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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괘씸하게 나를 고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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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하게 나를 고소해?



성폭력 가해자, 피해자와 도우미 단체에 대한 역고소 빈번






#1-1. 2001년 3월13일 대구고등법원 - 2000년 5월12일,
경일대 K 교수가 조교를 경주로 유인해 억지로 고량주를 마시도록 하여 정신을 잃게 하고, 인사불성의 피해자를 호텔 객실로 데려가 강간한
점이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함.

# 1-2. 2000년 9월27일 대구지방검찰 - 2000년 7월, 경북대 L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자를 강제로 껴안고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성추행한 점이 인정돼 구속기소함.

# 2. 2003년 4월11일 대구지방법원 - K, L 교수가 강간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실명을 거론한 점, 상습범일 가능성을 제기한 점
등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므로 ‘대구여성의 전화’ 공동대표 2명(김혜순, 이두옥)에게 벌금 100만원 형을 선고함.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의지하고 편이 되어줄 곳이 없겠다.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이
빈발하고, 또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에 관련 여성단체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성폭력은
인정, 그러나 억울하다?


대구에서 두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1년여가 지난 2001년 9월, 가해자인 K 교수와 L 교수는 이틀 간격으로 대구지방법원에 대구여성의
전화 공동대표 2명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이 당시 K 교수는 대구고등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은 후였고, L 교수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한 상태였다.

대구여성의 전화는 각 사건 직후 피해자들을 면담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 ‘경북대 L교수에 의한 제자 성추행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특히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수사기관과 담당 재판부에 제출하는 한편, 각 사건 내용을 대구여성의
전화 홈페이지와 소식지에 게재하고 그 소식지를 회원 및 시민단체에 배포했다.

K와 L 교수 측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배경은 이렇다. 피고인 대구여성의전화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L 교수가 학과 제자를 성추행하고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취지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L 교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

K 교수와 관련해서는 ‘K 교수가 피해자를 강간하기 위해 마취제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게재해 허위의 사실을 유포했다는
것.

특히 이들 교수들의 실명을 거론함으로써 명예에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있어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피해자 도운 여성단체에 유죄 판결

5차에 걸친 공판 끝에 대구지방법원은 2002년 10월17일 피고인들에게 각 벌금 200만원 형을 선고했다.

이에 대구여성의 전화 공동대표 2명이 항소, 2003년 4월11일 다시 재판이 열렸으나 벌금이 2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적어졌을 뿐
재판부는 여전히 피고의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L 교수와 관련, △특별한 조사 없이 추행을 당한 사람의 일방적인 진술만을 기초로 L 교수가 기소되기도 전에 혐의 사실을 인터넷과
소식지 등에 게재한 점 △당시 L 교수가 혐의를 부인했음에도 범행이 확정된 듯 단정적 표현을 사용한 점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등 개별 법률에서 정한 적법절차를 거쳐야 되는데 실명을 거론했다는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K 교수 건에 대해서는 △강간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K 교수가 술에 취한 피해자를 강간했음에도, 술에 마취약을 타 실신시킨 다음 강간했다고
게재한 점 △K 교수가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게재한 점 등에 비춰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


지난 8월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대구 명예훼손재판 분석 토론회’가 열려 역고소 사건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대구여성의 전화 변호인으로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춘희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자가 입게 되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강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다른 일반 범죄와 달리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범죄사실이 묻혀 버릴 수밖에 없다. 설령 밝힌다
하더라도 증거수집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가해자는 범행을 부인하기 일쑤다. 피해자는 사실상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범행사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거듭 사건을 상기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당한다.

이러한 실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혼자 피해 사실을 밝히고 법적 절차에 대응해 나가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변호사는 따라서 “피해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도와줄 사회단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러한 사회단체가 나서서 사회적으로 환기를 시키고,
보다 적극적인 수사를 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름

이춘희 변호사는 법원의 명예훼손 판결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실명거론을 한 점이 문제였다는 재판부의 지적은 청소년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제도를 인정하는 법 취지에 비춰 볼 때 잘못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생이거나 혹은 조교일지라도 아직 경제력을 가진 완전한 성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와 소식지에 게재하기 전, 가해자들의 실명은 이미 교내 대자보와 지역 일간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이
변호사는 신분과 실명을 밝혔다고 해도 가해자들의 명예가 침해될 것이 없었고, 침해 여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경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술에 마취약을 넣어 성폭행 했을 가능성과 이러한 사실로 미뤄 상습범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허위의 사실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재판부의 지적도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사건 직후 피해자의 경찰 진술서를 보면 “당시에 피고소인이 저에게 마시게 한 고량주에 어떠한 약성분을 넣어 정신을 잃게 한 다음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판단되어 고소를 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피해자는 평소 술이 강했지만 이 날은 고량주를 단 두세 잔 마시고 7시간이나 정신을 잃었다. 이 변호사는 대구여성의 전화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피해자가 독주에 정신을 잃었든 마취약에 정신을 잃었든 K 교수가 정신을 잃도록 만들었고, 그 실신한 상태를 이용해 강간을 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재판부가 마취약을 넣었느냐 아니냐, 따라서 상습범이냐 아니냐에 너무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취약을 넣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상습범이라는 말이 거짓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상습범이 아닐 가능성도 증명할 수가 없다. 마취약이든 술이든 먹여서 정신을
잃게 했고, 미리 호텔 방까지 예약을 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주된 사항이 진실이면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명예훼손 재판(대법원 1998. 10. 9.
선고 97도158판결)과 관련, 판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역고소인에게 손배 청구해야”

가톨릭대학교 법학과 박선영 교수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대구여성의 전화가 오히려 고소인인 K와 L 교수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고소가 부당한 고소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공론화 시킨 피해자와 관련자,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가해자가 명예훼손이라는 무기로 법적 대응을 시도하거나
가해자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 있었던 제주도지사의 성추행 사건, 방송사 노조간부의 성폭력 사건, 부녀회장에 대한 이장의 성추행 사건, 동료 대학생 성폭력 사건
등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최근의 풍조는 법의 이름으로 피해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자 하는
악의적인 일로서 마땅히 억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경 역고소 공대위 공동위원장(한국성폭력상담소장)도 악의적인 괴롭힘이라는 데 공감했다. 이 공동위원장은 “실제 상담현장에 있다 보면 가해자가
역고소를 통해 피해자에게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협박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역고소가 고소를 꺼리거나 도중에 고소를 취하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신혜수 역고소 공대위 공동위원장(여성학회 여성연대 위원장)은 “서울대 우조교 사건 당시, 동료 남자 교수들이 가해자 구명운동을 벌였다”면서
“결국 성폭력 피해자의 구제는 여성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신 공동위원장은 따라서 “명예훼손 역고소에 굴하지 말고 기소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 성폭력 가해 교수 명예훼손 사건은 피고소인인 대구여성의 전화 전 공동대표 2명이 판결에 불복,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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