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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극 천하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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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년에서 올 초까지만 해도 사극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MBC ‘대장금’ ‘다모’ 영화 ‘스캔들’ ‘황산벌’ 등 다양한 사극들이 쏟아졌고 대부분 시청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사극 천하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SBS ‘왕의 여자’가 실패하고, 블록버스터로 화려하게 테이프를 끊은 SBS ‘장길산’과 KBS ‘불멸의 이순신’ 또한 의외로 참담한 흥행 결과를 낳으면서 사극 붐은 신데렐라 신드롬과 코믹한 이혼녀의 성공기 틈바구니에서 사그라드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대형 사극 두 편이 안방 점령을 꿈꾸며 경기에 돌입했고, 충무로에도 독특한 사극물들이 제작중이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과연 사극 천하는 다시 올 것인가?


바다를 장악한 민족 영웅의 일대기 ‘해신’
사극 열풍의 중심에는 대하드라마 KBS ‘해신’과 SBS ‘토지’가 있다. 각각 지난 달 24일과 2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두 작품은 모두 50부작으로 무려 150억원 이상의 거액이 들어간 대작이다.

‘해신’은 민족적 영웅담이자 파란만장한 인물의 삶을 다룬 전기다. 장보고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와 일본, 더 나아가 아라비아까지 이르는 머나먼 바닷길을 개척하고 청해진을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로 건설함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국경 없이 다스렸던 세계인이자 미래인이었다. 이 같은 경이로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 생애에 관한 기록은 희소하고 분명치가 않다. 장보고는 중앙정치에의 진출 야망과 납비 문제의 유산, 서남해안지방의 군소해상 세력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몰락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때문에 역사의 패배자, 비열한 반역자 등의 편파적인 기록들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해신’은 장보고에 대한 이 같은 잘못된 기록을 뒤집고 영웅적 일면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여기에 자미부인과 정화 정년 등 가공의 인물을 첨가해 흥미를 유발한다.

장보고 역에는 최수종이, 장보고와 남해안 상권을 놓고 개편을 다투는 여장부 장미부인역은 채시라가 캐스팅됐다. 장보고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귀족의 딸 정화 역은 수애가, 정화를 사랑하는 해적 염장은 송일국이 맡았다. 연출은 ‘태조왕건’의 강일수가 담당했다.


격동의 근대사를 살아가는 민초의 삶 ‘토지’
‘토지’는 박경리 작가가 26년 만에 총 완성한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해 기획단계만 무려 3년을 거친 역사극이다. 1979, 87년 2차례 KBS에서 이미 제작된 바 있으나 당시에는 소설 집필이 완료되지 않아 미완의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반해 이번에는 완성된 5부의 원작이 모두 다뤄진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드라마는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최서희라는 주인공의 굴곡진 평생의 삶을 메인 플롯으로 구성하고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구성해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간의 삶을 그려내갈 예정이다. 이를테면 최서희와 조준구의 원한관계, 윤씨부인이 동학장수 김개주에게 겁탈 당해 김환을 낳고 다시 김환이 형수인 별당아씨와 불륜에 빠지는 2대에 걸친 비극적 애정행각, 최치수가 김평산에 의해 살해된 다음 2세대인 서희와 김평산의 아들 김두수가 독립운동가 김길상의 아내와 일제하의 형사로 만나는 대를 이은 원한관계 등 서희를 중심으로 겹쳐지는 위정자에서부터 민초에 이르기까지의 인간관계와 군상을 방대한 역사극으로 엮었다. 제작진은 “문학적 정서를 살리고 소설속의 역사 경제 정치적 배경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표현할 예정이다”며 원작의 영상판 재현에 초점을 맞출 것을 시사했다. 덧붙여 “시청자는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며 100여년전 인물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고 말해 ‘토지’가 보편성에 천착한 사극이 될 것을 암시했다.

최서희 역에는 김현주가 발탁됐고, 종의 신분으로 서희와 함께 도망쳐 결혼하는 길상 역은 유준상이, 서희의 땅을 빼앗는 조준구 역으로 김갑수가 등장한다. 그의 아내 홍씨 부인 역은 도지원이 출연한다. 연출은 문학적 향기를 영상언어로 되살린 ‘왕룽일가’ ‘관촌수필’ 등을 만든 이종한 PD가 맡았다.


조선시대 공포추리물 ‘혈의누’
한편 충무로는 사극의 진보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미 ‘영원한 제국’이나 ‘황산벌’ ‘스캔들’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도 현대적인 사극을 여러 차례 창조해 냈던 영화계는 이번에 공포 추리물과 코미디물이라는 새로운 사극을 제작하고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와 제목만  같은 김대승 감독의 ‘혈의누’는 조선시대 공포 추리극이라는 낯선 장르를 표방하고 나섰다.

