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9.14 (일)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문화

나무에 혼을 담다

URL복사
얼마 전만해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 ‘뿌듯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도장이 필수목록에 포함됐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지. 서류상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분신으로 도장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를 지녔고 중요한 순간마다 제 역할을 당당히 수행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달하고 모든 게 자동화되면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도장장이도 사라지고 도장도 제 할 일을 다수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일까.

글자가 살아 움직여야 최고
한자리에서만 30년, 전부를 합치면 50년간 인장 새기는 일만 해온 이동일(65) 씨. 그는 오늘도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5층 한 구석자리에서 작업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1979년 인장공예 1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 인장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 2002년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인장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이 분야 최고 실력자다. 특히 그의 작품은 상업적인 실용성과 전각의 예술성이 결합된 예술인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최소의 공간에서 조형미를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여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죠. 아직 완전한 수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겸손해 하며 그는 “얼마나 깊이 새겼는가는 기술적 차원일 뿐 정성과 정신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아도 손님이 몰라주는 경우도 있다. 때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도 있다. “제작 전에 고객이 원하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탓”이라며 마음을 달래보지만 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드는 이와 받는 이의 마음이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죠. 만족스럽다는 편지를 받을 때 ‘이 일을 하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장은 예술품
모두가 가난에 힘겨워했던 시절, 이씨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인장을 배웠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그의 온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에 인장은 단순히 밥 먹고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자유당 말기라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었어요. 이를 고쳐 잡겠다는 의욕이 강했죠.”

학업과 생업의 두 길을 오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은 그를 짓눌렀고 1년만에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다. “삶의 목표가 살아졌을 때의 상실감을 아느냐”며 당시를 회상한 그는 “한참을 무기력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인생의 기회는 세 번 온다고 했던가. 그는 우연히 중국서점에 들렀다가 ‘전각입문’이라는 서적을 보게 됐고 삶의 전환을 맞았다.

“전각이 그렇게 예술적이고 역사가 깊은 줄 몰랐어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도요. 그때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과연 평생을 해도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인장은 그에게 삶으로 다가왔고 그는 고서를 뒤적이며 연구에 몰입했다. 국내 서적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책도 참고하면서 전각기법을 터득했고 이를 실용인장에 접목,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칼을 붓처럼, 정성은 기본
작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단단하고 결이 일정한 나무를 선택하고 인면(이름 새기는 부분)을 사포로 곱게 다듬은 후 빨간색 먹(주먹)을 칠한다.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쓰고 다시 주먹으로 수정한 후 칼로 새기면 된다. 나무에 작업하기 전 완성품을 찍었을 때와 똑같게 종이에 글씨를 쓰는(인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식인데 그래야 실패확률이 적다.

“하나 만드는 데 보통 하루가 걸리죠. 어떤 것은 이틀 넘게 소요되기도 하고요. 대충 만든다면야 몇분만에도 뚝딱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정말 ‘막도장’이죠.”

인면 작업보다 도장 옆면에 글을 새기는 ‘방각’이 훨씬 어렵다. 인면보다 결이 거칠고 일정치 않기 때문에 ‘고수’가 아니고서는 망치기 십상인 “칼을 붓처럼 부드럽게 다뤄야” 가능한 단계다.

수십년간을 해왔지만 때로는 제 맘대로 안될 때도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럴 때는 과감히 버린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속상해 일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이걸 놓으면 삶의 의미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파는’ 것이 아닌 ‘새기는’ 작업
그는 늘 공부한다. 선인들의 인보를 항시 들여다보며 서체를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꼼꼼히 살피면서 수정·보완할 점을 체크한다. “죽는 날까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점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근래들어 고민이 생겼다. 기계가 보편화되면서 도장장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이도 드물다.

“개인의 분신인데 당연히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것이 마땅한 거 아닌가요?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도장도 개성이 있어야 해요. 숨결도 담겨있어야 하고요.”

요즘 세태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손이 움직이는 한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과 약속을 하듯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도장을 ‘판다’는 표현대신 꼭 ‘새긴다’는 어휘를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판다’는 말에는 정신이 배제된 행위만 남아있어요. 하지만 도장 만드는 일은 창조자의 피와 땀, 그리고 혼을 담아내는 것이지요. 가슴으로 ‘새기는’ 신성한 작업이에요.”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히든기업연구소, ‘2025 추계세미나 및 기업 IR발표회’ 성료...회원사간 협업 강화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사)히든기업경영전략연구소(HEMSI)는 12일 오후 4시 과천 이트너스 사옥에서 22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들이 참석한 가운데 ‘2025 추계세미나 및 기업 IR발표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히든기업경영전략연구소가 중소기업 간 협업 및 비즈니스 성장을 도모하고자, 다양한 전문가와 기업 대표들 간 연대와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박성태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후에 경과 보고 후 자문 요청을 하는 회원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홍보▲경영▲세무▲노무▲특허 컨설팅 자문위원들을 소개했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환영사에서 “히든기업연구소는 무리한 투자나 경영 컨설팅을 제안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제안된 사업에 대한 연구소 차원의 면밀한 검증을 하고 있으며, 타당성 결여 등이 확인되면 컨설팅을 중단하며, 절대 무리한 컨설팅비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먼저 특강에서는 김현수 심시스글로벌 공동대표와 정종민 에이플러스에셋 전무가 자사의 주요 사업현황과 사업구조의 특장점, 콘텐츠 경쟁력 등을 소개했다. ‘스페이스 AI 와 스마트빌딩 구축 운영사례’라는 주제로 첫 번째 특강에 나선 김현수 대표는 "심시스글로벌은

