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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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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사람도 자동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밤거리를 홀로 걷고 있다. 연쇄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의 밤길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자칫 미궁으로 빠질뻔한 연쇄살인의 주범 유영철이 체포이후 쏟아내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죄행각에 사회적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과 아직 풀리지 않은 미제 살인사건이 남아 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체포됐지만 시민들의 공포증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살인은 늘어만 가고 있는데, 살인범의 범행수법이 갈수록 치밀하고 지능화되고 있어 경찰도 범인 잡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살인 대상이 원한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에 불안감은 더 커진다.


귀가시간 재촉하는 시민들

살인범 유영철이 서울과 수도권 도심에서 10개월 동안이나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살인범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는데도 몰랐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도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민들은 공포에 떤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무차별 ‘엽기살인’의 충격은 사회적 분위기를 살벌하게 바꿔놓고 있다. 밤길에 나다니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골목길을 갈땐 짝을 지어 간다는 나름대로의 방책을 세워놓고 있다. 직장인 이연정(25세)씨는 “툭하면 터지는 살인사건 때문에 길 다니는 것도 무서워 귀가시간을 앞당겼다”면서 “전엔 친구들도 자주 밖에서 만나고 했는데 요즘엔 해 떨어지면 집에 가기 바쁘고, 회식시간도 평소와 달리 저녁만 먹고 일찍 가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이경아씨는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고는 불안한 마음에 길을 다닐 때 자꾸 뒷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도로가에 바짝 붙어 다니거나 뒤에 남자가 오는 것 같으면 걸음 조절을 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식으로 다닌다”고 불안함을 호소한다.

자식을 둔 부모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전화를 걸어 귀가를 재촉하고 시간을 체크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20대 딸을 둔 50대 주부는 “세상이 이렇게 흉흉해서 살 수 있겠나. 내 가족 중 한명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서 잠도 안온다”면서 “요즘 가족들 귀가시간 챙기는 게 일이 됐다. 올 때가 되도 안오면 걱정이 돼서 자꾸 전화기에 손이 간다”고 말한다.


‘묻지마 범죄’ 확산… 수사기법은 ‘아날로그’







창문 빗장걸이

경찰과 전문가들은 사회의 급속한 발전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소외계층이 늘어남에 따라 사회와 특정계층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살인 등을 저지르는 ‘무동기 범죄’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1~2년 새 선진국형 ‘묻지마 범죄’ 로 변하고 있지만 수사방식은 ‘아날로그’ 방식에 머무르고 있어 한계에 봉착했다.

탐문과 지문을 통한 전통적 수사방식의 검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5년(1999~2003년)간 경찰의 검거율은 99년 95.2%에서 2000년 88%대로 떨어졌다. 특히 지문을 통한 범인 검거율은 20~30%에 불과하다. 수사방식에서 지문감식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범인들이 현장에 지문을 남기지 않거나 심지어 지문을 변형하는 등 지능화되고 있다. 유영철도 현장에 자신의 지문을 남기지 않거나 피해자의 지문을 도려내는 수법까지 썼다. 유전자 감식까지 고려해 피해 여성과 성관계를 갖지 않고 현장을 방화, 증거를 없애는 주도면밀함에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수사관들에게 “초동수사를 잘했으면 난 벌써 잡혔을 것”이라는 조롱어린 말을 내뱉기도 했다. 경찰은 올 초 유씨를 검거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번번히 놓아줘 피해자가 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유씨의 체포도 전화방 업주의 신고로 이뤄졌고 검거이후 수사도 유씨의 자백에 의존하는 형국이라 유씨가 경찰을 데리고 논다는 비아냥마저 들린다.







모형 CCTV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을 비롯해, 경찰이 자체적으로 꼽는 수도권 주요 미제 살인사건만 13건이지만 아직 뚜렷한 단서조차 없어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연쇄살인 등 대형범죄 이후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일시적으로 ‘범죄의 공포상태’에 빠지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같은 사회적 공포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불안해소를 위해 경찰과 언론 등 각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








호신용 스프레이







최근 개인용 방범, 호신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경찰도 믿지 못하는 시민들은 뚜렷한 대안이 없는 가운데 ‘이제 내몸은 내가 지킨다’는 인식으로 자구책을 찾고 있다.

실제로‘유영철 충격’ 이후 호신, 방범 용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경매업체 옥션은 유영철 체포이후 19일 하루만에 방범, 보안용품이 전주 평균 판매량 470만원에서 보도 직후 780만원어치가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가장 인기품목은 ‘스프레이’와 ‘경보기’ 같은 휴대용 호신 제품들. 특히 이번 연쇄살인 사건이 여성과 노약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소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호신제품들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 경호업체, 상가 경비 등에 주로 사용됐던 호신봉이 개인 호신용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집안 문단속을 강화하는 도어락 제품들도 판매량이 늘고 있는데, 기존의 열쇠나 비밀번호 입력방식이 아닌 지문인식 제품들이 주로 잘 나간다. 옥션 커뮤니케이션실의 배동철 이사는 “이번 연쇄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신용품이나 방범용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특히 이번 연쇄살인이 원한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감이 다른 때보다 훨씬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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