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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불안이 귀신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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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사회적 갈등심화 등 암울한 시대 분위기 영향

납량물의 정수는 괴담이 아닐까. 허술하고 유치한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괴담만큼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공포물은 찾기 어렵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의 성장기는 괴담과 함께했고, TV나 영화는 학원가의 괴담들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특히 올해는 괴담 열풍이 뜨겁다. 시즌마다 찾아오는 괴담이지만 최근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명명될 만큼 이상기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무엇이 괴담을 불러오고 있으며 괴담의 무엇이 이토록 강렬한 흡인력을 발휘하는지… 도시괴담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을 짚어보았다.


무서운 이야기도 복고 바람







일본 공포영화 '착신아리'의 한장면.

현재 네티즌을 중심으로 뜨겁게 일고 있는 괴담 신드롬의 시작은 ‘빨간마스크’다. 하얀색 레인코트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빨간색 큰 마스크를 쓴 여자가 “나 예뻐?”라고 묻는다. 예쁘다고 대답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래도 예뻐?”하며 귀까지 찢어진 입을 보여준다. “못생겼다”고 말하면 마스크를 벗고 숨겨두었던 큰 식칼로 죽인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빨간마스크’ 이야기는 초등학생들에게는 공포를, 젊은 세대에게는 괴담 자체에 대한 흥미를 부채질 했다. 공포 전문 사이트들이 호황을 맞이했고 각종 괴담들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 괴담 열풍이 복고적이라는 것. ‘빨간마스크’는 1980~90년대 이미 일본과 한국의 어린이와 10대를 공포에 떨게 한 바 있다. 반은 고양이, 반은 인간의 모습을 한 요괴가 어린이들을 잡아먹는다는 ‘홍콩 할매’나 납치돼 토막살해 당한 한국조폐공사 사장 딸의 흔적이 화폐마다 새겨져 있다는 ‘김민지’ 괴담 등 현재 유행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1990년대 유명한 학원가 괴담의 복제 혹은 리메이크다.

이 때문에 괴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복고 문화 열풍의 한 갈래로 해석하기도 한다. 괴담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우스꽝스러운 초등학교 괴담이 인기를 얻는 현상은 이 점을 더욱 뒷받침한다. ‘유관순 동상이 밤 12시면 세종대왕 동상을 찾아가 한글을 배운다’ ‘수위아저씨가 승천하려는 이무기를 죽여 중요한 학교 행사에는 비가 내린다’ 같은 초등학교 전설은 공포보다 향수를 전달한다.


인터넷 문화에 편입

2000년대 괴담 열풍의 또 다른 특이사항은 소문에 의존해 유포되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다는 점이다. 복고 문화에 괴담이 본격 편입된 것도 인터넷이라는 매체적 특성과 연관이 깊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가장 전통적인 양식 중 하나인 괴담마저도 문화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괴담들은 각종 합성사진, 인터넷소설, 만화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빨간마스크’ 괴담은 ‘파란마스크’ ‘노란마스크’ 등의 ‘아류’가 만들어지면서 시리즈를 갖추게 됐다. ‘학교 전설 100가지를 알면 죽는다’는 초등학교 괴담을 원류로 100가지 괴담 채우기가 유행되기도 했다. 일종의 추억의 이벤트다.

다양한 외전 중에서는 네티즌 특유의 재기 넘치는 코믹 버전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김민지’ 괴담. 화폐에 숨겨진 신체 조각을 모아 그대로 합성해 만든 ‘김민지 실체’는 황당한 웃음을 유발한다.

과학의 시대에, 그것도 문명의 최첨단 매체인 인터넷이 괴담을 유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인하대학교 서영대 교수는 “산업화 정보화가 절정에 달함에 따라 인간의 소외와 고독도 극에 달했다.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개인 대 개인의 생존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사회적 배경이 심령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서 교수는 심령세계에 대한 관심은 시대를 초월하는 원초적인 호기심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공포 반영

괴담 열풍의 근본적 원인은 경기침체와 정치불안 등 암울한 사회 분위기다. 괴담은 ‘사회적 공포’를 내제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빨간마스크’ 이야기는 여자가 입이 찢어진 이유를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에게 찢겼다’ ‘교통사고를 당해 입이 찢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0년대는 ‘성형수술 실패’로 바뀌었다. ‘빨간마스크’가 “나 예뻐?”라고 묻는 것은 이 같은 이유를 뒷받침한다. 같은 이야기를 미세하게 손질한 두 가지 시대별 버전이 존재하는 것은 보다 밀접한 공포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는 교통사고나 부부싸움으로 인한 폭력이 공포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외모차별이 보다 직접적인 심리적 억압이다.

만연 2등이 죽인 1등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성적괴담이나 선생님의 매질로 죽는 학생 이야기 등 학교괴담에도 집단의 공포가 잘 드러난다. 한국의 대표적 요괴가 처녀귀신인 것도 남녀차별이 심한 사회적 현실을 대변한다. ‘캔디맨’ ‘여고괴담’ ‘링’ 등 괴담적 정서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는 괴담이 내포하는 공포의 실체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괴담이 유행하는 사회는 집단적 불안이 심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괴담 자료집 ‘한국의 도시괴담’과 ‘일본의 도시괴담’에서 김종대 씨는 학교 괴담을 예로 들어 폐쇄 사회에서 긴장감은 고스란히 괴담으로 반영된다고 분석한바 있다. 성적 압박과 갈등이 심한 한국과 일본의 학교가 괴담의 대표적인 유포지라는 사실은 괴담이 양산되는 사회적 배경을 짐작케 한다.


불황에서 피어나 억압받는 대중 위안

최근 유행하는 괴담의 원조들이 생성된 1980~90년대 ‘괴담 부흥기’도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을 시기다.

유괴사건 강간범죄 등이 빈번했고 조직폭력배 마약사범 인신매매범 등 강력 범죄가 잇달아 일어났다.

호러 영화도 시대적 암흑기에 절정에 달하는 경향이 있다. ‘오멘’ ‘엑소시스트’ 등 헐리우드 공포영화 전성시대인 1970년대는 베트남전 패배로 미국이 최대의 경제적 위기에 빠져있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 거품이 빠져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화된 시기에 호러영화가 붐을 이뤘다. 호러 장르를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한국에서도 1997년 IMF와 함께 공포영화 전성기가 돌아왔다. ‘여고괴담’ ‘텔미썸딩’ 등의 굵직한 공포물들이 이 시기에 발표됐다. 불황의 그늘이 짙은 올해도 호러물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조규철 교수는 “공포영화는 다른 영화장르와는 달리 관객에게 기쁨과 통쾌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 장르다. 사람들은 기쁠 때라던가 행복할 때,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뭔가 심적으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고 불만에 가득차 있을 때 공포영화를 볼 확률이 많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도 밝혀진 사실이다. 따라서 의도됐든, 의도되지 않았던 간에 공포영화는 항상 사회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나타나 더 어두운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기조차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고 설명했다. 경기악화로 경쟁은 극에 달했고, 갈등과 대립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기이한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을 만큼 현실은 절망적이다. 괴담보다 무서운 현실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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