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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⑨ -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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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안산(鞍山) 자락길이다.

산의 정상이 말안장 같이 생겼다 해서 안산이라 한다. 한때는 무악으로도 불리며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계획할 때 풍수지리에 능한 하륜의 주장을 받아들여 안산을 주산으로 삼는 신촌 일대를 검토했으나, 정도전과 서운관원들의 반대로 백악산을 주산으로 삼는 한양 천도가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에는 연희궁을 지어 경복궁의 이궁으로 태종과 세종이 사용했으나, 안산에는 독충과 독사가 많다는 신하들의 염려로 이궁(離宮)에 자주 갈 수 없었다 한다. 지금은 지자체의 노력으로 도심 속 공원으로 서울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약속 장소인 독립문역 앞에 모여 인사를 나눈 후,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느끼며 언제나처럼 한성과학고 옆길을 통해 안산 자락길의 데크 길로 오른다.

데크 길로 올라서니 벌써 눈 아래 서대문 역사박물관이 보이고 독립문 공원의 가을 전경이 활짝 펼쳐진다. 옛 서대문 형무소 자리의 역사박물관의 아픈 역사를 애써 떨쳐내며 가을 숲속의 편한 데크 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눈앞의 인왕산도 가을빛이 깊다.

 

인왕산을 바라보다 좀 더 먼 북한산 문수봉과 보현봉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조금 늦는다던 친구와 합류, 잠시 쉬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반가운 것은 오랜 세월 쌓아온 인연보다도 함께 매주 보는 친숙함 때문이기도 하리라.

 

잡목림의 붉고 노란 낙엽들을 지나 솔숲으로 들어오니 빛이 차단되고 솔향도 은은히 떠도는 듯 또 다른 매력이 다가선다. 그 매력에 이끌려 사진 한 컷을 찍고 메타세콰이어 숲으로 이어진다. 메타세콰이어 숲은 안산 자락길이 자랑하는 명소로 우리 산천의 나무들보다 월등 큰 키로 다른 나무들을 압도한다.

 

숲에는 또한 비대면 윤동주 문화제가 열리고 있어 숲속에 그림과 글씨들이 이곳저곳 걸려있고, 취재 나온 KTV(국회방송) 진행자의 윤동주 문화제에 대한 느낌을 말해 달라는 느닷없는 요청에, 더듬더듬 인터뷰에 응하고 얼른 쉼터로 자리를 옮긴다. 그림 중에는 만다라 형상의 그림이 제일 눈길을 끈다.

 

수천 년을 산다는 메타세콰이어의 그늘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 친구, 연인들의 모임을 보면서, 세월 속에 화창한 것은 봄날만이 아니라 모든 계절, 모든 순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소곳한 행복감마저 느낀다. 끼리끼리 모인 중년의 남녀들은 술 한잔에 정성 가득 푸짐한 안주를 나누며 가을을 즐기고 있고, 한구석에는 연인인 듯한 남녀가 달달한 음료를 나누어 마시고, 또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은 반려견을 껴안고 사진찍기를 즐기는 이 순간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데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깊어지는 가을 탓이기도 하리라.

 

잠시의 휴식 후, 편안한 트레킹 자락길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마음을 봉수대 탁 트인 전경에 올라 채워 넣는다. 정상 근처에는 독사 조심의 팻말도 보여 연희궁 어가 행차 반대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눈앞의 인왕산과 남산, 서대문과 여의도 쪽이 훤히 들어오며 가슴속이 시원해져 온다. 이 멋진 가을을 참을 수 없음은 우리뿐이 아닌지, 고교 6년 선배를 정상에서 만난다. 선배는 연세대 럭비의 오비 후배들과 가을을 느끼기 위해 올랐다 한다.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묘한 느낌도 든다.

 

정상에 서면, 어쩔 수 없이 내려옴이 있다. 정상 하산길을 지나 봉원사로 향한다. 봉원사 하산길의 숲길 정취도 그만이다. 단풍과 낙엽이 어울린 오솔길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봉원사 위쪽이다.

 

봉원사는 한국 태고종 총본산인 절로, 처음에는 통일신라 시절 연희동 쪽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반야사’라 칭했으나, 조선 영조 때, 토지를 하사해 이건(移建)하여, 봉원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하며 그때부터 ‘새절’이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에서는 알려졌다. 아마도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의 묘 ‘수경원’(현재 연세대학교 내에 있음)이 연희궁 쪽에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절을 이건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어렸을 때 ‘능안’에 살던 나도 ‘새절’에서 영산재 행사를 몇 번 보았으나, 그 영산재가 현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절이라 보물도 많아, 한국 제일의 목조 건물인 ‘삼천불 전’과, 명부전의 현판이 정도전이 쓴 것이며, 주렴은 이완용의 글씨라 하고, 추사 김정희와 청나라 옹강방의 글씨 등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영산재(靈山齋)는 우리 고유의 불교 의식으로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영혼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천도재의 한 형태로 태고종이 그 전통을 이어받아 내려오고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 ‘티벳 死者의 書’라는 책은 죽음 이후의 중간상태는 명상으로 도달할 수 있으나, 살아 있을 때 이를 체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존재들을 ‘만다라’의 구조에 기초해 설명하고 있다.

 

‘만다라’는 종교적 수행 시에 수행을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형으로 여러 부처와 보살이 만재(滿載)해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같지는 않지만 아까 보았던 윤동주 문화제의 그림이 얼핏 생각난다. 오늘의 영산재에 대한 설명을 암시하는 우연은 아닐까.

 

‘티벳 死者의 書’를 읽을 때 같이 수록된 티벳 사람들의 순수한 사진 속 눈동자들과 삶에 대한 짧은 묘사가 떠오른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참다운 친구를 발견하여 영적인 삶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친구를 발견하면 그를 존중하고 그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이해한 뒤 조용한 곳에  은거하면서 단순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아주 좋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참다운 깨닮음이 솟아날 때까지 규칙적으로 명상해야 한다”. 티벳 고원 속 그들의 삶은 단순 소박하며 밝은 영혼을 추구하는 듯, 신비함이 감도는 듯하다.

 

종교의 세계를 논할 주제는 못 되나, 봉원사는 대처승의 교파로 산사의 일주문이 없고 사하촌(寺下村)이 바로 연이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퇴근하는 승려가 상상되어 천년 사찰의 느낌은 부족하나 마을 풍경은 아늑하다. 아스팔트 길옆 길가의 부도밭을 보며 유마 거사의 뜻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구승이든 대처승이든 궁극적인 깨달음은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

 

“보리와 번뇌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정토와 예토(穢土)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사상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실상의 진리는 형상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공의 경지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깨달음은 언어문자를 초월해 있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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