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20 (토)

  • 흐림동두천 7.4℃
  • 구름많음강릉 10.0℃
  • 흐림서울 8.4℃
  • 흐림대전 5.8℃
  • 박무대구 1.8℃
  • 박무울산 8.0℃
  • 흐림광주 9.5℃
  • 맑음부산 12.8℃
  • 흐림고창 13.5℃
  • 흐림제주 15.0℃
  • 흐림강화 8.4℃
  • 흐림보은 1.3℃
  • 흐림금산 3.1℃
  • 흐림강진군 6.4℃
  • 맑음경주시 2.3℃
  • 구름많음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

장인을 찾아서(19) - 화선지에 먹물로 써내려간 환쟁이 인생

URL복사
<%@LANGUAGE="JAVASCRIPT" CODEPAGE="949"%>


Untitled Document






화선지에 먹물로 써내려간 환쟁이 인생




한국적 사실주의 화풍, 일러스트레이터 홍성찬


3
남짓한 조그만 작업실. 머리 희끗한 노인이 햇살을 등에 받으며 화선지 가득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화폭 안에는 무희들이 한껏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춤추고 있고, 노인의 세심한 손길이 닿을 때마다 표정은 살아나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손동작 하나, 옷매무새 하나가 마치 극사실주의
화풍처럼 자세하다. 노인은 붓을 잠시 내려놓고 두꺼운 돋보기를 벗는다. 일러스트레이터 홍성찬 화백(75)의 잠깐의 휴식이다.



역사 근거한 정확한 인물묘사




홍 화백은 현재 출판사 ‘재미마주’의 사무실 한켠을 작업실로 할애받아 설화 작업에 한창이다. 우리 출판계를 대표하는 역사물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답게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역사학자들의 조언과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 과정을 거친 후 그림으로 표현한다. 1996년 제17회
한국어린이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을 수상한 ‘집짓기’(보림출판사)도 자료수집에 3년이 걸렸다.

“보기좋으라고 예쁘게만 표현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거지. 책에 나와있는 그림을 보며 독자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거든.”

시대에 따라 풍속과 의상에 차이가 있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구려와 신라의 의복이 다르고 임금에게 예를 표하는 방식도 다르다. 또 과거로
갈수록 얼굴생김새도 구강구조와 광대뼈가 발달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홍 화백의 그림에는 여타 어린이책에 등장하는 서구적 미인이 아닌
정말 ‘한국적인’ 인물들이 숨쉰다.

때문에 홍 화백의 그림을 단지 ‘삽화’라고 부르기에는 왠지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단순히 ‘일러스트레이션’ 즉 ‘삽화’의 사전적 의미인
책이나 잡지·신문 등에 이해를 돕기 위해 곁들인 그림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열정을 기울인 정도가 매우 깊기 때문이다. 책을 완성시키는 또다른
요소로서, 내용과 동등한 가치비중을 인정받기 충분하다.



“손에도 표정이 있다”




사실적 묘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홍 화백은 인물들의 표정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똑같은 상황에 임해 있다하더라도 느끼는 감정들이 다르기
때문에 인물들의 표정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딴 짓 하는 아이는 왜 또 없겠는가? 때문에 최대한 관찰하고,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가장 사실적인 인물들의 얼굴을 재현한다.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착하고 순진한 어린이들의 표정이 한결같다는 거야. 눈에 초점이 없고 입은 약간 벌어져 있지. 그건 착한 어린이의
모습이 아니라 바보야. 우리가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아이의 얼굴을 담아야지.”

지금껏 50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홍 화백이 그래도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손모양이다. 똑같이 손을 모으고 있어도 새끼손가락이
들렸는지 아닌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듯 손에도 표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책상 벽면에는 항상 거울이 비스듬히 걸려 있다.
자신의 손을 비쳐보며 연구하기 위해서다.

“남들은 오랫동안 그려서 이젠 쉽지 않냐고 하는데 매일 새롭고 어려워. 익숙한 부분이야 당연히 있지만 하루하루 나아져야하니까 편한 날이
없지. 아직도 공부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아.”

일에 대한 욕심이 강해서일까? 아님 그림에 대한 애착 때문일까? 50년 경력의 일러스트레이터는 ‘지나친’ 겸손을 보이며 지치지도 않는지
지금도 아침9시부터 밤9시까지 하루 12시간을 꼬박 그림에 매달린다. 청탁받은 작업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에 가장 근접한 모습을 창조해내기
위해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린다는 자체가 그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역사물
감소로 작업량 줄어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 화백은 어릴 적부터 그냥 그림이 좋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미술교육 한번 받아본 적 없지만 손에서 붓을 놓을
수 없었고 1955년 친구 소개로 잡지사 ‘희망사’와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그림 인생을 걷게 됐다. 당시 ‘희망사’는 우리나라 야담을
모은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 일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그림이 역사물과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적이고 섬세한 화풍이 역사물과
딱 맞아떨어졌고 ‘가장 잘 아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지론과도 일치했기 때문이다.

