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통일부가 22일 외교안보 분야 합동 업무보고에서 밝힌 올해 중점 추진과제를 보면,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부가 제시한 정책 목표나 전략, 그리고 추진과제 모두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비핵화 압박과 원칙 있는 대화를 통한 북한의 변화 등 온통 북핵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4차 핵실험 강행에 대한 전례 없는 ‘강력한 제재’로 북한이 비핵화 쪽으로 입장을 바꾸는 등 상황 변화가 없다면 통일부가 구상한 상당수의 업무들이 시작도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자칫 1년 내내 남북대화나 교류가 어려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이 처음이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나 정부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 완강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부터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천명했었다.
통일부 당국자도 “지금은 대화나 교류를 언급할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연두 업무보고가 당면한 과제뿐 아니라, 1년간 추진할 과제를 설명하는 자리라서 몇 가지를 내놓았지만,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는 원칙과 입장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북한 핵문제의 실효적 해결을 위한 노력 강화’를 5가지 중점 추진과제 중 첫 번째로 내세운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으로 발동된 ‘5.24 조치’나 남북관계 차원에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안보리 결의 내용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최악의 경우 정부가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개성공단 폐쇄나 철수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 정부가 지난 3년간의 성과로 내놓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산가족 실태조사나 유전자 DB 구축, ‘이산가족의 날’의 제정, 이산가족 관련 기록물 수집 등 우리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진행하겠다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다.
통일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는 대화’나 ‘민족 동질성 회복을 촉진하는 남북협력’은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단 하나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
신뢰와 합의가 지켜지는 대화의 틀 구축이나 국제기준이나 국민 상식에 맞는 대화는 40여년의 걸친 남북관계로 미뤄보면, 거의 실현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한 사항도 지켜지지 않는 게 남북관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신뢰’나 ‘합의가 지켜지는 대화 틀’을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어렵사리 당국간 대화가 열려도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나 군사적 긴장완화 등 평화정착 문제를 반드시 거론하겠다는 입장이라, 대화 지속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대화에서 우리 측이 단지 짚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해도 북측은 강하게 반발하거나 대화 자체를 결렬시키기도 했었다.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될 △지역단위 마을 개선사업(민생) △산림 기후변화 공동대응(환경) △청소년 문화유산 교류심화(문화) 등 3대 민간통로 사업 역시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 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시기적으로 북한이 연초에 4차 핵실험을 감행해 외교안보 부처가 평소처럼 1년간 업무계획을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고, 북한 도발 위협에 전방위적 총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남과 북은 특성상 ‘적이자 대화 상대’란 점과 함께 과거 북한의 핵실험의 경우에서처럼 우리 정부가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정부 스스로 손발을 묶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지적도 없지 않다.