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100만 시대. 열심히 일하고 땀을 흘려야 할 젊은 일꾼들이 놀고 있다. 대졸자 이상의 고급인력도 속수무책이다. 토익 900점 이상, 석·박사 과정의 실업자들이 수두룩하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하면서 실업난은 극도로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실업난 해소를 위해 올 초 10만명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실업자는 늘어만 간다. 취업을 위해 졸업을 미루고, 고시준비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이 많다. 채용박람회마다 수만명의 구직자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취업정보 인터넷 사이트나 동호회엔 비슷한 처지의 구직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의 취업난을 ‘취업 전쟁’이라는 말로 빗대는 것도 과장되지 않다. 최근 대기업 입사 경쟁률이 수백대 1을 넘었고, 국민은행 신입사원 공채에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인력이 대거 몰려들어 극심한 취업난을 실감케 한다. 해마다 4∼5차례에 걸쳐 공개채용하는 순경시험과 공인중개사 시험도 취업난과 맞물려 ‘고시’ 수준을 방불케 한다. 대기업 선호, 중소기업 및 이공계 기피 현상은 청년 실업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채용해도 일해보고 잠적하거나 이직 다반사
그러나 구직자들이 대기업 채용에 구름떼 같이 몰리는 반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심각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취업난’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개월간 일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모두 다 허사였어요. 도대체 일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청년실업이니, 구직난 이니 하는 소릴한단 말입니까.”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 소재 한 중장비업체 사장이 따져 묻는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공고를 수도 없이 내고, 직접 사이트에서 적당한 인물을 골라 직접 연락을 하면 “그런데선 일 안한다”는 퉁명스런 대답만 돌아온다.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은 턱없이 많은 임금을 요구해 허탈함을 주고 간다.
광주 소재 도색, 도장업체 인사담당자도 “1주일을 참지 못하고 그만 두는 사람도 많다. 가끔 구직자로부터 전화가 와도 임금과 주5일 근무 여부를 묻고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울산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사장은 “일할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최근 고용, 취업박람회에 참가했는데 수천명이 몰려와도 우리같은 중소업체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호소했다. 3D업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중앙고용정보원은 최근 3D업종의 구인·구직을 분석한 결과, 10명을 뽑을 경우 1~2명 오는 게 고작이라고 전했다.
취업난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기피는 현저하게 나타나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채용하더라도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관두거나 이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퇴직 근로자 10명 가운데 6명은 취업한 지 1년도 안되고, 이 중 20~24세가 전체 70%를 넘어 청년층의 퇴직율이 높았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 이인희 홍보팀장은 “실제로 중소업체 신입의 경우, 이직율이 30%를 넘는다”면서 “취업에 번번히 실패한 구직자들이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입사해 안맞다 싶으면 쉽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채용이 확정되고 입사날짜에 나오지 않거나, 며칠 나오다 소식도 없이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채용을 해서 가르치고 일 좀 시킬까 하면 이직을 해버리는 등 중소업체의 구인난이 이만 저만 아니다.
중소기업 정직원보다 대기업 사무보조 선호9~10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공채가 활발하다. 그러나 대기업의 공채시즌이 채용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기업에겐 반가울리 없다. 우수인력이 대기업으로 집중되는 구직행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공채시즌이 지난 11~12월경으로 채용시기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사원 채용시 지원자와 연봉조건이 맞지 않거나,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해 인력난이 더욱 심화된다.
‘잡링크’ 이인희 홍보팀장은 “중소기업이 채용 때 지원자와의 연봉조건 불일치, 조건에 맞는 지원자 부족, 낮은 지원율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기업들은 구직자들의 지나친 대기업 선호현상 때문에 중소기업이 구인난을 겪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의 채용정보 부족과 낮은 인지도 또한 구인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낮은 연봉과 불안정성 등이 가장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임금과 근로조건이 대기업에 비해 열악한 게 현실이다. 대디업 초임연봉이 중소기업보다 500~1,000만원 정도 높은 게 보통이다. 구직자 입장에서 중소업체 정직원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대기업 사무보조로 일하는 게 낫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정작 취업 전문가들은 대기업 연봉이 알려진 것보다 과장돼 있다고 말한다. 잡링크 관계자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대기업 초임연봉이 평균치는 아니며, 그야말로 열 손가락에 드는 특정 대기업의 경우로 부풀려 있다”며 “이 때문에 차라리 1년 더 공부해 대기업 들어가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취업 재수·삼수도 쉽진 않다. 취업준비를 위해 요즘 어학연수에 석·박사학위까지 받아놓지만, 정작 취업할 때 나이제한에 걸려 때를 놓지고 만다.
구직자들의 눈높이 현실과 거리멀어
이처럼 현실과 상황을 고려치 않은 취업난은 구직자들의 ‘눈높이’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 포털 사이트 스카우트가 전국의 대학 4년생 1,144명에게 취업을 원하는 기업의 유형을 물어본 결과, 대기업 35.4%, 공기업 21.4%, 외국계 기업 7.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취업이 가능한 기업에 응답자의 77.9%가 중소·벤처기업이라고 대답했다. 급여와 복리후생제도, 직업의 안전성 등을 고려해 대기업 공기업 등의 입사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중소기업 밖에 취업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중앙고용정보원이 지난 2002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구직자의 ‘의중임금’은 월 132만원, 취업희망자의 의중임금은 월 151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전년도에 취업했을 때 받았던 임금은 89만6,000원에 불과했다. 구직자들이 원하는 임금과 실제 임금 격차가 대단히 크다.
하지만 무작정 눈높이만 낮춘다고 구직자의 취업난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단 취업부터 하고 보자는 계산에 들어가 나중에 이직을 하는 식으로 자리를 옮기다 보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권혜자 연구위원은 “고학력자들에게 무조건 눈높이를 낮추는 것은 무리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청년 실업대책은 단기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즉 취업난 해결은 복합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중소기업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고 능력을 발휘하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겨갈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물론 몇몇 소수가 그런 경우로 화제가 되곤 하지만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하다. 대기업의 경우 필요한 인력을 채용해서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에서 데려올 이유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