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 특사 무산...뚜렷한 해법 없어
▶ 이도훈 방미...한미간 대응 논의
▶ 인적 쇄신, 정치인 하마평


[시사뉴스 김세권 기자] 북한이 '남북 화해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연락사무소)를 기습적으로 폭파시켰다.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보기에는 상식 밖이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4·27 판문점 선언 이전의 강 대 강 대결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북 특사 무산...뚜렷한 해법 없어
남북 정상 간 소통의 물꼬를 터줄 대북 특사 카드마저 무산되면서 남북관계를 복원할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하겠다고 북측에 제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8년 3월과 9월 두 차례의 대북 특사단을 통해 남북 정상 간 만남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3차 대북 특사단 추진 역시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사전 물밑 단계였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우리 측의 제의를 '불순한 제의'라고 일축하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북측은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한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이는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로 대북 특사 파견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로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북 특사 파견 카드도 무산되면서 현 상황을 돌파할 뚜렷한 해법이 없어 청와대 내부에서는 답답함이 뒤섞인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면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등의 사업들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북 간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17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임동원·박재규·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 대북 전문가들과 오찬을 갖고 경색 국면에 접어든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일방적 파괴와 관련해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실망과 화, 좌절감을 느낀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렇지만 인내를 갖고 필요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도훈 방미...한미간 대응 논의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남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미 간 외교 채널을 가동해 긴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댈러스 공항에 도착했다. 외교부는 18일 이 본부장이 미국에 도착한 후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한미 수석대표 협의를 갖고, 한반도 상황 관련 평가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이 방미길에 오른 것은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 행동을 예고한 다음 날이다. 한미는 그간 정세 악화 방지에 역점을 두고 미국, 중국 등과 평가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각급에서 대응 방안을 긴밀히 조율해 왔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 협력과 관련한 제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채널로 2018년 11월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이도훈 본부장을 비롯해 통일부, 청와대 등이 참여하고, 미국 측에서는 국무부, 재무부, 백악관 NSC 관계자 등이 참석한다. 타미플루의 인도적 지원 문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 문제도 대북 제재 접촉 우려를 이유로 논의됐다.
미 정부는 최근 북한 상황과 관련해 "우리의 동맹과 긴밀한 조율을 계속하고 있다"며 "북한이 추가로 역효과를 내는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인적 쇄신으로 돌파구?

북한과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돌파구로 인적 쇄신 카드가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교체한 카운트 파트너와의 인사를 명분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다. 17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사의 표명을 고리로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 내에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대폭 쇄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 원년 멤버로 대북 정책에 깊게 관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과 함께 이들에 대한 교체설이 지난해 말부터 여권 내부를 비롯한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대북 특사단으로 정 실장과 서 원장을 극비리에 파견 보내려 했지만, 북한이 즉각 공개한 대목은 이들이 더이상 직접 북한을 움직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특히 대북 정책과 대미 정책을 총괄한 정 실장의 경우 미국 중심 시각에 따라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 원장은 지난해 2월 28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정보 수집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판문점 선언, 평양선언 등 한반도 평화를 가속화하는 데 통일부 장관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며 "외교부 장관이나 청와대 라인이나 다 보조가 맞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팀워크를 정비하고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의원은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최선을 다해서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가 같이 노력은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상당히 좀 더디다는 느낌은 사실 있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분위기 쇄신이라고 할까, (교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힘을 실었다.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홍익표 의원도 같은 방송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어쨌든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재점검은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꼭 인적 쇄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외교안보 라인 전체에 대한 재배치라든지 또는 지금까지 했던 방식에 대해서 재점검하고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반면 교체 신중론도 공존하고 있다. 전면적인 물갈이에 나서기보다는 남북관계 변화 등 상황 파악이 우선이란 지적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일개 부처가 감당하기엔 한반도 평화 이슈라는 건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차분하게 접근해야 될 문제 아닌가"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사적인 조치를 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차분한 계획과 장기적 로드맵 속에서 나와야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무적 감각 가진 정치인 하마평
당장 차기 통일부 장관에는 관료·학자보다는 정치인을 임명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18일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차기 통일부 장관으로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인영·우상호 의원의 하마평이 오르내린다. 문재인 정부 초대 조명균, 2대 김연철 통일부 장관 모두 관료, 학자 출신이었던 만큼 정무적 감각을 가진 정치인 출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이자 운동권 대표 주자인 이인영 의원은 고(故)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계보(GT계)로, 지난 20대 국회 4기 원내대표를 지냈다. 지난 201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민통선 통일걷기 행사를 갖는 등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통일운동에 전념하겠다며 지난 총선에 불출마한 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전대협 3기 의장 시절 대학생이던 임수경 전 의원 방북 사건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통일부는 관료나 학자 출신은 안 된다는 생각이 여권 내에 굳어져 있다"며 "그런 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모두 만나본 임 전 실장만큼 훌륭한 카드가 어디 있겠나. 북한에 강력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에 대해서도 "꾸준히 통일걷기 행사를 하는 등 북측에 관심이 많은 만큼 좋은 카드일 것 같다"고 평했다.
다만 임 전 실장 측은 통일부 장관설에 선을 긋고 있다. 임 전 실장 측 관계자는 "통일부 장관을 제안 받은 적도 없고 대통령과 면담도 없다"며 "통일부 장관에 마땅한 적임자도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 1기 원내대표를 지냈고 대표적 86그룹 중 한 명인 우상호 의원 역시 이름이 오르내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2019년 개각 당시 입각이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이해찬 대표가 21대 총선에서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하며 만류해 고사했다.
다만 우 의원은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 임종석 전 실장이 가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당내에선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인사들이 남북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만큼 입각이 현실화 될 경우 그간 한미 공조를 우선했던 기조에서 남북관계 진전에 보다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정책 선회를 하는 시그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을 비롯해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여권 인사 중 외교·통일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직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