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소설을 읽으면서 무더운 여름을 ‘오싹하게’ 이겨내는 것은 어떨까. 출판사 책세상은 지난해 공포 문학 대가들의 숨은 작품을 발굴한 ‘세계 호러 걸작선’에 이어 올 여름에는 작가 100인의 100편 호러 단편을 선별한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을 출간했다. 수록된 소설은 대부분 국내 초역으로 호러 문학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참신한 선별이 돋보인다.
고딕 소설에서 페미니즘 소설까지
이 책은 호러 작품들의 단순한 모음을 넘어서, 호러 장르에 대한 연대기적 성찰과 더불어 호러 문학의 재발견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호러 작가들은 물론, 발자크 체호프 디킨즈 호손 모파상 등 거장들의 알려지지 않은 호러 작품들까지 담아 다양한 색깔의 작품이 호러라는 공통 키워드로 만났다.
호러 문학사를 수놓는 대표 작가들의 작품은 선혈이 낭자한 충격적 공포와 뱀파이어 유령 등 호러의 전형적 창조물이 주는 장르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반면 주류 문학의 거장들은 음울한 분위기와 일상에 숨겨진 낯설음과 의외성이 초래하는 공포, 평온한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일상을 전복하는 반전을 수준 높은 문학적 수사로 펼쳐놓았다.
호러의 시대적 변화상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고딕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E.T.A. 호프만의 ‘자동인형’에는 초자연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천착한 그의 문학적 세계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유령 소설의 대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학교 이야기’는 유령과 유령에 의한 복수라는 호러의 전형적인 서사구조와 종반으로 갈수록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는 치밀한 이야기 전개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같은 고전 호러는 19세기 말 이후 ‘드라큘라’로 유명한 브램 스토커와 공포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러브크래프트를 거치면서 한층 발전한다. 브램 스토커의 ‘스쿼’는 몸서리쳐지는 전율과 선혈이 낭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각인시킨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악령이 든 재닛’은 악령에 사로잡힌 한 여인, 그로 인해 공포에 떠는 마을 주민의 모습을 모호한 분위기와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호러 문학은 최근 활발한 변주와 재생산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여성운동의 주요 이론가인 샬럿 퍼킨스 길먼의 ‘커다란 등나무’는 억압적인 가치 체계에 희생당한 여성의 영혼이 유령으로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 문학으로서의 호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아웃사이더’는 사회로부터 차단된 한 인간의 공포를 통해 우리 시대 소수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강렬한 핏빛의 처절함에서부터 차가운 섬뜩함, 뒤통수를 치는 반전, 공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머러스함까지. 호러가 줄 수 있는 모든 빛깔의 공포를 만끽하다보면 공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기괴한 이야기들은 더위를 날릴 뿐만 아니라 기괴한 현실을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위안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