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벌써 널브러진 사람들도 몇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사람 없었다. 광장에는
20∼30대 노숙자들도 많았다. 어림잡아 30%는 돼 보였다. 너댓살 먹은 여자아이를 데린 일가족 노숙자도 있었다. 행색을 보니 노숙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 했다.

한참 동안 그렇게 멀뚱히 그들을 바라보며 역사 앞에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기가 두려운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한 노숙자가 웃으며 다가와 컵라면이라도 먹게 300원만 달란다. 수중에 200원은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주머니를 뒤져서
300원을 건네니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넉살 좋게도 기왕 주는 김에 나머지 동전도 달란다. 300원을 더 건넸다. 그의 손엣 것까지
800원. 소주 한 병 값이 마련된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광장앞에 마련된 조그만 편의점으로 가서 소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술보다는 식사가 낫겠다 싶어
그를 지하도 건너 식당으로 이끌었다.

식당의 밝은 불빛에서 그의 얼굴을 보니 눈썹 부위에 찢어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채였고 왼쪽 눈두덩이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왜
이랬냐고 묻자, 그는 “기자양반, 힘없다고 나 때리면 안 돼”하며 이를 드러내고 아이처럼 웃었다. 길 가던 행인의 분풀이 대상이었던 모양이었다.


뱃사람 꿈꾸는 노숙자 김씨

그는 식사 대신 술을 사달라고 고집을 피웠다. 결국 식사를 대신할 안주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그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김가라고만 했다. 올해로 마흔 여섯인데 20년 동안 배를 탔다고 한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김씨는 자랑이다. 그런데 사고로
다리를 다치면서 더 이상 배를 탈 수가 없게 됐다. 모아 놓은 돈 전부는 친구들에게 사기 당했다. 이후로 그는 술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떠났고 형제들은 외면했다.

노숙 생활은 달포쯤 됐다. 잠은 서울역 중앙지하도에서 자고 끼니는 무료급식소에서 때우는데 요즘 들어 음식을 먹으면 자꾸 토한다고 한다.


그는 꼭 다시 배를 탈 거라고 했다. 내일 당장이라도 추자도로 내려가 조기잡이배를 탈 자신이 있다고 호언이다. 추자도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친분있는 동생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몸을 추슬러야지 않겠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 생활 해보쇼. 기자 양반. 요놈 없으면 어떻게 버티나?”며 언젠가 꼭 추자도엘
갈 테니 두고보라고 다짐이다.


신용불량이
노숙으로 이어져


11시 경, 다시 지하도를 건너서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다. 1시간쯤 전에 김씨와 함께 건널 때와는 다르게 노숙자들이 꽤 자리를 잡고 있었다.
15명 정도 돼 보였다.

40여m 쯤 되는 이 지하도는 개방형이다. 지하철 지하도에는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길 반대편을 지하로 건널 수 있게 만든 깊지도 길지도
않은 것이다. 사람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아 온기도 없다.

노숙자들은 1.5m 정도의 간격으로 서 있는 사각기둥 사이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게는 이불을 덮고 있었다. 종이 상자를 가져다가
바람을 막고 이불을 덮은 노숙자도 있었다. 아이를 꼭 껴안고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이기며 잠을 청한 부자(父子) 노숙자도 보였다.

광장에서 젊은 노숙자 2명과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상당한 경계심을 나타내더니 ‘길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나 한 잔 뽑아 달란다.

둘 중 그나마 나이가 많은 이씨(32)는 신용불량자였다. 직장을 잡으면 갚아나가리라 생각하고 카드를 쓴 것이 화근이 됐다. 직장은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고. 그렇게 만든 카드가 7장. 돌려막기를 거듭하다가 결국엔 도망쳤다. 그는 노숙 1년이 넘었다.

김씨(23)는 부모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고 했다. 벌써 3년째 노숙을 하고 있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손을 심하게 떨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정부, 노숙자대책 프로그램 부재

광장 여기저기서 노란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노숙자들과 상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아웃리치(현장지원)팀이었다.
아웃리치팀은 서울역, 을지로, 영등포역에서 각 5∼7명씩 활동하고 있다.

아웃리치 자원봉사를 2년 째 하고 있는 이재수(67) 씨에 따르면 노숙자가 올해 들어 급증해 서울역에만도 120∼130명의 노숙자가 있다고
한다.

한편, 이씨는 최근 들어 젊은 노숙자들이 증가한 것과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간혹 있고, 너무 풍요롭게 살다가 가정이
어려움에 처하자 스스로 이길 힘을 갖추지 못 해 노숙자가 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경제권에서는 수백억원대 비리가 연일 터지고, 가진자들은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불리는데 아무리 열심히 벌어봐야 소용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는 것. 이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가진 것 없고, 기술 없는 젊은이들이
아예 미래를 포기하고 노숙자로 나서는 사례가 많다고 그는 전했다.

이씨는 정부가 일정 부분 이러한 노숙자 문제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올해 노숙자들이 머물 공간인 쪽방에 대한 지원 계획이 없다. 노숙자상담보호센터(Drop-in Center)도 내년에야 가동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에 따르면 노숙자들은 한 해 평균 400여명이 사망하고 있다. 정부의 구체적 지원계획이 없는 올해, 노숙자들의 겨울나기는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씨는 또 정부의 노숙자대책 프로그램 부재를 지적하며 병자, 노약자, 알콜중독자, 재활가능자 할 것 없이 한 데 수용되는 노숙자들을 그
특성과 취향에 따라 분리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노숙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울역 중앙지하도로 걸음을 옮겼다. 40여 명의 노숙자들이 벽에 꼭 붙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 소주를 나눠 마시는 그룹도 있었다. 추자도로 가서 조기잡이배를 꼭 타겠다던 김씨는 보이지 않았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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