“루벤스의 작품 ‘한복 입은 남자’를 보면 분명 한국인일 텐데 그 생김새가 우리와 다르지. 한국인은 한국인이 그려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
아무리 연구하고 공부한다 해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만 못한 것은 당연한 거야.”

다른 장르보다 잔손질이 많이 가고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지만 홍 화백은 역사물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성인역사물이 많이
줄어 홍 화백의 작품을 근래에는 어린이역사물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어린이책이라도 아직까지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지”라며 선생은 웃었으나 그 웃음은 왠지 쓰잔했다.



우리나라 풍속도
다룬 그림책 출간 목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의 기억으로 홍 화백은 2000년 5월, 영월책박물관에서 치뤄진 원화전시회를 꼽았다. 비록 시골 폐교를 개조해 만든
조그만 전시장이었지만 보고 온 후배들이 전화를 걸어 후기를 전할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가득찼다.

“부족한 작품이라 쑥스러웠다”는 홍 화백은 “그래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 감격스러웠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홍 화백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원화는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이야 저작권 보호라는 개념이 강해졌지만 몇 년 전 만해도 출판사가 그림을 ‘샀다’라는
생각으로 원화를 돌려주지 않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출판한 책을 상의도 없이 재판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리지도 않은 그림이 중간에 끼어있을 때도 있었지. 나에게 몇 장 더 그려달라고 한들 설마 내 책인데 안그려줬겠어?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한마디로 ‘저질러’ 버렸더라고.”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는 그는 그만큼 작품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의욕도 대단해서 앞으로 인생을 마감하기 전 꼭 우리나라
풍속도 전반에 관한 그림책을 내고 싶단다. 또 이제는 볼 수 없는 옛날 연장의 모양과 용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을 담아 발간할 계획이다.
방대한 내용인 만큼 어려움이 많지만 홍 화백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이 충분하진 않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혹자들은 나이가 이젠 너무 많지 않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 ‘환쟁이’ 인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릴 거니까. 아마 붓을 놓는 날이 내가 저 세상으로 가는 날이겠지. 그때까지 쉬지 않고 그릴 거야.”

돋보기를 다시 쓰고 붓을 손에 쥔 홍 화백의 등뒤로 찬란한 4월의 햇살이 비쳤다. 화선지 안의 무희는 그를 위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비만학회·한국릴리 미디어 세션...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견이 나왔다. 17일 대한비만학회와 한국릴리가 17일 비만과 2형 당뇨병을 사회적 건강 과제로 규정하고, 치료 중심의 관리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션은 국내 비만·당뇨병 치료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인크레틴 기반 주사 치료제를 포함한 최신 치료 옵션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논의하고 미충족 수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등 여러 비만치료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왜 비만 치료가 중요한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대한비만학회의 노력'을 주제로 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비만은 단순한 체중증가 상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

정치

더보기
내란특검 수사 결과에 與“헌정 회복 이정표”vs野“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난 정치보복”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15일 발표된 내란 특검 최종 수사 결과에 대해 여야는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음을 강조한 반면 국민의힘은 성과 없는 ‘내란몰이’로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12·3 내란사태는 권력 유지를 위한 불법 계엄이었다‘ 어제 내란 특검은 12·3 내란 사태 수사의 결론을 공식 발표했다”며 “활동을 마무리한 내란 특검은 헌정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시도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준 과정이었다. 관련자 기소와 사실 규명, 책임 구조의 윤곽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누구든 헌정을 흔들면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도 분명히 세웠다”며 “아직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내란의 기획과 지휘 구조, 윗선 개입 여부 등 핵심 쟁점 가운데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재판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준엄한 단죄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내란 세력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주주의의 역사에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대법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특별법 계획대로 추진”vs“위헌 법률 만들 이유 사라져”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예규를 제정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특별법 제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대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2025년 12월 18일 개최된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헌법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정할 예규의 주요 내용은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의 죄에 대한 사건의 국가적 중요성, 신속 처리 필요성을 감안해 대상사건만을 전담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제87조(내란)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

문화

더보기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 연극 ‘동물원 이야기’ 공연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가 12월 20일(토) 오후 2시 밀양아리나 꿈꾸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공연은 밀양시가 주최하고 대경대학교 공연예술ICC가 주관하며, 극단 가변과 극단 예빛나래가 공동 제작했다. 작품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한 벤치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인물 제리와 페트라(원작의 피터를 여성으로 트랜스한 설정)의 대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심리극이다. 사회의 주변인에 가까운 제리와 평범한 중산층 페트라의 만남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드러내며, 예상치 못한 결말로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 무대는 ‘1960년대 초연 이후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을 새롭게 해석한 공연’을 표방하며, 도시의 소음 속에서 점점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품은 단 두 명의 인물과 최소한의 공간만으로도 강렬한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 내며, 관객에게 나와 타인 간의 거리와 소통의 의미를 되묻는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연출을 맡은 배우진은 “‘동물원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