영화의 배경은 1800년 조선시대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화도라는 섬에서 조공으로 중앙에 올리려던 종이와 배가 불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선원 하나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섬 주민 한명이 끔찍하게 당한 채 발견된다. 조공 손실과 사건 수습을 위해 뭍에서 차사와 군관일행이 파견되고 그들은 사건을 급히 마무리지려는 세력가들과 사건의 주체를 귀신으로 믿는 주민들 사이에서 힘겨운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하루에 한명 씩 각기 다른 끔찍한 방식으로 주민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되기 시작하고. 군관일행은 집요한 수사 끝에 섬마을에서 7년 전 자행됐던 한 사건과 연쇄살인이 연계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점차 드라마는 미스테리로 빠져들고 심리적 갈등도 고조된다. 내년 2월 개봉예정이며 차승원 지성 등이 출연하는 기대작이다.


나약한 청년 이순신 ‘천군’
영화 ‘천군’은 제작사 싸이더스가 3년 동안 준비한 대작 프로젝트. ‘천군’은 현재의 남 북한 군인들과 핵 전문 과학자가 혜성이 일으킨 타임워프로 인해 1572년 과거로 이동해서 청년시절의 이순신을 만나게 되는 기상천외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특징은 현대의 병사들이 만난 이순신은 임진왜란 시절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이 아닌, 장군이 되기 전 별 볼일 없던 젊은 시절의 청년 이순신이라는 점이다. 역사에 빛나는 장군으로 기억되는 이순신이지만, 장군이 되기 전의 그는 역적의 집안으로 몰려서 매우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문과 시험에는 응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7년 동안이나 무과시험을 준비했으나, 보기 좋게 낙방한다. ‘천군’에서는 이 시기 28살의 젊고 나약한 이순신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영웅의 위인전식 해석을 뒤집는다는 면에서 ‘황산벌’과 통한다.

민준기 감독의 데뷔작으로 박중훈이 이순신 역을 맡았고,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무장된 북측 경비대장 역으로 김승우가 캐스팅됐다. 황정민은 우직하고, 이순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여주는 다소 감상적인 남한군인으로 나온다. 공효진은 MIT 출신의 핵물리학 천재 과학자로 등장한다.


상상력의 보고, 영상적 자극 요소 많아
그렇다면 이처럼 대형 사극 열풍이 또 다시 불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사극은 지속적으로 사랑받아온 그야말로 전통적 장르다. ‘조선왕조 500년’ ‘허준’ ‘여인천하’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사극은 꾸준히 국민드라마의 위치를 차지해왔다. 바로 이 점이 방송사가 사극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기도 하다. 트렌디 드라마가 젊은 세대에, 가족 드라마가 주부들에게, 또는 액션이나 정치 드라마가 남성들에게 시청자가 한정된데 반해 사극은 초등학생부터 노인층까지 아우를 수 있어 대작으로, 기획하기에는 가장 구미가 당기는 장르다.

더군다나 역사는 실제라는 토대가 있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틱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작년부터 사극 열풍과 함께 실존인물에 대한 영화가 잇따라 제작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사극은 제작진이나 시청자 모두에게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효과적으로 증폭시키는 원형이다. 특히 충무로의 경우 최근 시대물의 매력에 눈뜨기 시작해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이 계속 개발될 전망이다. 그 동안 도외시 해 온 만큼 사극은 아직 손닿지 않은 곳이 많은 미지의 바다인 셈이다.

볼거리가 보장된다는 것도 사극의 빼놓을 수 없는 보너스다. 의상과 미술을 비롯해 역사적 장면의 재현 등 사극에는 화려한 비주얼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시청자를 이끌만한 요소도 많다. 이 때문에 제작비가 대거 투여되는 블록버스터로 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패는 새로운 역사 읽기

하지만 사극의 결정적 흥행성은 새로운 역사 읽기와 상상력에서 찾아진다. 이용포 문화평론가는 “사극의 진정한 미덕은 역사 속에서 오늘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극에서 흥미를 느낀다면 역사에 대한 절묘한 재해석 때문이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올 초까지 사극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배경에도 퓨전 사극의 본격적인 유행이라는 트렌드가 존재한다.
‘대장금’ ‘다모’ ‘스캔들’ ‘황산벌’ 등 최근 열풍을 이끌어온 사극들은 하나같이 현대적 변형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역사적 고증보다는 새로운 인물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시대적 욕망을 관통하거나 역사의 통설을 뒤집어보였다. ‘조선왕조 500년’ 이후 사극이 다시 주목받은 계기가 됐던 ‘허준’은 사실 현대적 사극의 시작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장길산’ ‘불멸의 이순신’ ‘왕의 여자’는 실존 인물에 내재돼 있는 현대적 코드를 제대로 짚어내는 창조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창조에 초점을 맞춘 시도들은 압도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밖에 없다. 신라대군을 막으라는 의자왕의 명을 따라 전장에 나가기 전날 아내와 자식을 ‘영웅적으로’ 죽인 위인전 속의 계백보다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잠긴 계백을 한편으로 동정하고 한편으로 비난하는 영화 ‘황산벌’의 계백이 훨씬 생생한 것과 같은 논리다. 강렬한 캐릭터는 드라마 전체를 살아있게 하고 따라서 당연히 관객을 흡인하게 된다. 사극의 성패 또한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통찰력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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