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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인을 찾아서(25) -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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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은 인생



삶의 뒤안길에 선 김의석 옹의 60년 자전거 이야기



산구
원효로1가. 도심이지만 시골 읍내 같은 정겨움과 푸근함이 스물대는 곳. 그리고 오래된 추억하나가 물끄러미 고개를 내미는 낡은 자전거 가게.
세월을 알 수 없는 묵은 먼지와 손때들이 문짝이며 기둥이며 구석구석 온 곳에 깊이 파고들어 진토색 빛을 발하고 있는 이 작은 공간에 희끗한
노인 한 분이 자전거 바퀴를 돌리고 있다. 버젓한 간판 하나 없는 오래된 자전거 수리점과 그만큼의 일생을 함께 해 온 김의석(76) 옹.
작은 점방 안에는 그의 60년 자전거 이야기가 가득 차있다.


강남에서도 찾아오는 단골

몇 년 전만 해도 용산구에 자전거 수리점은 98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김의석 옹의 가게를 합쳐 고작 4군데가 전부다. 그만큼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고장난 곳 고쳐가며 살아야지 조금 이상하다고 내다 버리고 하는 것은 순전히 낭비야. 그리고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데. 건강에도 좋지, 연료비
안 들지. 그런데 허구헌날 자가용만 사러하니 요즘 사람들 한심해.”

장사가 안 돼서 하는 개인적 푸념이 아니라 나이 든 노인으로서 시세 걱정을 털어놓은 그는 “예전엔 내 손이 늘 까맸는데 요즘엔 이렇게 하얘”라며
아쉬움도 토로했다. 하지만 그의 가게는 늘 간간이 끊이지 않고 일거리가 들어온다. 원효로에 자리잡은 것만도 40여년이 훌쩍 넘어 단골 손님들이
대를 이어 찾아오기 때문이다.

“강남이나 영등포로 이사 갔는데도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어. 내가 자리를 비웠으면 손볼 곳을 메모지에 적어놓고 가지. 꼬마였던
손님이 이제는 장년이 됐어. 굳이 자전거를 고치러 오는 게 아니라 정 때문에 오는 것 같아. 나도 그들을 만나면 기쁘고 행복해. 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손님과의 대화가 노년의 즐거움

대화중에 어린이가 자전거를 수리하러 왔다. 그는 어린이에게도 먼지 쌓인 의자를 닦아주며 ‘손님’ 대접을 해줬다. 그리고는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행여나 자전거가 젖을까 우산을 받쳤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김의석 옹은 어린 손님에게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듯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린아이가 가고난 후 그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노년의 즐거움”이라며 “찾아와 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시간을 불문하고 언제든 손님이 오면 성의를 다한다.

“새벽4시에 신문이나 우유배달부가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 밤 10시 넘어서 오는 손님도 있고. 가정집하고 붙어 있으니 따로 가게문 여는
시간이 없어. 손님이 필요로 할 때가 문여는 시간이지.”

하루 평균 손님수는 15명 정도. 하지만 무료로 수리해주는 것을 빼고나면 정작 수입은 용돈벌이밖에 안 된다.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내가 이래뵈도 청와대에 들어갔던 몸이야. 박 대통령 때 전직 용산경찰서장의 소개로 청와대에 들어갔지. 그곳에 60대 자전거가 있었는데
나보고 감정 좀 해달라는 거야. 3분의2는 못 쓰겠더라고. 일을 다 끝내고 나오면서 그것 참 뿌듯하데. 내 능력이 인정받았다는 거잖아.
허허.”

약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때를 회상하던 그는 “이 일도 참 오래했지”하며 처음 배웠을 때를 추억했다.


인민군
징집도 피해간 수리공


김의석 옹이 처음 자전거 수리를 시작한 것은 16세 때. 평안북도 압록강 근처가 고향인 그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일을 배웠다.

“한국인이라 못 하면 더 혼나고 구박 당했어. ‘빠가야로’ ‘조센징’이라는 욕은 예사였고 손에 잡히는 대로 맞기도 했지. 억울하기도 하고
슬펐지만 그렇게 배운 일이 내 목숨을 여러 번 구했어.”

해방이 되고 일본인이 운영하던 자전거 가게를 인수해 그는 고향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23세가 되던 해 6·25가 발발했고 친척들이며
친구들은 모두 인민군으로 징집됐다. 그도 3번이나 징집소장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인민군 서장이 빼내주었다. 이유는 인민군의 자전거를 고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전거 수리공들이 모두 끌려가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연명하며 몇 개월을 보내다 1950년
11월, 그는 남한으로 피난 왔다.

“꼬박 한달이 걸려 남한에 도착했지. 처음 도착한 곳이 이곳 원효로였어. 목조건물 계단 밑에 지푸라기를 깔고 살았는데 너무 배가 고파 해병대에
자원했지. 그리고 6년간 군에 있었어.”


자전거 수리는 정을 베푸는 일

제대 후 김의석 옹은 자전거 가게를 차릴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겟일이며 공장일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지겟일 하는 거 무척 힘들었어. 어느 날은 한 할머니가 서울역에서 남대문까지 가달라고 했는데 그만 잘 못 듣고 동대문까지 갔지 뭐야.
다시 남대문까지 모셔다 줬더니 날이 저물었더라고. 내가 실수해서 그런 건데도 그 할머니가 돈을 더 주더군. 그리고는 시레기국에 팥밥도 말아주는데
눈물이 났어. 참 고마운 분이었지.”

그때의 경험으로 인정이 무언지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가 손님을 만나고 자전거 수리를 하는 모습에는 ‘정’이 밑받침돼 있다. 그리고 그 정은
베품으로 승화됐고, 몇 년 전에는 아주 중대한 결심을 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전쟁터에서 매일 선혈이 낭자한 시체들을 보면서 죽으면 아무 소용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 그리고 그럴 바에야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어. 그래서 내가 죽으면 시신을 연대 의학과에 기증하기로 서약했지. 자식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허락하더라고….”

소나기가 어느 새 그치고 맑은 햇살이 비쳤다. 중년의 남성이 자전거 잠금장치를 달기 위해 찾아왔다. 전쟁 때 다친 다리를 약간 절면서 김의석
옹은 급히 나가본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 때문에 앉아서 일해야 하지만 그래도 일할 때만큼은 젊음이 넘실댄다. “다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손님이 갈 때까지 지켜보는 그의 등뒤로 자전거처럼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은 인생바퀴가 굴러갔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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