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플랜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서기엔 부담스러운, 그래서 텀블러로 일말의 ‘환경 양심’이라도 달래려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환경 에세이. 종말론적인 구호나 무늬만 친환경적인 소비문화를 넘어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일상에서도 실천 가능한 환경 습관을 풍부한 철학적 역사적 맥락을 들어가며 소개한다.
녹색으로 분칠한 구호와 마케팅
돛을 달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했던 툰베리를 비롯해 숱한 전문가들이 탄소 배출로 인한 온도 상승을 막지 못한 결과 이미 종말에 가까운 재난이 닥쳐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많은 기업들이 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였고 에코백, 종이빨대, 텀블러 등의 제품을 대량생산함으로써 ‘친환경적 삶’을 예찬하고 유행시켰다.
그럼에도 지구는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환경운동의 위선적이거나 모순적인 면모들을 비판한다. 환경운동의 여러 방향 가운데 ‘인간혐오’라는 극약처방은 내 옆의 가난한 이웃보다 북극곰에게 더 공감하기 쉽게 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를 너무 거대한 종말론적 위기로만 다루어서 개개인으로서는 ‘어찌할 바 모르는’ 백지 상태로 만들었다. 결국 사람들은 시장에 널린 ‘친환경 제품’들을 손쉽게 구입함으로써 지구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식을 택했고, ‘그린 워싱(친환경 위장술)’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저자는 이처럼 녹색으로 분칠한 구호와 마케팅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대답으로 이 책을 제시한다.
‘덜’ 편리하고 ‘더’ 절제하는 습관
지구를 구하는 일은 체중 관리로부터 시작된다. 과거 부자들이나 일주일에 한번 누리던 육류 소비를 현대인들은 거의 매일 밥 먹듯이 한다. 그러나 건강한 채식 식단을 유지한답시고 아보카도가 듬뿍 들은 샐러드를 매일 아침 섭취한다면 수십 번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은 탄소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 흔히들 자연친화적이라 여기는, 먼 거리를 달려온 ‘유기농’ 제품보다 싱싱한 ‘제철 채소’를 먹는 것이 나와 지구에게 더 우아한 식습관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이 외에도 SUV 자가용, 항공, 관광여행, 패스트패션 등 과거 호사스러운 취미생활로 여겨지던 것들이 오늘날 대중적으로 산업화되면서 일으킨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다. 자가용이나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이용해 이동 시간에도 느긋하게 여행의 낭만을 즐기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헌 옷을 교환하면서 아무렇게나 걸쳐도 힙한 패션 스타일을 유지하고, 사용하지 않는데도 돌아가는 전자기기를 끄고 책을 읽는 등 저자는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소박한 환경 습관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농담 같은 진담의 화법으로 풀어나간다. 저자는 자연보호 역시 ‘문화적 개념’임을 지적하며 인간들의 실천 양식에 담긴 모순된 태도나 철학적인 관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수십 번 비행기에 오르내리면서 녹색당에 투표하거나 탄소상쇄기금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윤리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지구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아는 ‘어른다운’ 자세다. 수익이나 이득을 ‘더 빨리’ 얻고자 하는 태도는 바꾸지 않은 채 그것을 ‘녹색’으로만 분칠해온 현대인들의 삶에 반성을 촉구하며 저자는 오히려 내 옆의 가난한 이웃을 보살피는 데서 환경보호가 시작된다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