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최순실씨에 대한 뇌물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앞서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수요사장단회의마저 폐지한 삼성은 위기상황을 관리할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게 된 ‘총수 부재 장기화’로 경영 전반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지난 25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차장(사장)도 징역 4년의 실형을 받았으며,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전무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법원은 이들에게 37억6736만원의 추징금도 부과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승마 지원 등을 통해 최씨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한 임원들이 경제정책에 관해 막강하고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과정에 관한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며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 재산을 국외로 도피하고 범죄수익을 은닉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 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으로 73억여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후원해 16억여원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뇌물공여 부분은 모두 무죄로 판단했으며, 승마 지원 관련 선수단 및 마필수송 차량 구입대금과 213억원을 약속한 부분도 무죄로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로 대통령에 대한 청탁 대상인 승계 작업 주체이자 이익을 가장 많이 얻을 지위에 있으며, 당시 삼성의 사실상 총수로서 다른 임원들에게 승마 및 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하고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 그 가담 정도나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이 크다”며 “이 부회장 등은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또는 개별 현안에 관해 대통령에게 적극적·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줬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컨트롤타워 없이 맞이한 ‘총수 부재 리스크’
이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삼성은 이 같은 악재가 경영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7일 삼성의 일부 임직원들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해 총수 부재 리스크 방안마련에 나섰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대규모 투자가 보류됨에 따라 빚어질 사업 차질이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전장기업인 하만 인수 이후 글로벌 무대에서 대규모 M&A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도 산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를 지속적으로 단행해야 최근의 호황 기조를 이어갈 수 있어, 이 또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던 사장단 인사도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사장단 인사가 미뤄질 경우 조직 전반의 활력을 불어넣을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
게다가 삼성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올해 2월 전격 해체한 이후 이를 대체할 시스템이나 조직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당시 삼성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미래전략실을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는 의지 표명의 일환으로 해체하면서 미래전략실이 주관해왔던 수요사장단회의도 폐지했다. 미래전략실 기능을 유지하는 어떤 조직도 두지 않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 CEO들의 자율경영체제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장기화되는 비상상황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 부재가 장기화될 경우 경영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전문 경영인들은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인수합병, 국내외 경영 활동 등이 위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 이전인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갤럭시노트8 언팩’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새롭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 7~8개월을 돌이켜 보면 사장단회의도 없어지고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