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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바우 영감'을 통해서본 한국의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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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우 영감’을 통해서본 한국의 반세기


‘민주화의 봄’ 혹독한 시절 최종회분불가 판정… 지난시절 되돌아봐


지난 50년 동안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은 그에게 희비를 안겨주었다. 한국 만화가로서는 유일하게 세계만화백과사전에 등재되어 국위선양에
이바지 했지만 고바우영감을 통해본 한국은 그에게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은 추억이다. 두꺼운 안경너머로 보이는 한국의 근대사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더욱 확대되어 일파만파의 아픔을 가져다 주기에 도저히 모른척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았음을 여실히 볼 수 있다.


택시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장소


‘경무대변소통만화’로 58년 시경분시에서 사흘간의 문초를 당한 끝에 450환의 벌금으로 풀려났다거나 1965년 1월 ‘인혁당무죄판결’만화로
서울운동장 건너편 소재 중앙정보부분실에 불려가 수사관들로 부터 협박을 받은일, 검찰청 공안부에 소환돼 북한간첩과 한 자리에서 조사를 받은 일,
중앙정보부에서 김화백을 소환하여 ‘고바우영감’에 대한 제작의도를 취조하며 4박 5일동안 연금되기도 하는 등 김화백은 창작의 통제를 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바우영감’을 보고 “어제 나온말 되게 불쾌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김화백은 열흘간 집에 일찍 귀가했다. 테러의
위협을 느낀 그의 나름대로의 방법이었지만 방비책 치곤 어딘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뭐… 어두우면 아무래도 위험하니까”라고 말하지만 그가 느낀
신변위협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김화백은 말한다.


중앙정보부와 경찰서, 시경분실, 검찰청 공안부 등에 수시로 불려다니며 김화백은 당시에 택시료가 비싸 명절때 친척들에게 인사드리러 갈때나
탔던 택시를 그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조사받으러 갈때면 일부러 택시를 탔다”고 회상한다.


‘잡학백과’로 독자곁에 영원히


그는 문화일보에서 9월 29일로 ‘고바우영감’의 안녕을 고했다. 이제는 일간지 에서 그의 만화를 볼 수 없지만 작품을 전혀 볼 수 없는건
아니다. 국방일보에 격일로 연재하고 있는 ‘잡학백과’에 역사얘기를 실어 그의 삽화와 함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뒷얘기를 들을 수 있다.


김화백은 현재 ‘잡학백과’를 통해 격일로 역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지난 시절을 이렇게 얘기한다. “그때 어려운
시절에는… 하루에 만화 네개 그려도 모자랐지요.”



































미발표 된 동아일보 '고바우영감' 군검열 불통과 분


1979년 말 ~ 1980년 상반기
미발표 원화첩을 대하는 김성환 화백의 얼굴은 평온하다. 지난 시절, 그의 작품을 두고 최종회분불가(最終回分不可)판정을
알리는 붉은 도장이 작품에서 쉽게 발견되지만 그에게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다. 불가판정을 받은 작품이 3백회분이 훨씬 넘어 일년치는 족히 되고도
남을 것이란 그의 말에서 지난 세월의 굴곡을 짐작할 수 있다.


1980년 1월 14일

(집집마다) ‘감감’ ‘막막’

(집집마다) ‘막막’ ‘감감’

(고바우 사람들에게) ‘거 무슨소리들이 다 그렇습니까’

(사람들) “생활대책얘깁니다”
1979년 12월 17일

(TV방송) ‘만찬참석 두 여성 증언’

(TV방송) ‘버러지 같은 놈 하며

쐈다’

(고바우 딸에게) “넌 가서 책이나

봐라’

(딸, 책상에 않아 곤충사전을 본다)
1980년 2월 5일

(TV방송) ‘식품값 인상요인이 생겼읍니다’

(TV방송) ‘약품값 인상요인이 생겼읍니다’

(도둑이 고바우에게) “몽땅내놔”, (고바우) “이것밖에…”

(도둑이 고바우에게) “옷이라도 벗엇! 강탈요인이 생겼다니깐…”
1979년 12월 26일

(현수막) ‘모든걸 싹 잊어버리는 망년회(忘年會)’

(크리스마스 트리곁에 사람들이 모여 건배하며) “무사한걸 축하…”

(고바우, 식탁위에 토막난 생선과 접시에 붙은 낙지를 보고 있다)

(고바우, ‘모든걸 싹 잊어버리는 망년회(忘年會)’ 장을 나가며 혼잣말)

“싹 잊혀지진 않는군”
1980년 3월 18일

(노모, 고바우에게) “서울선 떡을 빚다가 흘린 떡 고물로 부자가 된다며?”

(노모, 고바우에게)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일도 많다더구나”

(노모, 빌딩숲을 가리키며) “저 큰 집들이 다 뭐냐?”

(고바우, 빌딩을 가리키며) “이건 떡고물 빌딩, 저전 배꼽 빌딩”
1980년 어느날

(고바우부인 방송을 보는데 방송에서) ‘개헌을 하겠습니다’

(부인, 고바우에게) “우리집 가훈도 좀 고쳐보는게…”

(고바우 신문보며) “그렇게 하지”

(부인, 돌아서며 혼잣말) “우리집도 달라지는군”
1980년 3월 19일

(거북이가 ‘민주발전’이라고 적힌 성화를 이고 언덕을 오른다)

(달팽이가 ‘정치발전’투표함을 등에 싣고 언덕을 오른다)

(펜이 언덕에 놓여 있다)

(고바우 펜을 바라보며) “언론 발전은 언제부터…”
  1980년 8월 8일

(밤 11시 가을)

(새벽 4시는 겨울)

(아침 8시는 봄)

(오후 2시는 여름, 고바우 영감 옷장에서 옷을 바삐 꺼내며) “바쁘다 바뻐 옷갈아 입기”



조정희 기자 jhcho@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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