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누구나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타인에게 보이는 다양한 ‘나’, 새롭게 발견한 나의 모습을 볼 때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진짜 나’인가? 이 책은 뇌과학적으로 ‘자아’와 ‘자기감’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는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본다.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이 책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알츠하이머병, 조현병 등 제법 익숙한 병명부터 신체통합정체성장애, 유체이탈에 이르기까지, 자아와 관련된 다양한 신경심리학적 질병을 겪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억을 모두 잃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침대에 누워 있는 또 다른 나를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아’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는가?
코타르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자신이 죽었다고 살아 있는 입으로 말하며,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노인은 기억을 천천히 잃어간다. 신체통합성장애를 가진 남자는 자기 다리를 스스로 자르고 싶어하며, 건물에서 뛰어내린 조현병 환자는 다른 누군가가 죽으라고 명령했다고 생각하며, 이인증을 겪은 여자는 현실을 꿈속처럼 느꼈다. 유체이탈을 경험한 남자는 운전을 하다가 도로 위에 서 있는 스스로를 보았고, 황홀경 발작을 겪는 사람은 자아가 사라지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철학 등 학계 최전선의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섬뜩하면서도 경이로운 자아의 세계를 더듬는다. 탐사의 중심에는 ‘자아’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한다. 뇌와 몸, 정신과 정서, 사회적 관계와 기억 그리고 자아의 연결고리를 파헤치는 가운데, 우리는 ‘나’의 빈자리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아의 정체를 포착하게 된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자아라는 난제에 대한 과학의 도전은 우리를 더 먼 곳으로 이끈다.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연구 덕분에 과거를 기억할 때 사용하는 뇌 부위가 미래를 사고할 때에도 쓰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억이 서사적 자아를 만드는 과정을 명확하게 밝혔다. 한편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조현병을 자아의 관점에서 연구함으로써, 이 질환을 더욱 섬세하게 이해하며 새로운 치료적 접근법을 발견한다. 유체이탈이라는 경험을 탐구하며 우리는 뇌가 일종의 ‘예측기계’로서 실제 지각과 예측된 신호 간의 오차를 통해 ‘몸’과 ‘나’를 인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제 ‘자아’는 우리의 뇌와 몸, 마음, 정신과 불가분한 구체적인 실체로서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아가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과 연결된다면, 독립적인 ‘자아’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가? ‘진정한 나’란 있는가?
진화적으로 ‘자아’는 인간의 인지와 경험을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생존력을 키우기 위해 등장한 기능이다. 시간이 흐르며 ‘자아’는 때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아름다움을, 때로 지나친 오만과 ‘나’에 대한 집착 그리고 파괴적인 결말을 불러왔다. 오늘날 번뇌와 욕심을 덜어내는 ‘무아’, 나를 잊음으로써 오히려 나에게 집중하는 ‘몰입’이나 ‘마음챙김’ 모두 ‘자아’의 논의와 연결된다. AI의 등장으로 ‘자아’는 인간이라는 특별함 혹은 보편성을 찾는 이들 사이에서 더욱 중요한 논점이 되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자아’에 관한 논쟁은, 역설적으로 ‘자아’가 기능적으로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