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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관능의 여신, 변신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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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의 여신, 변신의 귀재



요부에서 수더분한 아낙까지



관습과 금기에 도전한 배우 도금봉



‘세기의
요우(妖優)’ ‘관능파’ ‘모던 글래머’ ‘동과 관능의 페르소나’ 등 화려한 수식어가 넘쳤던 배우 도금봉. 1960년대 당시 하루에 30여통의
팬레터를 매일 받을 만큼 대중의 사랑이 집중됐던 스타이자, 평단과 감독의 극찬을 받던 성격파 배우인 그녀가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한국영화사에 대한 정리와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각종 영화 단체에서 도금봉 회고전을 마련했고, 지난 4월에 열렸던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도
그녀의 출연작들이 특별 상연됐다. 최은희 문희 김지미 엄앵란 태현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들에 대한 평가와 계보 다듬기 작업이 근래에
시작됐지만, 도금봉에 대한 관심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뜨거운 편이다.

여성영화제 주유신 프로그래머는 “여성에게 부여되는 금기와 제약에 가장 과감하게 도전한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배우다”고 도금봉을 평가한다.
김량삼 영화평론가는 ‘아시아권의 독보적인 육체파이면서 연기력도 지녔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의 시각에서도 그녀의 요부나 악녀 캐릭터는 도발적이고 강렬하다. 도금봉은 관습과 금기를 깨면서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시대를 넘어서 잊혀지지 않는 배우가 된 것이다.



“요염한
마스크와 풍만한 육체”




1930년생인 도금봉의 본명은 정옥순이고 무대에서 연기할 때는 지일화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동경했던 그녀는, 악극단
‘창공’에서 활동하며 이미 연극계에서 명성이 높았다. 우연히 조긍하 감독에게 픽업되어 1957년 영화 ‘황진이’의 주연으로 등장한 것이
영화배우로서의 첫걸음이 됐다.

배우 ‘도금봉’이라는 이름 역시 이 때 얻게 된 것이다. 황진이가 살았던 송도(松都)의 ‘도(都)’와 가야금을 잘 탓다는 황진이의 일화에서
‘금(琴)’을 가져왔고 영화계의 봉우리가 되라는 뜻에서 ‘봉(峰)’을 넣었다고 한다. 해외 수출된 ‘황진이’로 도금봉은 영화배우로서는 처음
대만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리며 스타덤에 오른다.

변재란 영화평론가는 당시 도금봉이 많은 남성팬을 확보한 요인을 “요염한 마스크와 풍만한 육체, 가실 줄 모르는 젊음의 이미지”에서 찾았다.
동양인에서 보기 드문 균형잡힌 몸매와 유혹적인 미소, 강렬한 눈빛 등은 당시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들에게는 위협적인 동시에 억압받는 여성
관객들에게는 해방감과 대리만족의 쾌감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변씨는 또한, “수많은 스캔들이 이런 이미지로 규정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독특한 것은 여배우의 사생활에 엄격했던 시대였지만,
도금봉은 자신을 따라 다니는 스캔들에 항상 냉소나 공격으로 대처했다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한 성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스캔들로 매장 당한 여배우가 많았음에도 도금봉은 자신만의 강한 대처법으로 굳건히 살아남았다.



“경탄과 혐오 비판과 찬사의 극과 극을 오가는 배우”




이처럼 도금봉은 천부적인 외모와 기질, 뛰어난 연기력으로 에로틱하고 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그녀는 욕망을 불꽃처럼 태우거나(산불)
세속적인 야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월하의 공동묘지) 악녀, 심지어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흡혈기(백골령의 마검)라는 파격적인
캐릭터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도금봉의 이미지는 1960년대의 사회 분위기로는 너무나 도전적이었기 때문에, 평가 또한 극과 극이었다. 프로그래머 주씨는 “그녀의 이미지는
경탄과 혐오, 비판과 찬사 사이를 극적으로 오갔지만, 전복성을 일관되게 갖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변씨는 “도금봉의 육체적 이미지는 성적으로 억압된 대다수의 여성을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배우 최은희는 도금봉의
역동적인 역할을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 의하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정숙하고 품위 있는 며느리를 연기했던 최은희는
같은 작품에서 자신과 반대로 동적인 역할을 맡은 도금봉이 부럽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도금봉은 비중이 그리 크진 않지만, 최은희를 압도하는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악녀나 요부는 항상 선하고
조신한 여주인공과의 대비를 위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고하고 비련에 빠지는 상투적인 여주인공보다 그녀의 이미지는 훨씬 활력이 넘쳤다. 주씨는 ‘백골령의 마검’에서 그녀에 대해 “거침없는
유혹과 육체적 에너지가 너무 강력해 관객으로 하여금 선한 주인공보다 그녀와 더 동일화하도록 만드는 역설을 빚어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체적인 여성상




에로틱한 여배우 1세대로 손꼽히는 도금봉이지만, 그녀의 이미지가 요염한 캐릭터에 한정됐던 것은 결코 아니다. 1963년 제10회 동경 아시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또순이’는 그녀가 전혀 다른 역할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또순이’로 그녀는 온갖 거칠고 험난한 육체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억척스러운 여성상을 보여주면서 ‘도금봉 시대’를 열게
된다. 변씨는 “‘또순이’의 억척스러움과 그녀의 건강함은 근대화의 깃발을 높이 들고 많은 여성들을 그 물결에 합류케 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잘 살아보세’에 공감했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쳤을 것이다”며 “주체적인 삶을 열망하던 여성들에게 동일시의 대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사극 현대극 멜로 코미디 액션 할 것 없이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천의 얼굴을 가진 여우’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녀가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도 개성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전형화 된 여성상을 거부하면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변씨는 역시 도금봉의 가장 큰 매력은 개성이 강하면서도 다른 배우들과 적절한 호흡을 맞출 줄 아는 뛰어난 연기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악극과
연극에서 탄탄하게 다스려진 연기로 작품 속의 인물로 변신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역사적인 인물로서 도금봉은 그녀의 존재로 인해
빛을 발한 수많은 영화들을 풍성하게 만든 장본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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