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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이강소 화백, '色의 매혹'에 빠진 '몽유'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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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와 4번째 개인전, 8월1일까지
1999~2021년 대표적 회화 30여점 출품
"色이 나를 택하도록 충분히 색채 사용할 터"

 

 

여든을 바라보는 원로 작가의 변신은 신선했다. 수묵화 같은 무채색의 단색화들 사이에 매혹적인 주홍, 노랑의 色 있는 그림들이 새롭게 얼굴을 내밀었다. 

 

16일 갤러리현대에서 3년만의 개인전 ‘몽유’(夢遊)를 개막한 이강소 화백은 밝은 미소를 띠었다.  이번 전시에 첫선을 보인 화려한 칼라 회화 만큼 화사한 얼굴이었다. 이 전시에는 이 화백이 1999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회화 중 선별한 대표적인 회화 30여점이 걸렸다. 이 전시는 이강소 회화의 변화상과 정수를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또 앞으로 작품 세계의 변화의 조짐도 점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강렬한 색채의 유혹에 이끌렸죠. 20년 전 사둔 물감을 우연히 찾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매력으로 이끄는 색들을 만난 겁니다.”

오랜 세월 흰색과 회색, 검정 등 단색만 마주하며 살아온 올해 일흔여덟의 작가는 色의 유혹을 고백했다. 그가 흑백의 단색화를 고수해온 것은 동양화 전통인 기운생동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기(氣) 에너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필휘지의 붓질로 만물의 기운을 화폭에 품기 원했다. 자연스럽게 색을 자제하고 형체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제는 내가 색을 고르는 게 아니라, 색이 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색채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

 

그는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 대신 “유혹에 이끌렸고 그림이 그려졌다”고 말했다. 강한 본능적 이끌림으로 만난 매력적인 대상에 대한 표현처럼. 

 

화가에게 캔버스 위 붓과 물감으로 그리는 행위는 그 어떤 것 보다 친밀하고 내밀한 것일 수밖에 없다. 평소 색채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는 그는, "공작새의 깃털 색과 문양처럼 사람도 색채를 통해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색채 사용에 대한 실험과 가능성을 열어둘 생각"이라 밝혔다.  

 

"현실은 곧 꿈 같은 세계"

 

전시제목 '몽유'(夢遊)에 대해서는 "조선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꿈속에서 노닐다’는 뜻을 담았다"면서 동양철학적 세계관을 피력했다.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이 세계가 실은 꿈과 같아요. 각자 경험에 따라 현실은 달리 보이기 마련이고, 그림도 마찬가지지요.  그림을 어떤 의도를 갖고 그리는게 아니라 써지는 대로, 그려지는 대로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따릅니다." 

이 화백은 "나는 멍석만 깔 뿐, 관객이 자유롭게 느끼길 원한다"며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 역시 자연스러운 삶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표현하고자 했다.

 

1층에 들어서면 화려한 컬러 회화와 함께 어린 시절 집에서 보았던 흑백 사진의 양자강을 직접 여행한 후 느꼈던 기쁨과 감동에 양자강의 거친 물살을 일필휘지로 그린듯한 수묵화 같은 역동적인 대작 ‘강에서’ 연작(2m59x1m94)과 과감한 여백이 아름다운 강력하고 함축적인 ‘청명’ 연작에 마음을 빼앗긴다.

 

마치 대걸레처럼 길고 큰 붓으로 극도의 몰입감 속에 한 호흡과 리듬으로 속도감있게 진행됨직한 ‘강에서’와 ‘청명’ 연작은 이강소의 작품 세계를 단숨에 드러낸다. 작품들은 동양회화의 여백의 미와 작품 당시의 작가의 호흡과 리듬까지 눈에 보이는 듯 강렬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작가는 “내가 밝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붓질을 했을 때, 그것을 보는 관객도 ‘청명’한 기운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소 화백은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기(氣)’가 존재한다고 믿고, 항상 ‘기’를 캔버스에 형상으로 남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수도자의 부단한 수행처럼 그는 끊임없이 만물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또 ‘인간이 보고 경험하는 세계가 실재인가’ 묻는 철학적 화두를 시각화하기 위해 때론 잔잔하게 때론 격렬하게 표현해왔다.

 

한학과 서예에 정통한 가문의 영향이 작품의 자양분

 

이 화백은 한학자이자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작품이 서양화이면서도  동양적 정서를 담은 것은 어려서부터 서예에 익숙했던 가문의 분위기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이런 까닭에 그의 작품 속 획은 훨씬 자유롭고 추상표현주의 제스처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작가 스스로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이곳과 저곳, 있음과 없음, 나와 너 등 모든 시공간의 찰나를 마치 신선처럼 ‘왔다 갔다’ 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붓질로 그림을 그려왔다"고 말한다.

 

이강소 화백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작품에 표현하고, 그 표현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하는 작가이다. 자연스러운 삶의 본질을 그는 표현하려고 한다.

 

어느듯 그의 나이가 팔순이 가까웠지만 예술을 향한 의욕은 충만하다. 불과 3년 전 그는 갤러리현대에서 선술집을 차린 체험전시 '소멸'전으로 1973년 명동화랑의 첫개인전에서 시도했던 선술집 퍼포먼스를 45년만에 재현해 과거 실패했던 관객과의 소통을 재시도했다. 또 1971년 ‘AG’전(展)에서 선보인 시멘트에 심은 갈대 전시, 1975년 제9회 파리 비엔날레 개막전에 사흘간 닭을 풀어 회가루 묻은 닭 발자국을 작품화하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도 소환했다. 

 

'오리 작가' 이강소가 탄생하기까지

 

젊은 시절 이 화백은 전통 회화보다 실험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전위예술가가 설 자리는 없었다. 설치작업을 비롯, 회화, 조각, 판화, 전위예술을 넘나드는 다양한 실험은 그러나 좀처럼 작품의 일관성을 추적하기 어려운 화가로 비쳐지게 했던 것 같다.

 

그가 뚜렷한 방향을 잡은 것은 40대에 접어든 1985년경부터이다. 이때부터 그는 오리, 사슴, 보트가 등장하는 추상적 풍경화를 집요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리 그림이 탄생한다. 1985년은 뉴욕주립대 객원 교수겸 객원 미술가로 미국에 머물던 시기이다. 

 “이미지를 더 자유롭게 그리려고 추운 겨울날 자주 가던 동물원에 갔는데 얼음 웅덩이에서 노는 오리의 모습에 감동받아 그 형상을 그리게 됐어요. 하지만 내가 그린 오리는 동물원의 오리와 많이 달랐어요. 오리인 척 하는 이미지를 차용한 건데 보는 사람에 따라 오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 찰나의 간극에서 재미를 느꼈죠.”

 

이 화백의 회화 작업은 1991-92년에 P.S.1 프로젝트로 뉴욕에 일 년 머무르면서 한층 무르익었다. 한동안 서울과 뉴욕의 스튜디오를 오가며 작업하던 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전시에 출품되었다. '92년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와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한국의 현대미술전>에서 그의 작품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93년에는 뉴저지의 버갠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그가 오랜 시간 시도해온 작업들은  '전통과 현대성의 만남'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미술'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법이 될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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