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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진부하면 어때 재밌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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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면 어때 재밌으면 됐지



‘국희’에서 ‘대장금까지… ‘현대판 영웅 신화’ MBC 시대극의 흥행요인



보편적 잠재의식 자극, 대중 갈증 관습적 언어로 풀어내




MBC
드라마 ‘대장금’의 시청률이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이영애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전반적 평가는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매력이
시청자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35%를 웃도는 시청률이 말해주듯, ‘대장금’은 대단한 흡인력을 가진 드라마다. 잠시도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극적 내용. 거기다 궁중음식과 의상 등 볼거리도 풍부하고 베테랑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한 양념이다.

그런데 고난과 성공을 반복하는 ‘대장금’의 서사구조를 보면 이미 종영한 역사극 ‘허준’과 ‘상도’가 떠오른다. 그도 당연한 것이, 모두
사극 전문 이병훈 PD의 작품이다. 같은 연출가의 비슷한 작품이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 이들 드라마는 연출 스타일 이상의 동일한
패턴이 눈에 띈다. 이 패턴이 대중의 욕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흥행 원칙을 구축해 놓고 거기에 드라마를 대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이병훈표’ 드라마는 이미 MBC 사극의 한 전형으로 굳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층을 초월한 흥행
공식을 만들고 있다.


성공담은 먹힌다

‘허준’ ‘상도’ ‘대장금’으로 이어지는 MBC 시대극의 흐름은 1999년에 방영된 김상열 연출의 ‘국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희’의
대성공은 당시 방송가에 일정한 흥행 원칙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성공담은 먹힌다’ ‘선악이 분명해야 한다’ 같은 속설이 그것이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이 두 글자야 하고, 이름이 곧 제목이야 한다는 징크스까지 떠돌았다. 실제로 ‘국희’ 종영 직후 방영된 ‘허준’에서 이 원칙들은
고스란히 답습됐고, ‘상도’와 ‘대장금’으로 이어지면서 그 구조는 보다 확연하게 드러났다.

‘국희’ 이후 MBC 시대극은 성공담을 고집하고 있다. 미천한(혹은 가난한) 인물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해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자아실현
스토리는 성공 욕구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무척 자극적인 소재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MBC ‘성공시대’에 대해 한 문화평론가는
“결코 유럽에서는 호감을 살 수 없는, 가장 한국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성공’은 보편적 관심사다. 특히,
하층민의 출세가 구조적으로 힘든 현실에서 밑바닥에서부터 고난을 극복해 자수성가하는 주인공에서 대중은 희망을 찾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드라마가 ‘고난→극복→보상’이라는 전형적 영웅 신화의 구조를 지닌다는 점이다. 국희가 독립운동가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친구 주태에게 부당하게 구박덩어리로 자란다는 것이나, 의금부 군관인 아버지와 나인 신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금이 출신을
숨기며 난관을 극복한다는 설정은 ‘고귀한 혈통’이라는 영웅적 서사 구조의 원칙이 연상된다.

‘귀인의 도움을 받아 고난을 극복한다’는 유형 또한 드라마에서 그대로 형상화된다. ‘국희’의 장칠삼, ‘허준’의 유의태, ‘상도’의 홍득주,
‘대장금’의 한상궁이 주인공을 성공으로 이끄는 ‘결정적 스승’으로 등장했다. ‘올리버 트위스트’ ‘소공녀’ 등 동화에 뒤바뀐 운명과 그로
인한 역경을 딛고 기업가로 성장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 ‘국희’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 같은 신화적 설정은 대중에게 익숙할
뿐만 아니라,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원초적 감정선을 자극하는 유용한 형식이다.


선과
악의 팽팽한 대결 구도


영웅 신화 서사 구조 못지 않게 대중적인 서사 플롯은 선악의 대결이다. 선악의 대결 구도는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
특히, ‘허준’의 선악 구도는 고전적 개념에서 보다 발전적 형태로 ‘허준 신드롬‘의 한 요인이 됐다. 허준과 경쟁하는 유도지는 처세에 밝은
엘리트로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물상이다. 이에 반해 허준은 휴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의술을 시행하는 범인적 면모를
보였다. 둘의 갈등은 출세를 지향하면서도 마음의 좌표는 인간적인 자아 실현에 두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적 양면성을 대변한다.

‘상도’에서 이 같은 인물 구도는 임상옥과 정치수, 혹은 임상옥과 송상 대방 박주명의 갈등으로 고스란히 재현됐다. 독특하게도 ‘대장금’에서
장금과 경쟁관계인 금영에게서는 성공을 위해 교묘한 술수를 부리거나 도덕성을 상실한 반주인공의 양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두 인물은 ‘선의의
경쟁 상대’라는 보다 사실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같이 MBC의 ‘현대판 영웅 설화’는 고전적 서사 구조와 갈등 구조 속에 성공에 대한 보편적 욕구를 자극하며 현대인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물론 이 같은 서사구조가 드라마를 지나치게 단순화 도식화시킨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은 진부함을 명쾌함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탄탄한 조연급 연기자들의 대거 등장, 사극으로서 보기 힘든 빠른 템포, 미묘한 애정 구도 등 연출력의 능란함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점 또한 플러스 요인이 됐다. 더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직업의 세계를 조명한 것도 인기 요인이다. ‘허준’이
가장 대표적인데, ‘허준’의 방영 시기만큼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국민적으로 고조된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현재 방영중인 ‘대장금’이
궁녀와 의녀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춘 점 또한 시청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시대가
원하는 인간적 영웅


MBC 드라마의 이처럼 획일적이면서도 정교한 흥행 요인들은 대체로 대중의 구미에 적중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가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보다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시대의 정서를 읽어내는 눈이다. ‘허준’이 방영 될 당시 절묘하게도 의약분업에 따른 의료 대란이
전국을 강타했다. 생명을 담보로 폐업하는 의사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던 서민들은 ‘허준’을 통해 새로운 영웅상을 만났다. 국민적 심리 공백을
한 편의 드라마가 메워준 것이다.

‘상도’에서 이병훈 감독은 보다 구체적으로 시대의 요구를 반영했다. 이병훈 PD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IMF 사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기업인들의 윤리의식과 상도덕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경제인들에게 바람직한 기업인의 표상을 제시하고 싶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결과적으로
‘상도’는 기업 윤리를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드라마를 교재로 경제관에 대한 각종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국희’에서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성공담의 주인공들은 현대적 영웅이라 할만하다. 고전적 영웅과 달리 이들은 타고난 기질이 비범하기 보다
성실함과 고운 심성으로 묵묵히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보다 친근한 영웅이다.

욕구의 실현이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 현실의 질서가 부조리하고 희망이 희박할 때 흔히 영웅을 갈망하게 된다. 경제적 불안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반인륜적 범죄가 넘쳐나는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정신적으로 지쳐있다. 난관은 극복되고 모든 오해는 풀리며 주인공은
충분히 보상받을 것이라는, 그 뻔한 결말을 잘 아는데도 주인공의 고난에 가슴을 졸이고 성공에 통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근원적 이유는 영웅에
대한 잠재적 동경 때문이다. ‘한낱 장사치가 아니라 장인정신을 가슴 한복판에 간직한 정직한 기업인이 돼야’(국희) ‘진실로 병자를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심의가 되는 것’(허준) ‘장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상도) 등의 가치가 통하는, 그 휴머니즘적 세계에
대한 향수인 것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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