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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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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서울을 묘사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러시아워의 신도림역, 명동과 강남역 앞의 인파, 금요일 새벽 1시의 홍대 앞,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살해당한 사람들의 수, 등록된 외국인노동자의 수, 매형마트의 매출액 1위 품목, 새로 지어지는 빌딩들의 수…… 그에 따라 서울은 국제화된 메가씨티나, 범죄로 가득한 필름 누아르의 배경, 미세먼지 자욱한 오염된 도시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그문트 바우만을 흉내내자면, 여긴 거대한 쓰레기장이다. 도시는 쓰레기들 틈에서 피어나고, 쓰레기들과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 하나가 도심 한복판, 아름답고 오래된 공원의 커다란 나무그늘 속에 살짝 감추어져 있다. 그건 노인들이다.
물론 그들이 쓰레기인 것은 진짜 쓰레기라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을 쓰레기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종로로 향하는 새벽 버스와 대낮의 지하철 1호선과 모든 역앞 벤치를 장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영화 <디스트릭트9>에 나오는 성가신 외계인처럼 취급한다. (왜 하필 그들은 내가 사는 도시의 하늘에 멈추어야 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처럼 혐오스러운 외계인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 그들의 늙음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온힘을 기울인다. 하지만 늙지 않는 인간은 없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사람들은 늙는 것을 죽도록 혐오하고 늙은 자들을 기피하며, 미셸 우엘벡이 소설들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듯이, 늙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인들로 가득찬 도심 공원의 기이한 풍경
아무튼 난 그 처치 곤란한 노인들을 2004년 탑골공원에서 처음 목격했다. 그때 난 영화학과 학생이었고 과제로 짧은 영상을 찍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왜 도대체 뭘 찍었는지는 까먹었다. 기억나는 건 거기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노인들이 있었다는 것, 아무리 파고들어가도 공원은 끝나지 않았고 노인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에서 일종의 적의가 느껴졌다는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건 멀끔하게 정돈된 도심 한복판에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했고, 별 이유 없이 싸움이 벌어졌고, 아무데나 침 뱉고 욕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볕을 쬐는 노인들 주위에서는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5년 뒤 근처의 또다른 공원에 들어가보았다. 어쩐지 노인들은 더 많아지고 그동안 적의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공원 양편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의 정치단체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본 과격시위를 하다가 잡혀가는 보수단체의 회원들이 떠올랐다. 대체로 나이가 많은 남자들로 이루어진 그 단체들이 벌이는 시위는 화면으로만 봐도 꽤 무시무시했지만, 난 그걸 아주 질 나쁜 농담 정도로 생각했었다. 이해가 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그 사람들은 장난이나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미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요즘 만나본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한쪽에서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욕하면 다른쪽에서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욕하며 싸우는 식이기는 했지만.)
또다른 쓰레기들, 젊은이들은 어디에
게다가 언뜻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그 공간에는 분명히 일종의 자발적인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수십개의 장기판과 바둑판,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하는 중국식 기체조, 수많은 비둘기들, 욕설과 싸움, 달콤한 잔디향과 뒤섞인 담배와 오줌 냄새, 무료로 배포되는 빵과 음료수,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그 모든 게 뒤섞여 멋지진 않지만 어쨌든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거기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날 매혹시켰다. 하지만 한편 이상한 좌절감 같은 게 들었다. 어떤 의문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이 이상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 왜 하필 노인들이란 말인가.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은 멋없는 면 점퍼에 이마트 삼종쎄트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그런데 돈도 없고 할 일도 없으나 집에 들어가기는 싫은 아이들이어야 한다. 노인들이 거기 있는 게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할 일 없고 돈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노인들만큼이나 모두에게 쓰레기 취급 받는 요즘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는 거다. 어, 나도 안다. 그들은 홍대나 강남역, 자라나 유니클로 매장, 스타벅스나 커피빈, 학교와 학원, 도서관과 독서실, 그리고 피씨방, 어, 분명히 다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가십거리를 찾느라, 공원을 어슬렁거리면서 괜히 싸움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형편없는 옷차림으로 여자나 남자를 꼬실 시간이 없다.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쓰레기장을 나가야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정말 짜증난다. 모든 원인은 인터넷의 발달 때문이 아닌가 하여 온세상의 컴퓨터를 부수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화를 가라앉히고 현실적으로 따져보자면, 다시 말해 요즘 젊은이들이 게토화된 도심 공원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면, 그들이 실제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다. 인터넷을 공격하는 거다. 전세계 주요 웹싸이트들을 마비시킨 다음 메인페이지에 무시무시한 선언문 따위를 띄우는 거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는 잡혀가고, 난동을 피우고, 9시 뉴스에 나오고, 기타 등등.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실질적인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네이버에 악플을 다는 게 아니라, 네이버를 날려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릴게 아니라, 다음 아고라를 마비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디씨에서 '등수놀이'를 할 게 아니라 디씨의 갤러리들을 다 없애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청와대에 청원을 할 게 아니라 청와대 써버를 날려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나도 안다. 그런 짓을 하면 잡혀간다. 그래서 다들 얌전히 삼성에 취직하고 토익 공부를 하고 외고에 가거나 연예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들어간다. 안 그러면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니까, 저 공원을 꽉 채운 노인들처럼. 그런데 알고 있나? 쓰레기가 되기란 너무 쉽다는 걸 말이다. 늙어도 혹은 너무 젊어도, 일을 안해도 혹은 너무 많이 해도, 게을러도 혹은 너무 바빠도, 멍청해도 혹은 너무 똑똑해도, 뚱뚱해도 혹은 너무 말라도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누구든 한번쯤은 실수를 저지르고 실패도 하다가 결국은 늙는다. 종국에는 다 쓰레기가 될 거라는 말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쓰레기다. 당연하다. 여기는 쓰레기장이니까. 쓰레기장에선 다 쓰레기다. 이 쓰레기장에서 나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모두 쓰레기들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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