정치

더보기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신길초 등굣길 '사이버 폭력 예방 캠페인'...동작구 지자체 최초 1~4교시 수업까지 예방 프로그램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푸른나무재단은 12일 오전 서울신길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예방과 안전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민관 협동 등굣길 캠페인’을 개최했다. 이번 캠페인은 학생들의 등굣길에 학교·지역사회·기업·기관이 함께 참여해, 아이들의 아침 등굣길에 안전한 분위기와 공동체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천형 활동이다. 특히 최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 이슈가 대두되는 가운데, 지역 단위 협력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장형 캠페인으로 기획됐다. 이번 행사에는 학생자치회와 교사를 비롯해 ‘동작구청(부구청장 권순기)·서울동작경찰서(서장 정석화)·서울특별시동작관악교육지원청(교육장 강순원)·삼성전기(그룹장 최우철)·서울신길초등학교(교장 최낙준)·푸른나무재단(사무총장 최선희)’이 함께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과 학교생활을 위해 ‘푸른코끼리 등굣길 캠페인’을 진행했다. 등교 시간대에 이뤄진 민관합동 캠페인에서는 신길초 학생자치회가 손수 만든 ‘학교폭력OUT’ 피켓과 주최 측에서 준비한 비폭력 메시지 스티커가 배포되었고, 학생·교사SPO·구청 직원이 함께 “도미솔”, “도와줘요 힘든 친구 보면! 미소로 함께 약속해요! 솔루션은 우리가 함께해

문화

더보기
학습의 본질 ‘공부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출간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좋은땅출판사가 ‘공부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펴냈다. 이 책은 공부를 단순한 암기나 시험 대비의 기술이 아닌, 모두의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의 세상을 확장하는 철학적 행위로 바라본다. 저자는 ‘배움 없는 익힘은 의미 없고, 익힘 없는 배움은 쓸모없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통해 학습의 본질을 탐구한다. 책은 시와 에세이 형식을 빌려 학습의 구조를 따뜻하고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공부의 개념’에서 시작해 ‘학습의 작동 원리’, ‘교과별 학습’, 그리고 ‘학습의 내면’까지 다룬다. 배움과 익힘, 이해와 적용, 기억과 망각, 사고와 표현 같은 개념을 사유하면서, 공부를 점수나 평가의 도구가 아닌 ‘삶을 변화시키는 지적 여정’으로 자리매김한다.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하고, 정책연구소와 국가연구기관에서 교육과 과학기술 정책을 연구했다. 동시에 에듀테크 기업 콘텐츠팀장,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학습 현장의 고민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했다. 그는 “공부 때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생성형 AI 활용…결국 사용자의 활용 능력과 방법에 달려 있다
지난 2022년 인공지능 전문 기업인 오픈AI에서 개발한 챗GPT를 비롯해 구글의 Gemini(제미나이), 중국의 AI기업에서 개발한 딥시크, 한국의 AI기업에서 개발한 뤼튼,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국계 미국기업이 개발한 젠스파크 등 생성형 AI 활용시대가 열리면서 연령층에 상관없이 생성형 AI 활용 열기가 뜨겁다. 몇 시간에서 며칠이 걸려야 할 수 있는 글쓰기, 자료정리, 자료검색, 보고서, 제안서 작성 등이 내용에 따라 10초~1시간이면 뚝딱이니 한번 사용해 본 사람들은 완전 AI 마니아가 되어 모든 것을 AI로 해결하려 한다, 이미 65세를 넘어 70세를 바라보는 필자는 아직도 대학에서 3학점 학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일 개강 첫날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글쓰기 과제물을 10회 정도 제출해야 하는데 생성형 AI를 활용해도 좋으나 그대로 퍼오는 것은 안 된다는 지침을 주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이 그대로 퍼오는지 여부를 체크 할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큰소리가 아니라 지난 학기에도 실제 그렇게 점검하고 체크해서 활용 정도에 따라 차등 평가를 실시했다. 이렇게 차등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필자가 생성형 AI 활용 경험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