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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무대 밖 ‘바보’로 살아가는 행복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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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무대 밖 ‘바보’로 살아가는 행복 메신저



웃음 전파하며 신바람 나는 세상 꿈꾸는 개그맨 이정표





국 코메디사를 보면 ‘비실이’ 배삼룡에서 ‘영구’ 심형래, ‘맹구’
이창훈, ‘맹구’ 재탕 심현섭에 이르기까지 바보개그의 계보가 눈에 띈다. 바보개그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그 인물이 전혀 긴장감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보는 이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여유를 갖게 하는 휴식처이자 위로인 것이다.


그런데 이 바보계보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지도, 또한 이렇다할 유행어도 없지만, 오늘도 바보 흉내를 내며 정말로 ‘바보’같이 사는 무명개그맨이
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자신이 더 한 바보가 돼도 좋다는 개그맨 이정표(47) 씨다.


엔돌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찬찬히 보니 매우 낯익다. ‘개그콘서트’가 장악하기 전 KBS 코미디프로에서 주목받는 배역은 아니었지만 안방극장에 얼굴을 내밀던 모습이
이내 떠올랐다. 최근에 어린이 프로 ‘갈갈이의 신나는 과학나라’에서 ‘초롱이의 어린이 과학극장’ 코너에서도 본 기억이 났다.

“요즘에는 개인기위주의 개그가 인정받는 시대라 저 같은 중장년층 개그맨은 발붙일 데가 없어요. 그나마 작은 코너라도 맡은 게 운이 좋은
거죠. 일회성이 아닌 삶의 애환을 씻어줄 걸죽한 웃음을 선사하고 싶어요. 그래서 양로원이나 노인회관 등 나이 드신 분들을 자주 찾아뵙죠.
힘들던 시절 배삼룡 선생님의 개그를 보면서 웃었듯 저의 개그를 보면서 웃으시는 부모님들을 뵈면 보람이 매우 커요.”

이씨는 특히 무의탁노인을 위한 공연을 많이 해왔다. 지금까지 해온 공연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날 때마다 노인들을 찾아다닌다. 그들뿐
아니라 고아, 장애인, 제소자 등 ‘엔돌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엔돌핀이 암세포를 죽일 수도 있대요. 그만큼 웃음은 엄청난 힘을 지닌 마법이죠. 제가 누군가에게 이 위대한 힘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소외된 자들과 아픔 나누기

지금이야 누구보다 무대경험이 많은 베테랑 개그맨이지만 무료공연을 시작하던 초창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공연할 때였어요. 저의 특기인 바보연기를 선보이려고 하는 순간 아차 싶었죠. 자칫하면 그들을 우롱하는 것으로 오해하겠더라고요.
지금이야 노하우가 쌓여 당황하지 않고 재담으로 충분히 웃길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소자를 대상으로 개그를 선보일 때도 주의해야 했다. 오죽 가슴이 답답할 그들 앞에서 바보흉내를 내봤자 웃음은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악극이다.

“때로는 웃음보다 눈물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죠. 제소자들에게는 더욱 그렇고요. 주로 ‘불효자는 웁니다’를 무대에 올리는데 공연 막바지에
이르면 그들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웃음으로 떨어버릴 수 있는 아픔과 눈물로 씻어낼 수 있는 아픔이 있는데 그들은 눈물로 씻어내는
거죠. 울고 나면 그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저도 그들과 같이 울고 같이 웃습니다.”


연예인 실버타운 설립할 터

이씨가 연예계에 발을 디딘 지 올해로 벌써 30년이다. 개그맨이 되기로 일찌감치 뜻을 품었던 그는 당시 연예인 단골이 많았던 충무로 스카라
극장 뒤 스타다방과 은다방 근처에 구둣방을 차렸다. 그리고 연예인들 구두를 공짜로 닦아주며 얼굴을 알렸다.

“그때 영화배우 박노식, 독고 성 선배님 등 내로라 하는 분들은 다 만났죠. 그러다 저의 존재가 조금씩 인식되기 시작했고, 1974년 드디어
배삼룡 선생님과 아세아극장에서 함께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어요.”

외모나 개그방식이 배삼룡과 흡사해 이씨는 ‘제2의 배삼룡’ ‘배삼룡 아들’ 등의 닉네임을 얻었다. 때문에 자신을 쉽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었지만 대신에 늘 배삼룡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배삼룡을 원망한 적 없다.

“저에겐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많은 가르침과 애정을 주셨죠. 배삼룡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배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건이 되는
대로 꼭 원로 연예인이 쉴 수 있는 복지관을 설립해 보답하고 싶어요.”

연예인 실버타운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아직은 여건이 안되지만 언젠가는 기필코 이룰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그것과 함께 조금은
원대한 희망도 내비쳤다.

“착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깨끗한 세상, 신바람 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서로 정을 나누는 따뜻한
세상 말입니다.”


부정비리척결
내 손으로!


이씨의 또 다른 명함은 ‘부정비리추방시민연대 문화관광 위원장 겸 강동지부장’이다. 행정자치부 제76호로 등록돼 있는 기구의 소위 간부다.
부정비리 신고가 들어오면 진실여부를 조사하는데 그의 손에 넘어온 것은 조금의 에누리도 없이 철저히 수사한다. 깨끗한 세상 만들기의 한 걸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네 번을 사기 당했습니다. 힘들게 모은 돈을 그때마다 전부 날려버렸죠. 세상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직업이 직업인만큼 인상을 쓰고 있을 수 없었죠. 누군가를 웃겨야 하니까요.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나처럼 피해 입는 사람들을 도와주자고요.”

‘바보’처럼 자기 몫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이씨는 한마디로 남 걱정만 한다. 이웃에게 퍼주는 일만 하다보니 그토록 내고싶었던 음반도 4년만인
이제야 낼 정도로 자기 것을 못 가져가는 ‘바보’다.

“음반판매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요즘처럼 살기 어려울 때 힘이 나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사랑타령이나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모두 힘을 모아 함께 일어서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거에요. 단 한 사람이라도 제 노래를 듣고 신바람이 난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자의 손에 음반을 쥐어줬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음악을 틀었다. 이어폰에서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어디 따로 있나. 너도나도 손을 잡고 사랑노래 부르자. 좋은 세상 만들자. 우리 모두 한마음 내일 향해 달리자.
꿈을 향해 달리자. 신바람이 불어오네 신바람이 불어오네. 우리네 인생살이 신바람이 분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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