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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무를 고르는 순간, 음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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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활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품에 꼭 끌어안고 살을 부딪치며 연주합니다. 때문에 기타리스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최고의 악기죠.”

손이 아닌 온몸으로, 아니 가슴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수제기타 제작자 엄태흥(63)씨는 “그렇게 해야 공허하지 않고 속이 차 있는 가장 좋은 소리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제작자와 악기 그리고 연주자와 청자가 혼연일치되고 공감대를 형성할 때 최상의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달에 한대, 100% 수작업
좋은 음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작자가 온 심혈을 기울여 악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가 제작의 단 한 과정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전부 수작업으로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톱질 한번, 망치질 한번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그만큼의 애정이 소리로 승화된다는 믿음이다.

“공장에서 기계로 만든 것과 제가 만든 것이 음색이나 음량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제 만족 때문에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다는 신념엔 변함 없습니다.”

기타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 선택으로, 특히 오랜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가 좋다. 겉만 보고도 속이 어떠할 지를 추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처음 배우고 나서 5년이 지난 후에야 실수 없이 원목을 사올 수 있었을 정도”로 터득하기 힘들다.

기타의 부위에 따라 나무의 종류도 달라진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앞판은 독일산 스프러스, 옆과 뒷면은 수입목 로즈우드와 하카란다, 손잡이 부분 즉 네크는 온두라스산 마호가니가 으뜸이다. 구입한 나무는 습기 때문에 갈라지고 뒤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10년 넘게 건조시킨다. 그가 현재 사용하는 나무는 1989년에 수입해온 것이다.

재료가 준비되면 대패질을 하고, 끌로 밀고, 깎고, 자르고, 다듬고, 칠을 한다. 모든 단계를 한번에 후다닥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표면에 세락으로 코팅하는 것만도 한두달이 소요된다. 밤톨만한 솜방망이로 세락을 묻혀 전면을 꼼꼼히 바르고 이것을 30∼40번 반복한다. “공장 제품은 우레탄 칠을 하는데 너무 두껍고 통을 꽉 죄어 소리가 편하게 울리는 것을 방해한다”며 그는 “열에 약하지만 세락으로 칠하는 것이 자연스런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작 시 잡념이 들면 작업을 중단한다. 조금이라도 허술한 부분이 있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신 집중이 잘 되는 날이면 밤을 새는 것은 예사다. 그렇게 온 정성을 기울이기에 그는 쉬는 날 없이 일하지만 겨우 석달에 한대정도만을 만들어 낸다.


부친 엄상옥, 한국 최초로 기타 제작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연주를 시작해 스무살이 되기 전, 방송에 수차례 초대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클래식 기타 연주자였다. 그가 기타에 재능이 있었던 것은 사실 늘 보고자란 것이 기타였고, 늘 만나는 사람들이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기타 제작자 고 엄상옥 씨 아닌가.

“집에 항상 기타리스트들이 들락달락 했죠. 그러니 자연스레 기타를 배웠고요. 군 입대 하루전날에도 송별회대신 ‘일요음악회’라는 프로에 출연했을 정도로 기타에 대한 애착이 많았어요.”

제대 후 그는 자신의 진로를 고민했고, 연주자로서 최고가 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제작자로서 최고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연주에 대한 아쉬움이 매우 컸지만 그 섭섭함을 학생들에게 레슨하는 것으로 달래면서 부친에게 일을 배웠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악기를 만드는 것은 외형보다 무형의 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 그는 ‘음악의 최고봉’ 독일로 날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가쯔오 사토라는 유명 제작자에게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고비가 찾아왔다.

“제가 만든 기타를 선보였더니 유명 연주자들이 호감을 표시하더라고요. 무척 뿌듯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말 한마디는 저에게 큰 좌절감을 안겼습니다. ‘사토 풍이군.’ 사토에게 배워서인지 제 기타는 그의 소리를 내고 있었죠.”


“아직은 80점”
좌절감을 느낀 그는 기타를 모두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원시 작업부터 차근차근 터득해 나간 그는 드디어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소리를 내는 기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다.

“30년 전에 만들었던 것과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요즘 만들고 있는 작품이 다르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소리도 깊어간다는 거예요. 최고는 아니지만요.”

그는 자신이 만든 기타에 80점을 줬다. 20점은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죽기 전에 100점짜리 기타를 만드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 전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동네로 이사왔다. 조용한 곳에서 일생 최대의 ‘대작’을 만들기 위해서다.

“돈을 벌 생각은 예전에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작품을 꼭 만들겠다는 욕심은 버릴 수가 없어요. 아직 나머지 20점의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매일이 너무 신나요.”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에 오히려 살맛 난다는 그는 “평생 그 해답을 못 찾을 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조금씩이나마 근접해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건강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심하려고요. 오래 살아야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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