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올 추석을 기점으로 조용필(70) 이후 일약 ‘가황(歌皇)’이 된 이가 있다. 바로 나훈아(70)다. 언론과 대중은 앞다투어 새로운 가황의 노래보다는 말을, 그 말에 의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EBS 인기 캐릭터 펭수도 나훈아 따라잡기에 동참하는 등 신드롬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존재한다.
추석 시청률 1위 ‘어게인 나훈아’
새로운 가황의 탄생
지난달 30일 방송된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시청률은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9.0%로 집계됐다. 수도권에서는 27.2%였으나 일부 지역에선 시청률이 약 40%에 육박했다.
나훈아는 고향, 사랑, 인생을 주제로 ‘무시로’, ‘잡초’, ‘영영’ 등 히트곡과 신곡까지 30여 곡을 선보였다.
일흔이 넘은 나훈아가 이번 콘서트에서 ‘젖무근 힘을 다해 노래한’ 곡은 18곡. 1부 ‘고향’, 2부 ‘사랑’, 3부 ‘인생’ 등 확실하게 구분한 컨셉으로 4면 모두가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무대에 대형 배를 몰고 등장한 그는 2시간 40분 가량 쉬지 않고 대중을 휘어 잡았다.
그의 신곡 ‘테스형’은 각종 음원 · 음반 차트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지난 6일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의 ‘아티스트 랭킹’에 따르면 나훈아는 이날 오후 4시 이 차트에서 15위에 올랐다. 멜론의 인기 키워드 베스트는 ‘테스형’이 싹쓸이했다. ‘테스형’은 나훈아가 지난 8월 발매한 앨범 ‘나훈아 아홉이야기’ 수록곡이다.
‘코로나19’ 결핍 파고드는 감성 탁월
두문분출, 신비주의의 대가인 나훈아는 15년 만의 방송 나들이 그 자체로 주목을 끌었다.
KBS홀에서 진행한 공연 실황을 담은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관객 없이, 온라인 관객 1000명 만으로 녹화를 했다. 서울부터 제주 등 국내는 물론 일본, 호주, 짐바브웨 등 사전 신청한 세계 곳곳의 팬들이 온라인으로 나훈아의 공연을 보는 방식이었다.
이번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다시보기’ ‘재방송’을 하지 않을 것을 추가로 요청했다고 한다. 거기에 ‘노 개런티’ 임을 강조했다. 쇼 비즈니스의 대가답게 남들과는 다른 그 만의 포인트를 강조했다.
최규성 평론가는 나훈아의 이번 콘서트에 대해 “나와야 할 때를 제대로 아는 영민한 분”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무엇인가가 결핍돼 있고 이동이 제한된 다른 세상에서 위로가 필요했는데, 딱 감동과 위안을 안기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노 개런티 이야기에 많은 국민들이 감동을 받았다. 나훈아는 뭔가 ‘급이 다르다’ 것을 인식시켜줬고, 이번 공연을 통해 스스로 자기를 업그레이드했다”고 전했다.
나훈아는 공연 막바지에 “여러분 우리는 지금 힘들다. 우리는 많이 지쳤다. 저는 옛날의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
여러분 생각해 봐라. IMF 때도 이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나?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서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에서 제일 1등 국민이다.”고 말하며, 대중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나훈아에 대한 불편한 시선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의 이런 발언은 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인식되며, 정쟁의 도구로 변질됐다. 당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의원총회에서 “추석 전날 가수 나훈아씨가 우리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대변해줬다”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고 치켜세웠다.
장제원 의원도 3일 페이스북에서 “나훈아가 잊고 있었던 국민의 자존심을 일깨웠다”며, “‘언론이나 권력자는 주인인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공연의 키워드”라고 해석했다.
나훈아는 대중이 한창 공연에 몰입되어 ‘카타르시스’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메시지를 던지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무비판적으로 대중의 가슴에 파고들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우리 역사상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위정자가 단 한사람도 없었을까? 당장 조선 태조 이성계만 해도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싸웠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현 문재인 정권이 K-방역의 성공을 전적으로 정권만의 성공이라 한 적이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께 송구해 왔고, 힘들지만 방역수칙을 잘 따라주는 국민께 감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훈아의 공연을 보았던 대다수의 대중들은 마치 그의 말이 진실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힘든 현실의 공은 정권이 다 가져가고, 국민들은 희생만 한다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불만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야당은 이러한 부분을 확대하고 언론은 재생산하고 있다.
또한 나훈아의 그간의 삶과 그의 노래가 민중을 대변해 왔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나훈아의 노랫말은 민중가수들처럼 시대를 대변하고 이끌어가기보다는 개인의 희노애락을 표현한 부분이 더 많다.
당장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테스형!’도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대변하기 보다는 그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곡으로 알려져 있다.
테스형!
…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그렇다고 그의 삶이 가황 조용필과 비교해 보았을 때 모범적이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러 번의 일탈 행위는 그의 마초적 이미지에 포섭되어, 현재의 나훈아를 바라보는 대중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한순간에 국민적 공감대를 잃은 것은 그가 부르짖던 공정과 정의와는 반대로 행동하며 ‘엄마찬스, 아빠찬스’를 쓴 것에 기인한다. 조 전 장관의 불법성 · 탈법성과는 상관없이 언행불일치 · 내로남불에 분노한 것이다. 한순간에 끝모르게 추락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소수이지만 나훈아에 대한 이러한 불편한 시선들도 그의 기사마다, 아니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조국 전 장관처럼 한순간에 새롭게 탄생한 가황을 잃게 되는 아픔을 맛볼 수도 있다.
나훈아는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 - 15년 만의 외출’ 방송 중 ‘어떤 가수로 남고 싶냐’는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의 물음에, “흐를 유, 행할 행, 노래 가, 유행가 가수에요. 남는 게 웃기는 거죠. ‘잡초’를 부른 가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부른 가수, 흘러가는 가수죠. 뭘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런 거 묻지마소!”라며 초연한 반응을 보였다.
나훈아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 각계 각층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향후 행보는 오리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